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카페인

밥과 커피

by 릴리에



내가 낳았던 아기가 자라 같이 라면 먹을 만큼 컸다는 사실을 행복이라 한다.

세잎 클로버의 꽃말이라는 행복.

우리 집은 세입 클로버(입이 세 개) 식구인데, 요즘 같은 클로버의 계절이면 지천에 널린 흔하디 흔한 클로버의 한 때를 오래 두고 보고 싶다 생각이 든다.

굴러가는 낙엽조차 깔깔대던 시절이 있었다면 흘러가는 강물도 아쉽게 돌아보는 내가 있다.

계절이 지날 때면 클로버나 낙엽을 책장 속에 스크랩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을 오래 두고 보기 위함이다. 부주의한 손길에 말린 잎이 바스러지는 날이면 마음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유기농이 난무하던 육아기엔 라면은 나쁜 식품이었다가 아이가 자람에 따라 고마운 한 끼가 될 수 있었다. 초딩이랑 처음으로 컵라면을 먹었던 날 기념사진도 찍으며 팬데믹을 견딜 수 있었다.


팬데믹이 길어지며 종종 남편의 도시락을 쌀 때가 있다. 내가 쉬는 날이고 팬데믹의 초반이었을 땐 밑반찬 한 가지 정도는 불에 휘리릭 볶아 도시락에 담아 주었는데, 지금은 가방에 즉석식품 몇 가지를 담는 것 만으로 도시락 싸기는 금방 끝난다. 너무 쉬워서 섭섭할 줄 알았는데 더 독해진 팬데믹을 견디려면 뭐든 아껴야 한다, 체력이든 힘이든 마음이든.


즉석밥에 포장김치에 컵라면 정도만 있어도 한 끼 도시락이 충분히 꾸려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렇게 편리하면서도 먹어서 탈 나지 않는 식품들은 고마운 일용할 양식.

급식이 없던 시절 고등학교를 다닌 나를 위해 도시락을 2개나 싸고 따뜻한 아침밥까지 먹게 해 주신 어머니의 노동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먹는 일에 진심인 나는 실력은 없지만 엄마손 노동을 들여 만든 음식으로 아이를 다 키웠다. 토마토를 갈아 케첩을 만들고 사과를 조림하여 잼을 만들어 먹였다. 좋은 재료와 잘 만들어진 조리도구를 요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너무 지지고 볶은 것보다 자연의 상태를 살린 음식을 추구한다.


나고 자란 고향보다 더 긴 세월을 서울에 살다 보니 마음 통하는 동네 맛집들이 있다. 이사를 가도 발품 팔아 찾아가는 단골인데, 팬데믹으로 2년 가까이 가보지를 못했다. 이 도시에서 나에겐 카모메 키친 같은 그곳을 가끔 그리워한다.


팬데믹으로 가정 요리 메뉴가 많이 늘었다. 대부분의 음식은 흉내라도 낼 수 있으나 튀김만큼은 처음 시작이 너무 두려웠다. 요즘엔 건강한 튀김이 대세여서 공기로 튀기는 방식이 국민가전이 되었으나 튀김은 기름에 흠뻑 빠뜨려 튀겨 먹어야 한다는 소신이 있다 보니 지옥불처럼 삼킬듯한 끓는 기름이 너무 두려웠다. 첫 도전은 감자튀김이었는데 생감자로는 프렌치프라이나 칩을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냉동제품을 사서 감자튀김을 해 먹는 것으로 타협했다. 나가서 튀김을 포장해 오는 동안 눅눅해질 상태를 생각해보면 냉동 완제품을 튀겨서 바로 먹는 유익이 훨씬 크다. 감동적일 만큼 맛있다. 뽀글뽀글 기름이 끓고 있는 소리를 가만 듣고 있는 3분 남짓한 시간이 평화롭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팬데믹이 가져온 이 튀김 생활도 이제 적응이 된 것 같다.


이 여름엔 서울 하늘에 두 번이나 보았다. 매우 선명하고 길었던 진짜 같은 무지개. 진짜 무지개를 보면서 진짜 같다니. 뉴스에도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기장에 쓸 만큼 대단한 무지개였다. 상투적인 비유가 되어버린 무지개도 실물로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어른 아이 소리 지르면서 무지개를 보러 ‘튀어’ 나갔었다. 무지개의 기원이 성경의 노아 이야기에 나온다. 약속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더 반가운 무지개이지만 좋은 것은 이유가 없이도 좋다.


