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다형과 단답형, 그리고 서술형 주관식
대표님, 회의 시작해 볼까요~
김 팀장의 에피소드, 영화 <82년생 김지영>, 2019
이 장면을 기억한다. 저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오고 갔던 대사들. 카메라마저 숨 죽이며 지켜보던 배우의 표정, 근육의 경련.
이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보았고 직장생활을 경험했고 집에 아이가 있다면 절대 잊기 힘든 장면이라 생각된다. 잊고 싶을 만큼 아픈 장면인데 잊히지 않는다. 뒤끝 있는 영화.
뒤끝.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제 쓰는 것들은 내 너절한 뒤끝. 이미 했던 얘기를 또 하고, 좀 더 영화적으로 해봅시다.
그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의 2 제1항이 반려되었던 그날.
사실 그는 ‘반려’ 버튼조차 누르지 않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내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 역시 그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모두가 퇴근해도 되는 시각에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 갔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해 메신저를 켜자마자 호출.
그 역시도 예상했기에 나도 가장 예쁘고 빳빳한 스커트를 차려 입고 출근했지.
어제의 반려 건은 이러이러한 사유로 불가하고..
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어제는 일이 안 끝나 육아시간에 나가지 못했으니 그 건은 즉시 삭제할 예정입니다.
아, 그런가, 알겠어요, 호호호 하하하.
네, 그리고 어차피 상관없습니다, 육아휴직을 할 거라서요.
네? (아니 뭐라고 너 미쳤어 제정신이야)
우리 처음으로 만났던 날 그가 내게 했던 말,
아, 그러고 보니 육아시간 쓰겠네요, 알아서 잘 쓰고 업무도 알아서 잘~ 호호호 하하하.
반려할 건이었다면 당당하게 의사표현을 했어야 하고, 소통하지 않겠다는 그 침묵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미리 준비해둔 정답(휴직)을 도시락 싸서 갔다.
제19조의 2가 안되면 제19조의 1이 있다. 원래 시안 2개 정도는 미리 준비해서 가고 준비된 시안이 없더라도 즉석에서 꺼내드릴 수 있는 히든카드도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그 역시도 성문화된 제도를 거역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관리자일 테고, 그(사실은 그녀)는 육아시간도 휴직도 없는 시대를 살며 아이를 키웠고 관리자도 되었기에 존경하는 마음이 더 크다. 아니, 그녀가 그날 업무로 너무 바빠 내가 올린 복무를 미처 보지 못했다 생각하자.
있어도 쓰지 못하는 제도 때문에 휴직을 하겠다는 논리와 추론은 논술 시간에 배운 것인지, 그 논술 실력이 나를 현재의 여기까지 오게 했으니 시대를 잘못 타고난 그 시절의 대입전형을 원망해야 하나.
선다형 문제나 단답형이 아닌 서술형 주관식과 논술형 문제에 더 익숙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라.
단답형과 암기식 교육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기초학문의 개론 단계에서나 숙련가를 양성하는 novice 훈련의 단계에서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적당히 아는 사람은 개론을 가르칠 수 없다던 옛적 교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마스터만이 개론을 말할 수 있고 단답형의 질문을 만들 수 있다.
크루 crew 수를 단기간 늘리기 위한 목적에선 단답형과 암기식이 도움 되는 방식일 수 있다. 다만 티오피를 고려해서 슬기롭게 사용해야 하는 도구이다. 도구 자체란 쓸모를 위해 설계된 것으로 선악을 내재하고 있지 않다. 도구를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하여 예컨대 칼로 무 자르듯 생명을 자르는 이들이 문제일 뿐.
주입식. 서술형과 논술형도 주입식으로 교육이 가능하다. 입시 미술학원에 가보면 데생도 어느 정도 암기의 영역에 있다. 분업과 과제 분석이 고도로 발달된 세상에 살고 있다. 주입식도 인격적으로 사용하면 효율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어쨌든 나의 선택으로 시작된 자발적 경력단절이었고 애초에 육아휴직이라는 선택지가 없었던 과거와 현재의 김지영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가져야 했다.
학교에 들어갈 만큼 아이가 자랐다고 느꼈을 때 다시 복귀를 할 수 있었지만 팬데믹이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폭풍에 쓸려 다시 또 휴직자가 될 줄은.
달랐다면 이번엔 비자발적인 것이었다.
재택근무. 내가 알려주지.
나도 회의 중인데 아이도 원격수업 중. 노트북이 뭐가 안 되는지 아이가 혼자 울고 있다. 울고 있는 내 마음도 음소거해야 한다. 엄마 일할 땐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방문을 닫았더니 엄마 회사 이름을 방문에 붙여 놓고 갔다. 내가 화상회의 중일 때 아이가 닫힌 문에 귀를 대고 듣고 있는 걸 알았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친절한 엄마 목소리를 실컷 듣고 싶었나.
