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나뿐였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 교회를 나가고 나서부터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했다.
스무 살 되자마자 교회 초등학교 찬양선생님을 맡았다.
난 성실하게만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가끔씩 빠지기 하고, 지치기도 해서 힘들기도 했었다.
혼자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부모님이 깨워주고 챙겨주는 사람보다
성실하게 교회를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좋아하고 즐거웠다.
스무 살 새내기 선생님인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반주자 학생과의 만남을 빼놓을 수는 없다.
열한 살 여자아이 김미진.
피아노 반주를 본인의 마음까지 담아서 칠 줄 아는 수준급의 피아노를 쳤던 아이가 있었다.
수련회를 갈 때도 그 친구와 호흡을 맞춰서 연습하고 준비했었다.
그 시절, 그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연습을 시키다가 율동하는 친구들이랑 놀기만 하고,
딴짓만 하던 아이들을 혼내기도 하고,
내가 진짜 멋진 선생님인 것 마냥 그렇게 어른 흉내를 내던 때였다.
그 아이와 함께한 찬양 인도는 나에게 엄청난 즐거움였다.
그때부터 '찬양인도자'를 꿈꾸게 될 만큼 나의 재능인 줄 알 정도로 좋아했다.
성인 반주자 친구들도 그 아이처럼 반주자도 예배자가 되고,
인도자에게 맞추는 반주를 할 수 있는 친구가 흔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친구를 나는 더 특별하게 애정했었다.
내가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님을 할 때,
우리 반 발표회 반주자로 세우기도 하고,
내 직장인 유치원을 자기 방학 때면 놀러 와 반주를 해 주기도 하면서
나를 잘 따랐던 친구다.
세월이 흘러
결혼하면서 내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
나만의 세월을 살아 내고,
그 아이도 그 아이만의 세월을 살아 냈다.
살다가 한 번씩 문득문득 생각이 떠오르면 흐뭇했던 시절로 기억되었다.
초등돌봄전담사가 되고 5~6년이 되었을 때 문자가 왔다.
"미진이라는 아이를 아냐고?" "응 알죠? 제자!"
나의 이름이 흔하지 않으니 혹시나 해서 카톡으로 조심스럽게 문자를 했단다.
자기도 초등돌봄전담사를 하고 있다고
"어? 정말?? 피아노는??" 어떡해 초등돌봄전담사가 되었느냐 물었다.
'난 그 친구는 멋진 음악 하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치다가 자기를 응원해 주던 엄마가 일찍 떠나시고 음악을 멈췄다고 했고
그리곤 방황을 한참 하다가... 대학교를 들어갈 때쯤 '난 뭐 하며 살지?' 했을 때,
내가 생각이 났단다
그래서 유아교육과를 지원해서 공부를 마치고 임용을 치르던 도중
한번 초등돌봄전담사를 쳐볼까 하고는 1등으로 붙고
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미진이라는 아이를 아끼고 좋아했지만, 영향력까지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힘들고 어려웠을 그때 그 옆에 있어주지 못했던 미안함이 찾아왔다. 그도 잠시 그 시절을 소중한 기억으로 나를 떠올려 주었다는 것이 내 인생의 훈장을 달아준 듯 나를 세워줬다.
나는 성인, 그 아이는 4학년였기에 어리게만 보였던 그 친구는 나와 겨우 9살 차이가 난다.
이제는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며,
나의 어른 노릇에 잘 따라와 준 심성 고운 아이였음에 감사함이 가득 넘친다.
그렇게 마음자세를 바꿨음에도
여전히 내게 전화가 올 때마다
그때로 돌아가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그 시절, 그 아이와 내가 함께 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새겨진 게 분명하다.
더 사랑하게 된 아가.
나를 잊을 수 없어서 나를 따라 했다던 아가와
이제, 그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중이다.
*사진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