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보호법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나 녹음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첫째도 증거요, 둘째도 증거인 재판에서 일반인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으면서도 증명력이 강한 증거가 녹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법은 허락되지 않은 녹음에 대하여 일정한 제재를 가하고 있으므로 무턱대고 녹음을 했다가는 상응하는 처벌이 뒤따를 수 있으니 주의가 요구된다. 이번 기회에는 녹음과 관련된 법적 쟁점들을 정리해보도록 하자.
먼저 대화 녹음의 경우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녹음하는 사람이 본인의 참여없이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녹음하는 사람이 대화의 한 당사자로서 대화에 참여하면서 몰래 녹음하는 것이다.
이 둘은 명백히 구별되는 개념이고, 우리 법도 상당히 다르게 다루고 있으므로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타인 간 대화의 녹음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①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ㆍ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당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제4조(불법검열에 의한 우편물의 내용과 불법감청에 의한 전기통신내용의 증거사용 금지)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불법검열에 의하여 취득한 우편물이나 그 내용 및 불법감청에 의하여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제14조(타인의 대화비밀 침해금지) ①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
제16조(벌칙) ①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1.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
2. 제1호에 따라 알게 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
먼저, 이 경우 형사책임을 질 수 있으므로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먼저, '타인 간'이라는 점은 녹음하는 사람이 대화의 당사자가 아닌 경우를 말한다. 특정 장소에 도청기를 설치해두고, 해당 장소를 방문한 타인들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몇몇 쟁점들을 추가적으로 검토해보면, 만약 A, B, C가 한 곳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데, A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B와 C의 대화를 현장에서 녹음한 경우라면 '타인 간의 대화'로 보기 힘들어 처벌되지 않는다.
만약 A가 B에게 부탁해서 B의 동의하에 B가 C와 전화통화하는 것을 녹음한 경우 설령 전화통화 당사자 일방의 동의를 받고 그 통화내용을 녹음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의 동의가 없었던 이상 처벌된다(대법원 2002. 10. 8., 선고, 2002도123, 판결).
한편, 해당 녹음이 '대화'인지가 쟁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사회복지재단 돌보미에게 10개월 된 아이를 맡겼는데, 아이가 학대를 받은 정황을 인지해 몰래 녹음기를 아이에게 부착했더니, 돌보미가 "미쳤네, 미쳤어, 돌았나, 제정신이 아니제, 미친놈 아니가 진짜, 쯧, 또라이 아니가, 또라이, 쯧, 울고 지랄이고"라는 등 욕설하였고, 이에 아이는 울고 있는 것을 듣기되어 고소한 사안에서, 위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에서 말하는 '타인간의 대화'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된 것이다.
1심에서는 타인간의 대화임을 인정하여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에 의해 증거능력이 부정되고, 설령 대화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통신비밀보호법>은 적용되지 않으나 *상대방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녹음한 행위가 음성권 침해 등 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사인의 위법행위에 의해 수집된 증거는 해당 행위로 인해 침해된 법익과 그 행위를 통해 달성되는 공익을 비교형량하여 공익이 월등히 클 경우에만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는 판례법리*가 적용되는데, 이 사안의 경우 공익이 더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증거능력을 배제하였고,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배제되지만(형사소송법 제208조의2), 사인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경우 그 행위로 인한 피고인의 이익 침해 정도와 범죄의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적 요구를 비교하여 후자가 우월할 경우 증거능력이 인정되나, 그렇지 않을 경우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판례법리이다. <통신비밀보호법>상 위반이라면 동법 제4조에 의해 위 판례법리는 적용되지 않는다.
증거능력 없는 위 녹음을 기반으로 작성된 각종 조서들도 *'독수독과의 원칙'*에 따라 증거능력을 부정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독수독과(毒樹毒果)원칙"이란, "나무가 독이 있는 나무라면 그 나무에 열린 열매는 볼 것도 없이 독이 있는 열매다."라는 의미로, 위법하게 수집되어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1차 증거)를 바탕으로 수집된 증거(2차 증거), 예를 들어 위 사례에서 증거능력 없는 녹음파일(1차 증거)을 근거로 하여 돌보미를 추궁하여 획득한 피의자신문조서(2차 증거)의 경우 마찬가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예외가 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위 피고인(돌보미)의 발언은 대화 상대방에게 화를 내거나 하는 등 비언어적 행위를 한 것이고, 10개월 된 아이도 아직 언어능력이 온전히 발전하지 못해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에 그친 것으로 평가해야한다는 등의 이유로 위 녹음을 '대화'로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므로 <통신비밀보호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위 녹음으로 인한 피고인의 인격적 이익의 침해 정도가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적 요구와 비교할 때 사회통념상 허용 한도를 초과할 정도의 현저한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하여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는 피고인의 항소를 대법원이 기각함으로써 확정되었다.
위 사례는 단순히 피고인의 아동학대 범행에 대한 증거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는 쟁점을 포함한다. 만약 위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했다면, 이를 녹음했던 아이의 어머니가 도리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며, 음성권 침해를 이유로 민사상 손해배상(위자료)을 해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위 법문을 꼼꼼히 살펴보다 보면 한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법 제3조 제1항과 제14조 제1항의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법 제3조 제1항은 "타인간의 대화를 청취하지 못한다"라고 하는 반면에, 제14조 제1항은 "타인간의 대화를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라고 좀 더 좁혀서 정의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타인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귀를 대어 몰래 엿듣는 행위(일명 '귀대기')의 경우 제14조 제1항에 따르면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는 반면에, 제3조 제1항에 따르면 어쨌든 '타인간의 대화'를 그들의 동의없이 몰래 들은 것이기 때문에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처벌 규정인 제16조 제1항 제1호는 제14조 제1항이 아닌 제3조 제1항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대법원은 제3조와 제14조의 관계에 대해 "제3조 제1항에서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제14조 제1항에서 위와 같이 금지하는 청취행위를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한 경우로 제한(한다)"(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3도15616 판결)라고 판시하고 있으므로 단순히 귀대기를 통해 타인간의 대화를 엿듣는 것만으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2. 당사자간 대화의 녹음
이 경우는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므로 기본적으로 <통신비밀보호법>의 규율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허락없이 녹음한 경우 상대방의 음성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으므로 민사상 위자료를 지급해야할 수도 있음을 알아두자. 물론, 정당한 목적이나 이익이 있고 비밀녹음이 필요한 상당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위법성이 조각돼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을 수 있다.
2021. 10.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