먹이고 입히는 일들과 돌봄 노동의 모든 수고로움 속에 일과 일상이 뒤죽박죽인 채 2주 간격으로 우리 삶이 끊임없이 리셋되어야 하는 팬데믹의 일상.
#김 팀장과 김지영의 그 후.
독립 회사를 시작하게 된 김 팀장을 다시 만나 재취업에 성공했던 김지영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모든 것을 다시 내려놓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엔 모두가 수능을 알지만, 한 때 수능세대라는 말로 수능 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하여 서로가 상대를 희화하던 시시껄렁한 농담 같던 시절이 있었다. 재미없는 농담이었지만 악의적이진 않았고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수용적인 이웃들이었다.
대입 학력고사를 경험해 본 적은 없으나, 나 역시 수많은 암기와 일제고사, 강의식 수업이 있는 학교를 다녔기에, 학력고사의 어려움과 그 속에서 선발된 실력자들의 탁월함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한다.
과거의 시험 체제였다면 내가 현재의 사회적 지위를 쟁취할 수 있었을 거라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은 없다.
선배 학번들도 이미 수능으로 모두 대학에 입학한 시절에 나도 수능을 보고 논술도 보고 대학생이 되었다. 하고 싶은 공부와 해야 하는 공부를 동시에 하느라(복수전공) 평점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두 개의 전공에서 학점관리를 위해 현실적이고 관리 가능한 수강신청을 하려면 학교를 더 오래 다녀야 하는데 등록금이 너무 비쌌다. 최저비용을 등록금에 쓰고 두 개의 학력인정을 받았으나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졸업을 했다.
졸업과 동시에 해야 하는 공부와는 드디어 이별을 고했고, 오직 하고 싶은 공부만 해도 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연구자인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모호한 상태로 살면서 취업을 잠시 미룰 수는 있지만 여전히 돈 되는 일도 해야 하는 신분.
대학에서는 학문을 배우고 왔는데 회사는 훈련된 사람을 원했다. 대게 훈련된 것들이란 학교 밖에서 따로 돈 내고 배운 것들인데 이 쪽을 더 환영하는 눈치다. 매우 실용적인 접근으로 대학 진학을 회의적으로 고민하는 십 대들을 높게 평가하지만 나라면 일단은 대학생이 되어 볼 것이다. 그 시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너무 비싼 등록금 정도의 가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대학 잉여의 시대에 훈련 기능에 대해 대학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들과 유튜브에서 얻는 것들은 분명 다르지만 예상치 않게 속히 와버린 비대면의 시대에 고민 좀 해야 할 듯.
유튜브를 잘 하진 못하지만 거기엔 분명 내 상상과 기대의 범주를 초월하는 4차원이 펼쳐질 거란 인상을 받았고 AI 알고리즘은 사실 많이 부담스럽다. 도서관을 헤매다 무거운 책을 짊어지고 돌아오면 정작 읽을 힘도 없이 지쳐버렸던 때가 좋았다.
현재의 나를 직접적으로 먹여 살리는 건 아마도 애초의 해야 하는 공부 덕분인 것 같지만, 하고 싶었던 공부 쪽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방법론적 도움을 주었다. 직장생활에 안착한 이후에도 하고 싶은 공부 쪽에 미련이 남았던지 해야 하는 공부와 하고 싶은 공부 분야를 융합해보려는 시도를 했었다.
터미널까지 마치면 적어도 지금의 여기만큼은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길 닦는 작업이었던 것 같지만 그 길은 완공을 보진 못했다. 아이 키우며 일하며 공부까지 할 순 없는데, 이 셋 중에 소중한 일과 먹고사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다행인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로 학위나 학력인정 같은 구시대의 권위들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도 안착을 보장할 수도 없게 되었다.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 by Scorpions, 2011)을 들으며 공원 길로 걸어보자.
In the wind of change
Walking down the street,
distant memories are buried in the past forever
I follow the Moskva, down to Gorky Park.
Listening to the wind of change.
<Wind of Change> 중에서, by Scorpions, 2011, 소니뮤직, 네이버.
노래에 등장하는 Maxim Gorky의 <어머니>를 어릴 적 책장에서 줄곧 보며 자랐지만 읽은 적 없는 그 책에 대해 살아가며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국어책에서 배운 시들을 선생님 덕분에 외울 수 있게 되었고 살다가 문득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1988.
학교 다닐 때 배웠고 외웠고.
먼 후에야 알게 되었고.
사랑 그 이상을 노래하는 가난한 노래 같은 인생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지영아,
너 하고픈 거 해
영화 <82년생 김지영>,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