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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Sep 19. 2022

엄마의 화분

 



“안녕? 잘 다녀왔어?”


퇴근길에 우리 집 베란다를 올려다보니 화분 두 개가 반갑게 나를 내려다보며 인사한다. 요즘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듬뿍 받고 자라고 있는 베란다의 화분들을 보면 왠지 동질감이 느껴진다. 저 화분처럼 여전히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받으며 살고 있어서 일까.


“민희야~ 이리 와 봐. 이 것 좀 봐.”


이른 아침부터 오랜만에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결혼한 언니가 집들이 선물로 가져온 화분을 실내에 두었는데 잎이 금방 시들어버렸고, 엄마가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 두었더니 며칠 새 연둣빛의 연하고 부드러운 새잎이 자라난 것이다.


엄마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베란다로 나가 쭈그려 앉아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화분을 바라본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엄마는 화분이 얼마나 자랐는지, 잎은 건강한지 마치 사랑스러운 아기를 기르듯 화분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매일매일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물을 주고, 햇빛이 강하면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필요에 따라 식물에 바나나 껍질, 계란 껍데기 같은 거름을 주기도 하고, 힘이 없어 쓰러질 것 같으면 작은 버팀목도 세워주기도 하고, 그리고 식물이 더 무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더 큰 화분으로 옮겨심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관심과 애정으로 화분을 길러낸다.


화분을 길러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 삼 남매를 길러낸 엄마의 수고가 어땠을지 알 것만 같다. 어릴 적부터 예민했던 나는 조금만 소홀히 해도 쉽게 시들어 버려서 엄마가 유독 관심을 많이 주어야 했던 화분이었을 것이고, 마르고 빈혈이 있어 자전거를 타다가도 픽픽 쓰러지곤 하던 남동생은 나만치 애정과 관심을 많이 들였을 것이며, 언니는 물만 줘도 혼자 쑥쑥 자라 금방 잎을 무성히 펼쳐서 일찍이 동생들에게 버팀목과 그늘이 되어 주는, 엄마에게는 든든한 화분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식마다 각기 다른 수고로, 관심과 사랑으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식들을 길러낸 것이다.


독립한 남동생과 언니는 엄마 손을 떠난 지 오래이지만 난 엄마와 단둘이 살며 엄마의 손길과 관심을 여전히 받고 있다.


최근에 나는 응급실에 갔던 적이 있다. 새벽에 갑자기 명치가 답답해오고, 가만히 있어도 배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에 잠이 깨버렸다.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어서 엄마를 깨우고 말았다.


“엄마 나 제대로 체한 것 같은데…”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창백해지고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에 엄마는 내 배를 마사지해주기도 하고, 따듯하고 진한 매실차를 억지로 먹여보기도 하고, 엄지와 검지 사이를 지압해보기도 하고, 양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바늘로 찔러 피를 내기까지 했는데도 내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응급실로 가자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링거를 맞고, 약을 먹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던 엄마에게 이제 괜찮아지고 있으니 링거 맞고 갈 테니 먼저 집에 가라고 말했다.


그렇게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링거를 맞다가 잠이 들어버렸는데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응급실 밖에서 나를 찾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괜찮냐고 간호사에게 묻는 엄마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 응급실 간호사는 링거 맞고 잘 자고 있다고 엄마에게 말했는데 내가 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가겠다고 응급실 문 앞까지 왔던 것이다.

 

나이 서른 훌쩍 넘은 아픈 딸 때문에 엄마는 다시 돌아온 것인데, 응급실 간호사도 그런 상황이 어색했는지 엄마에게 말했다.


“어머니~ 딸이 아이가 아니잖아요~ 다 컸는데~”

그 소리에 나도 민망해서

“엄마! 나 괜찮아. 집에 가있어!” 하고 일부러 더 씩씩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왜 전화를 안 받아! 걱정되게!” 하고 말하는 엄마.


내가 무사(?)한 지 확인한 엄마는 다시 집으로 갔고 침대에 내팽개쳐져 있던 핸드폰을 보니 그제야 엄마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가 여럿 떠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간 후 걱정돼서 전화를 했는데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내가 무슨 일이라도 난 것 같아 불안했던 것이다. 다시 돌아와 직접 눈으로 내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나서야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링거를 다 맞고, 괜찮아져서 집으로 돌아가서 거실에서 잠든 엄마를 바라보면서 괜히 유난 떨어서 엄마를 걱정시킨 것 같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자식이 다 커도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이 조금만 다치거나 아파도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일로 더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해서 걱정을 시키지 않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손길과 관심이 덜 가는 자식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늘 푸릇푸릇해서 엄마가 언제나 마음 놓고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식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이른 아침에도 엄마는 어김없이 베란다에 나가 쭈그려 앉아 화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습이 마냥 소녀 같고 귀여워서 계속 바라만 보고 있다가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고 언니와 남동생에 보내주었다. 우리 모두 엄마의 모습에 귀엽다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화를 나누며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  남매 모두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엄마를 관심과 애정 그리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마음으로 보살펴 주어야  때가  것임을. 자식도 부모라는 화분을 길러내야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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