천천히 어른이 되었다.
나는 아들만 셋이다.
"아들 셋을 키우면 엄마는 깡패가 된다."
"아들만 있음 목메달이다."
"그중에 딸노릇하는 아이는 꼭 있다."
이런 말들을 들으며 아들 셋을 키웠다.
신기한 건,
아들들이 식성마저도 놀라울 만큼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째를 임신했을 땐 고기로 입덧을 했다.
그래서인지 첫째는 지금도 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둘째는 임신 중 회가 너무 먹고 싶었다.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회로 입덧을 마무리했다.
그 아이는 돌이 지나 가족들과 속초에 갔을 때,
회 먹는 어른들 곁에서 침만 삼키다가 덥석 회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 지금, 스물네 살이 된 그 아이의 1등 음식은 여전히 회다.
셋째는 배속에서부터 엄청 국수만 찾았다.
태어나서 입병으로 아플 때조차 국수를 먹고 나았다.
하루는 애슐리에서
아이들이 각자 첫 접시를 들고 와 앉았는데
난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졌다.
첫째는 고기로 한 접시,
둘째는 회로 한 접시,
막둥이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듯, 스파게티로 한 접시 가득 채워왔다.
개성 많은 아이들을 각자의 방식대로 키웠다.
이런 아이들을 키우며
많이 울고, 여러 가지로 힘들었지만,
'엄마'라는 존재로
나를 다시 쓰게 만든 아이들이다.
철부지였던 나를
조금 더 괜찮은 어른으로
자라게 해 준 기특한 아이들이다.
내가 깡패가 되지 않았던 건 아마도 나의 성향 덕분일 거다.
아이들을 혼내야 할 상황이 생기면
보통은 하나, 둘, 셋까지 센다는데
나는 하나에서 열까지 셌다.
시누이가 왜 힘들게 열까지 세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열까지 세는 동안
나는 나를 살폈다.
하나...
'지금 이건 훈계가 필요한 일인지'
둘...
'내가 매를 들지 않아도 아이들이 말을 들어주면 좋겠다.'
셋...
'내 감정이 앞서 있는 건 아닌지'
.
.
.
여덟...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에서 더 화를 내도 되는 건지'
열!
그렇게 그 시간은
아이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지키고, 살피는 시간이었다.
얼마 전,
스물다섯 살 아들이 발가락으로 꼼지락꼼지락
나를 괴롭히길래 그만하라고 하곤
하나 둘~세니
웃으며 그 아들이 "내가 몇 살인데 숫자를 세냐"며
나를 훈계를 했다.
아이들은 이렇게 컸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선택을 했고,
그만큼 천천히 어른이 되었다.
*사진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