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는 방탄과 함께
매일 아침 데운 우유 위에 핸드 드립으로 내린, 한 여름에도 따뜻하게 먹던 우유커피가 없는 미래의 아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BTS가 나오는 콜드 브루 한 봉지와 차가운 우유 한 팩으로 위로하며 살아가게 될 수많은 날들이 예상된다. 팬데믹의 여파로 별다방으로 출근 도장 찍던 사치도 부릴 수 없게 되었고, 매일 아침 벤츠와 렉서스 차주들이 출근 도장을 찍던 GD 매형 닮은 사장님이 투샷으로 갈아주시던 라떼 한잔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아미는 아니지만 방탄이 광고하는 커피의 초판본(?)을 기억하고 있는데, 휴직하고 다시 복직하는 동안 새로운 에디션으로 커피의 맛과 향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의 업계에서 15년을 뭉개고 있다. 발령받은 첫 해부터 셈하기로 계산하면 그렇지만 중간에 공부한다고 도망갔다가 돌아와선 애 키운다고 들락날락했던 경력들을 종합하면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필요해서 나도 내 경력의 할푼리까지는 모르겠다. 위에 계신 님들에게 업무 관련 대거리할 정도의 전문성은 있다고 믿고 있다. 복무와 관련해선 합리적인 개인주의로 재수 없게 살고 있다. 애국심이나 충성심 같은 면에서 90년대생 보다 앞서 갔다는 이기적인 세대라 조직에 대한 애정은 1도 없으나, 오래 몸담고 있다 보니 표창 그런 것도 받아보았다. 그 상은 어디 딴 데로 이직할 때 쓰려고 잘 모셔두었다.
나의 복직 시점에 누가 어디로 갔고 누가 어디서 새로 왔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사람의 일(인사)은 알 수가 없는 법이라 그저 대천명 하기로 했다. 관리자의 여러 유형들 중에 능력 면에서 미달인 경우엔 시간 밖엔 해결해 줄 방법이 없고(그들은 위로는 못 가니 옆으로 갈 때까지), 인성이나 자질 면에서 힘들게 하는 경우라면 내 편에서 살길을 모색하는 게 차라리 빠르기 때문이다.
15년째 다시 또 첫 월급이다. 수입이 없을 때에도 은행에 노예로 사는(아파트의 노예인지) 처지라 이 직을 유지라도 하고 있는 것일 뿐 짧지 않은 근속연수가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다. 그 인고의 시간들이 내게 남긴 것이 이 집 한 채,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게 해 준 보험 같은 월급, 자식한테 신세는 안 져도 될 것 같아 포기할 수 없는 연금, 플러스 알파로 탄수화물 중독과 커피 취미.
아, 그리고 브런치에 쓸-거리들.
익숙하지만 낯선 일터로의 복귀.
글쓰기 하던 만큼 치열하게 이제 살기도 해야 한다. 글 쓰던 힘까지 짜내며 일해야 한다.
엄마가 휴직과 복직을 하도 반복하다 보니 복귀를 결정한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그럼 내년엔 다시 또 휴직하는 거지?
응? 휴직과 복직이란 수학책에 나오는 반복되는 규칙 찾기 배열 같은 건 아닌데. 다음 순서에 휴직을 넣는 게 정답인 문제였다구.
우리가 집을 사서.. 집이란 레고 장난감이나 과자보다 훨씬 비싼 건데 그래서 엄마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또 넌 이제 혼자 학교도 갈 수 있고..
엄마가 직장을 쭉 쉬지 않고 앞으로는 늘 언제나 항상 계속 다닐 거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아이는 패닉에 빠졌다. 공황장애는 이 시국에 복귀 앞둔 내게 와야 맞는 거 아니었나.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는 건 그 회사가 네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사장님들은 그런 고민 안 해. (한다고!!)
-내편인 남편의 잠언.
징검다리처럼 직장을 다니려면 프리랜서나 1인 기업, 혹은 연예인(!)이 되어야 하는데 난 노래도 못하니 오디션을 볼 수도 없고 방송 쪽은 안 되겠어. 프리랜서가 된다는 건 어떤 걸까. 이 세상에, 온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가 존재했다는 사실 조차 알리지 못한 채 죽을 텐데 도대체 누가 나라는 사람을 찾아와 일을 부탁한단 말인가.
가끔은 부캐로 살고, 8시간만 본캐로 살면 되는 직장인이 천직이라 생각하며 살자.
서구의 나라들에선 노동시간과 효율에 대한(프랑스의 주 35시간 근로제, 서구권의 주 4일제 이슈) 연구와 실험이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고용과 노동유연성, 사용성 이슈와 맞물려 았기도 한 난제 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은 논의를 시작했고 사회적 합의를 향해 진통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있다. 무엇이든 장기간의 연구와 투자, 실험을 거쳐(COVID-19 백신 제외) 정책을 도입하는 모습 때문에 그들을 선진국이라 부르게 된다. 재촉하지 않고 발언하고 생각하고 검토하고 실패해도 되는(정말?)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그 결과만을 뽑아 편리하게 인용하거나 LTE급으로 도입하려는 우리 사회의 정책들이 쉽게 실패하고 마는 이유.
육아기 근로 단축 시간(이하 육아시간) 제도가 몇 해 전 우리 사회에 도입되었고 과도기에 걸쳐있는 세대인 탓에 나는 수혜자 이면서 동시에 피해자 이기도 했다. 지금 세상에도 관리자가 곧 법으로 군림하려는 전체주의적인 직장문화가 마치 권위주의 시대의 그늘처럼 어딘가에 남아 있다. 학창 시절 우리를 감독하려(!) 했던 선생님들이 전부 은퇴하시고 우리 학교가 달라졌어요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도 그렇다. 시대의 유령처럼 살아 남아 팬텀 같이 등장하는 문화의 잔재들.
제도 위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관리자로 인해 육아시간을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했던 일이 있다. 육아시간을 반려했던 관리자와 냉큼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직원(나) 중에서 누가 더 진상인지.
유아기에 기관에 맡겨져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아이들에겐 신뢰감과 예측 가능한 일과가 매우 중요한데, 그날 엄마가 약속한 시간에 데리러 가지 못해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몹시도 울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아이는 등원을 거부했고 나도 그 주장이 타당하다 느꼈다. 이게 내 휴직 사유의 전부였다.
유아기 기억 상실증이라는, 인간을 창조하신 이의 축복 같은 설계 덕분에 많은 엄마들이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어미는 결코 잊지 않는다.
새끼 있는 어미는 건드리지 않는 게 자연과학의 정설 아닌가. 맹수 중에 젤 무서운 게 어미 길고양이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무렵엔 토요일에도 출근했던 기억이 있는 나도 참 오래된 직장인이다(라떼스럽지 않게 쓰기). 직장을 다니던 중간에 주 5일제로의 변화를 맞이 했었다. 더 버티다가 주 4일제를 내 눈으로 보리라 꿈을 품고 있는 나는 장래희망으로 주 4일제 직장인이 되고 싶은 어른이.
@참고 자료
https://m.blog.naver.com/molab_suda/221366890513
https://m.blog.naver.com/lifebooks_inc/222442446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