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꽃그늘
꽃그늘
시인 나태주
아이한테 물었다
이담에 나 죽으면
찾아와 울어줄 거지?
대답 대신 아이는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나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늦둥이 아들이 있다.
연년생 남자아이들만 키우다가 딸이 있으면 나에게 큰 위로가 되겠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제게 예쁜 딸을 주세요." 둘째를 낳고 1년이 지나도, 8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점점 나는 체력이 빠지고 있었다.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제 나이 마흔전에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흔이 넘으면 너무 나이가 많아서 체력적으로 제가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내 나이 서른아홉 12월 20일에 태어났다.
딱 마흔 되기 11일 전,
'참 유머 있으시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딸이 아니었다.
'헉 하나님... 저는 저와 잘 맞는 딸을 원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그렇게 그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게 커갔다.
4살 때 딸이 아닌 나름의 이유를 알게 된 일이 생겼다.
약속이 생겨 형들에게만 맡겨두고 친구들을 만나려 나갔다.
그때, 나는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그분의 섭리를 느꼈다.
'나는 안전주의자다.' 그런 내가 아이를 아이들에게 맡겨두고 약속을 가는 것은
불안했을 텐데 내 마음이 자유로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였다.
딸이었으면 매번 그 막둥이를 옆에 끼고 다녔을 거라는 생각에 아찔 할 정도였다.
그 약속 이후, 직장을 복귀하여 안정적으로 다니게 되었고, 우리 가족의 삶에도 나름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기도가 다 이루어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첫째, 둘째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첫째, 둘째도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소중히 여겨주지만 이 아이는 유일하게 나와 결이 비슷한 MBTI의 'F성향'을 갖은 아이라 그런지 나를 소중히 여기는 감정을 표현을 해주는 아이였다.
막둥이가 7살 때쯤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책을 선물을 받았고,
그 책을 읽다 탁 하고, 멈춘 부분이 앞부분에 소개한 시였다.
막둥이에게도 물어보고 싶었었다.
"형준아 이담에 엄마가 죽으.... 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 아이는 "엄마ㅠㅠ그런 소리하지 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참을 나를 안고 울었다. 나를 소중하다고 표현해 주는 아이가 고마웠다.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맘을 표현해 준 그 아이가
힘들고 지쳐 있던 내 상처 위에 딱지를 만들어 주었다.
한참을 울다가 멈추고
"엄마는 이 시를 읽으며 너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엄마, 나는 엄마가 없다고 생각만 해도, 나는 눈물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