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립지 않은 것들이 그리운 날
그 영화를 보지 않은 건 제목 때문이었다.
지명이 제목인 영화들이 있다.
예컨대, 곡성, 밀양, 파주, 카사블랑카, 필라델피아 같은 영화들.
어쩌다 이런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을지 유추해 보면 그 도시나 지역이 지닌 특유의 분위기, 상징하는 어떤 것, 혹은 정말로 그곳이 주 촬영지여서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영화로 인해 어떤 도시들은 운명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산다.
카사블랑카에 갔을 때 나는 그 도시가 주는 신비한 색채에 마음을 빼앗겼다. 푸른 바다, 시간의 흔적을 머금은 하얀 벽들, 초록의 아라베스크 문양, 빨간 택시, 노란 불빛의 색이 점점이 번져가며 여행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리고 영화 카사블랑카. 대서양 바다 위에 고고하게 서 있던 모스크와 하얀 집들, 오래된 골목 어디선가 아련한 화면 속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영화는 카사블랑카에서 단 한 장면도 촬영되지 않았지만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에는 낡고 적당히 흐릿하고 아득한 도시가 담겨 있었다.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 선정작이며 이현정 감독, 이선호·김보라 주연의 그 영화는 내 고향을 제목으로 달고 세상에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 중학교를 졸업하고 근처의 도시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살았던, 내 생의 상당 부분의 추억과 기억을 품고 있는 곳 말이다.
예고편에서 앳된 얼굴의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낡은 촌구석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을 걸요.
그러니까 그 촌구석에는 낡고 오래된 집들과 좁은 골목길, 닭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던 시장, 녹슨 창고들, 논과 밭, 한내를 가로지르는 철교, 작은 기차역과 성당이 있다. 무채색의 느리게 움직이는, 실체가 없는 희뿌연 어떤 것으로 자주 꿈에 나타나는 곳. 그리고 내게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내 잘못도 아닌 가난과 그 가난으로 인한 수치심과 절망과 자꾸 덧나는 상처와 무의미한 일상들이 떠다니던 그곳은 누군가에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간일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들이 천천히 흘러갔다.
한 줌의 희망도 없었기에 낡고 닳아서 바스러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어린 나를 압도했다. 그러니까 살기 위해선 그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노력했고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 후로 다시는 찾지 않았다.
가끔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가다가 표지판에 쓰인 그 지명을 보게 되거나, 영화제 팸플릿에 쓰여 있는 낯익은 제목을 보게 될 때는 심장이 덜컹거리기도 했다. 더 멀리, 최대한 멀리까지 달아났으나,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미세한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마음이 흔들렸다.
이현정 감독은 처음 가 본 그곳에서 어떤 의미를 찾은 모양이다.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 의미와 독특성을 가진 공간이라고 감독은 생각했겠지만 그곳은 ‘비밀을 품은 땅’이 아니라 그저 ‘잊힌 공간’이다. 사람들은 고단한 시절의 생채기를 잊고, 결연한 의지를 잊고, 한 때 밥상에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같이 밥을 먹던 기억도 잊는다. 이 모든 것들이 뭉뚱그려 들어가 있는 그 공간도 잊는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알 수 없는 파동과 여운 속에 희망이 있길 바랐던’ 감독의 의도와 심정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을까. 무너진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각자의 기억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고 이야기하는 일이 가능할 거라고 감독은 확신하는 듯 하지만, 무너져 폐허가 된 어릴 적 그 공간 어디에서도 희망의 부스러기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여행자로, 경계인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며 살아왔다.
어느 날 이상한 그리움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아픔과 상처가 승화된 어떤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삶은 구차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흙먼지 날리는 길 가에 서 있던 한 아이의 머리카락을 날리는 포근한 바람 같은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핀 코스모스를 꺾어 손에 쥐고 논둑길을 달리다가 문득 올려다본 눈부시게 파란 하늘 같은 것이었다. 흑백 사진 속에서 얼핏 번지는 유색의 습기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많이 변했을 것이다. 기억 속의 작고 낡고 촌스러운 시골 읍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커다란 나무가 있던 초등학교 운동장은 그대로 일까. 어두컴컴한 창고 같았던 그 집들은 모두 없어졌겠지. 학교 앞 문방구, 낡은 기차역, 연탄재가 나뒹굴던 골목길, 가끔 잡풀들 사이 노란색 들꽃이 피던 공터도 사라졌을 것이다. 개발과 트렌드를 덧입어 변해 버린 공간에 무너진 폐허의 그림자가 겹친다.
언젠가 그곳을 다시 찾을 날이 올까. 아무렇지 않게 영화를 보면서 익숙한 장소와 풍경에 반가워하는 그런 날이.
살다 보니 그립지 않은 것들도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