짧은 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있다. 곱고 아련한 글쓰기는 앞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싶은 인생의 여백이 멀어져 가는 것을 아쉬움으로 바라보는 요즘이다. 루저 혹은 투사가 되어 연단된 글을 들고 돌아오게 될 것 같지도 않은 그냥 하루 버텨 한 달 먹고사는 월급 노예, ‘결국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마흔’(인간실격, JTBC, 2021)의 출근길은 어떤 채도를 지녔을지. 엄마의 부재를 불편해할 아이를 위해 주문한 레고 세트가 로켓 배송으로 너무 빨리 와버렸다. 얼른 뜯어보고 싶다며 엄마의 복직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를 보는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떼어 놓고 울리며 출근해야 했던 날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학교 다닐 때 윤리 교과서에서 배운 일의 세계란 적성이나 소질과 관련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학문의 세계를 탐구하며 적성과 소질을 탐색해본 끝에 내린 결론이 현재의 일터였는지는 알기 어렵다. 지금에야 어떻게 되었든 그땐 최선이었고, 우리에게도 합격 통지에 환호했던 날이 있었다는 것.


밥 먹다 말고 지영이의 합격 전화를 받고 온 식구가 밥상 앞에서 환호하던 날의 풍경.
입 안 가득 먹다 만 밥을 물고 엄마, 나 합격했대, 외치던 이십 대의 김지영.

#2019년 작,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이십 대의 삽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가방 끈을 줄이고 먼저 엄마부터 되었을 만큼 아이 낳고 나서부터가 내겐 화양연화花樣年華. 아주 어릴 땐 아기와 집안에 거의 고립되다시피 제한된 생활이 이어지는데 그 자발적 고립이 평화롭다 느껴질 만큼 부대끼며 왔나 싶었다. 공부하고 일하고 (놀고) 마지막에 결혼을 하는 순서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안이 있는지도 알지는 못한다.

겨우 아빠밖에 될 수 없는 그들보다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자로 태어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하기에, 수많은 출근길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공항 가는 길 버스를 멈추고 내려 바라보던 어느 집 창가에서는 어떤 여자가 이불을 널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평화롭게 보이고 나만 왜 이러고 미친년처럼 살고 있나, 그 길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주인공의 서사.

#<공항 가는 길> 8회, KBS, 2016


지금도 회자되는 이 드라마의 서사를 좋아한다. 공감하기 힘든 소재 조차도(가정 있는 남녀의 사랑) 인생의 파고 속에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내러티브의 본질을 개연성이라 했다. 그럴 수 있고 그랬을 것 같은 마음.


밥 한 끼보다 비싼 커피 한 잔에 거침없이 돈을 쓰는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겐 <밥과 장미>(김진영의 2012년 작품으로 보석 같은 글, 같은 제목의 오도엽 저서는 노동현장에 대한 작품으로 원래는 법과 장미였다고 한다)를 권해 보자. 커피에 온갖 사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고작 한 모금의 음료에 담긴 방대한 서사와 위로와 가치 때문이다. 인생은 밥과 커피로 이루어져 있다. 피의 팔 할이 커피.


글쓰기는 내 커리어와 크게 관련은 없고 본캐로 살면서 쓰는 글들이란 공적인 문서들이 대부분인데 그것은 글이라기보다는 실체 없는 기록의 나열 혹은 근거 없는 이상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것이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이기에 기대된 역할을 하는 것일 뿐 일터에서 하는 노동으로서의 글쓰기가 내게서 태생한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급여명세서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쓴다.

부캐로 하는 글쓰기는 대가 없이 쓰지만 오늘을 살게 한다. 글쓰기로 아침을 시작하면 카페인 같은 효과를 얻는다. 커피 중독자인 내게 하루를 버티게 하는 커피 한잔보다 글쓰기의 각성 효과가 더 크다고 느낀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고 한 단락만 써도 한나절은 방전되지 않을 것 같다. 카페인만 너무 들이붓지 말고 글쓰기로 채워가는 계절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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