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

나는 대문자 아이였다.

by 지니의 쉼표

성장할 때 난

적당한 얼굴, 키, 몸무게, 모두 다 적당했다.

자라면서 못생겼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성격도 나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대문자 E'는 아니고 '소문자 e'정도 되는 거처럼은 보였다.

동네 심부름을 갈 일이 있어도 함께 다녀 올 친구들이 많았던 아이다.

낯가림이 뭔지 모르며 자랐던거 같다.

동네 어른들, 친구 부모님, 교회, 학교, 선생님들에게 살가웠다.




그런데 나는 '대문자 I'다.

외향적이지 않다는 걸 몸으로 배웠던

기억나는 일은 산후조리다.


낯가림의 시작이 그때부터였던 건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집에서 돌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몸조리를 했다.


첫아이를 낳고는 집안 전체 보일러를 돌려

따뜻하게 지내야 하는 줄 알지 못했다.

산후조리에 대한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따뜻하게 지내라는 어른들 말씀 듣고,

아이랑 같이 있는 방 한 칸만 보일러를 돌렸다.


4월이라 안방에서 화장실로 가는 거실

바닥의 냉기는 생각하지 못했다.

따뜻한 안방을 나와 거실과 화장실로

몇 걸음 안 다녔는데

그때 냉기가 발바닥 속 깊이 들어갔다.


그 뒤로 찬바닥이 발에 닿는 순간, 발이 오그라들었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다녀야 했고,

다른 집을 방문해도 실내화부터 찾아야 했다.




첫째랑 둘째는 16개월 차이라 첫째도 아직 아가였다.

걷다가 힘들면 내 앞을 가로막고 자기 안아달라고

팔을 벌리면, 만삭인 배 위에 첫째를 올려 안아주었다.

그래도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가 더 편했다.


둘째를 낳고

시댁, 친정의 도움을 받는 것이 피해를 주는 것 같고,

내가 편하게 누워만 있을 수 없다는 낯가림이

편히 몸조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산후조리를 해야겠단 생각은 첫아이를 낳고 고생을 했기에

일주일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했다.

그곳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조리하는 내내 옷이 땀에 젖었고,

그 사이 등으로 냉기가 들어왔다.

다시 집으로 가서 몸조리를 해야 했다.


이젠 발바닥뿐아니라 등까지 냉기가 들어왔다.

연년생까지 낳고 보니 집에선 몸조리는 더 어려웠다.


이 모든 시간 동안, 남편은 늘 일이 바빴다.

생각해 보면 꼭 늘 옆에 없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가장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마다

그 자리에는 나 혼자였다는 기억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연년생을 키웠다.


그 당시 내가 젊었기에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젊은 나이여도 연년생을 키우는 건 녹녹지 않았다.

지금도 “쌍둥이와 연년생 비교해서 어떤 게 힘드냐?”

묻는다면 “난 연년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쌍둥인 리듬도 비슷하고, 의식주 생활이 거의 똑같다.

시누이가 쌍둥이가 있어서 더 잘 안다.

분명, 한 아이가 똥을 싸 좀 전에 닦아줬는데,

비슷한 애가 와서 닦아 달라는 경험을 일상처럼 했었다.


연년생은 달랐다.

한 아이를 재우면 한 아이는 놀아달라고 오고,

마구 책을 뽑아 놓던 시기가 지나

이제 책을 읽고 정리하는 것을 훈련시킬 때쯤이면

둘째가 책을 빼고 책꽂이 한 칸으로

자기 몸을 욱여넣는 시기가 온다.


첫째 아이에게 기본 생활 습관을 키워 주기 위해

"읽고, 놀고는 이렇게 집어넣는 거야" 알려주면

다른 아이가 마구 뽑아 놓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르치다 포기를 하고

책 정리, 장난감 정리는 저녁에 한 번 하는 것으로

루틴을 바꾸지 않으면

스트레스에 내가 먼저 죽을 판였다.


그렇게 낮 시간엔 책이 아이들 발에 밟혔다.

뛰어 놀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눈앞에 책이 있었고,

그럼 넘어진 자리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책을 읽었다.

그리 대충 막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지금도 책을 좋아한다.

가방 속에 소설책 하나씩은 본인의 짐 사이에 있는걸

요즘도 본다.

내가 게으른 탓에 아이들은 책과 친해진 것 같다.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며

몸조리는 할 수 없었고, 내 몸은 망가졌다.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밀렸기 때문에

발바닥과 등의 냉기는 낫지 않았다.


몸은 부기가 빠지지 않았고 그렇게 살이 되었다.

모두 핑계일 수 있지만 내 몸을 보살필 시간과 마음이 부족했다.


"몸조리 못 해 생긴 병은 몸조리를 잘하면 낫는다"라는 어른들의 말이 있어서

셋째를 낳게 된다면 그때는 몸조리를 잘해 보겠다 결심을 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셋째를 낳고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시댁에서 같이 살면서 거의 백일까지 웬만하면 따뜻하게 몸조리를 했다.

그뒤로,

발바닥은 찬 바닥이 시원하게 느껴지고,

등은 이제는 더 이상 시리지 않았다.


나의 낯가림이 사라지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타인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내 몸을 살피지 못한 대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 성격 때문에 둘러 왔던 시간들이지만

사실 도망이 아니라 버팀이었고,

눈치가 아니라 책임이었고,

낯가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안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아이들을 키운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미뤄두고 살았다는 걸

현재,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엔

푸릇했던 나의 리즈 시절 얼굴은 없다.

그제야 내 외모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를 돌봐야겠다는 맘을 먹기 시작하고,

나를 돌아보기 시작한 시간은

고작 8개월째다.


아이들을 낳고 부었던 살이라 그런지 마음처럼 쉽게 빠지진 않는다.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하려고 헬스장도 끊었다.


드디어 내 몸도 살피기 시작했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 나는 오래 버텨온 내 몸에게 이제야 화해를 청했다.

내 몸을 살피고, 마음을 돌보며, 나를 먼저 챙기는 연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젊고 푸르던 얼굴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사이 잘 자라 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 생겼기에


오늘도 나는 나를 돌보는 연습을 하며

천천히, 조금씩

다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낼 거라는 걸 안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응원을 보낸다.

Beautiful Life




*사진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