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항상 꽃처럼 오는 것은 아닐 거라고

꽃이 없는 곳에도 봄은 오는 거라고

by 릴리에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목적 없이 길을 나설 때가 있듯, 글쓰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살면서 필명을 짓게 될 일이 생길 줄은 몰랐기에 미처 준비해둔 멋진 닉네임은 없었지만, 아이가 어렸을 적에 지어주었던 예쁜 별명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어쩌면 모성애보다 맹목적인 것이 갓난아기의 엄마에 대한 사랑임을 엄마가 되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태어나 처음 사랑한 대상에게 베푸는 아기의 무한한 사랑은 놀랍도록 감동적이었다. 아이가 주는 그 큰 사랑에 비하면, 엄마로서 내가 주었던 모성애는 한없이 작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아기는 자라서 엄마에게 자신이 아는 가장 예쁘고 고운 이름을 별명으로 지어주었다.

릴리에. 아이가 어릴 때 엄마에게 지어준 별명, 나와 많이 다른데. @이미지출처: 포켓몬대도감

나에게 처음 글쓰기를 가르쳐주신 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다. 요즘엔 보기 힘들어졌지만 빨간 선으로 칸이 그려진 원고지에 글짓기를 배우던 시절이었다. 광역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서울로 진학을 해 직장을 찾고 정착하기까지 어린 날의 방황했던 마음들은 모두 나의 일기장을 거치며 세월이 되었다. 잊고 지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도 인생이 주는 위로를 찾고 싶은 가난한 마음에서였다.


글쓰기는 아주 오래된 교육의 방식이면서, 요즘같이 변화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글은 생각의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쓰는가도 중요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주는 배움과 성장의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십 년도 더 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너무 유명한 영화의 유명하지 않은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시골 목사였던 주인공 형제의 아버지는 소년에게 매일 한 장의 글쓰기를 하게 했다(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1992). 모든 걸 다 잃고 딱 하나만 인간에게 가르칠 수 있는 종말의 순간이 온다면, 글쓰기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하게 폰을 사용하지 않는 유저로 살아오다가, 어느 날 보니 폰 배경화면이 브런치 알림으로 가득 찬 것을 보았다. 알림이 일깨우는 바지런한 일상의 시작과 함께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실감했다. 잘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해내지 못했던 것들,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잘하기만 했다면 굳이 이야기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잘 먹고 잘 살았을 테니까.


봄이 오는 3월의 도심 속 거리는 햇살로 가득하다. 창문을 열어도 자동차 소리, 초고층 빌딩밖엔 없는데 어디서 봄을 느낄 수 있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봄이 항상 꽃처럼 오는 것은 아닐 거라고, 꽃이 없는 곳에도 봄은 오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화해하듯 작은 위로를 건네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