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서야, 내가 보였다

지금 생각하는 30년 전 그 여행

by 치세

여행의 모든 건, 떠난 뒤에야 알게 되던 시절이었다.

미리 준비할 것은 비행기표와 달러, 가이드북 한 권이 전부였다.

달러는 100달러짜리가 환전율이 좋다고 해서 100달러짜리로,

잃어버릴 것에 대비해 반은 여행자수표로 준비해 일련번호를 적어두었다.

인도 여행에는 3000달러를 가지고 떠났는데,

몸에 딱 붙는 복대 같은 것에 넣어서 절대로 몸에서 떼지 않았다.


밤늦게나 새벽에 여행지에 도착하면, 게스트하우스를 돌며

'Do you have a single room?'을 몇 번이나 물어봐야 했다.

그리고 방을 한번 본 후 마음에 들면, 그제야 배낭을 풀었다.

정보는 오로지 가이드북과 만나는 여행자들의 조언뿐이었다.

예약 시스템도 없었다.

여행 중 만나 친구가 된 사람들과 헤어질 때도,

'몇 월 며칠에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보자',

그게 다음 만남을 기약할 유일한 약속이었다.


30년의 시간 동안 세상은 변했다.

이제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호텔, 맛집, 관광지, 카페 등 모든 정보가 다 나온다.

길을 잃을 일도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일도 없다.

지도를 펼치지 않아도 손 안의 화면이 모든 것을 안내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편리함 속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는 늘 길을 잃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렸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서야, 내가 미처 몰랐던 세상을 만났다.

그건 그때만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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