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인의 글쓰기

단 한 권만 발행하는 책

by 릴리에

목요일. 주말의 시작은 아니지만 예고편이어서 더 좋은.


밀린 설거지를 내버려 두고 반찬 가짓수 하나를 줄이고 쓰고 있는 글이다. 모든 삶을 완벽하게 다 살고 글쓰기 전용 테이블에 앉아 오직 글감에만 집중하여 쓸 수 있는 글을 기대하기 어려운 흔한 생활인의 글쓰기. 과정적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란다면 내가 이 세상에 없을 언젠가 아이에게 엄마를 이해하고 추억할 수 있는 유산으로 선물하고 싶어 쓴다. 엄마는 팬시한 사람이었구나, 반찬보다 글쓰기를 잘하는데 엄마도 된 거구나. 너를 위해 단 한 권만 발행하는 책이어도 엄마는 글을 쓴다.


ZOOM 플랫폼을 우리 집에선 CCTV로 쓰고 있다. 아침에 켜 두고 출근하고, 퇴근 시까지 수시로 원격으로 아이를 돌본다. 원격수업 경험으로 아이도 능숙하게 줌을 다루게 되었다. 가끔 화면에 아이는 없고 천장만 비추고 있거나 적당히 따뜻하게 예열된 노트북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익숙한 우리 집을 남의 집 보듯 보는 경험은 거울로 내 얼굴을 보는 것처럼 익숙하면서 못마땅하기도 했다.


출근 전에 매실 원액을 소분하여 담고 ‘매실 약’이라고 견출지에 써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혹시 혼자 있을 때 배 아플지 모를 아이를 위해.

주말이면 인생의 마지막 청소를 하듯 대청소를 하고 내일 종말이라도 올 것처럼 정성껏 아이를 먹인다. 주중에 제대로 먹긴 어려울 고픈 날들을 위해. 미리 장을 봐 두고 냉장고 가득가득 넣으며 엄마의 부재를 채워보려 한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시한부 이건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살 뿐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미루지도 말고 오늘만 날인 것처럼 다그치지 말자.


택배를 보냈는데 물건이 깨져서 도착했다고 한다. 고생하시는 택배 기사님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래도 발생한 일에 대해 사고 접수를 했다. 취급주의 표시를 별도로 하지 않은 내 책임이니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나온 박스를 개봉해서 그 속까지 다시 포장할 순 없지만 포장재는 넉넉히 넣었다) 배상할 수 없다는 업체의 얘기를 듣고 알겠다고 했다. 사실 이런 경우에 누구의 과실인지 확인이 어렵고 과실 여부를 떠나 피해자가 존재한다면 기업이 넓은 아량으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괜한 사회사업한다고 애쓰는 것보다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편협한 택배사의 응대를 보니 이런 회사에서 일하시는 택배 기사님들은 얼마나 열악한 대우를 받을까 싶어 다시는 그런 기업에 돈 벌어주는 택배 이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 택배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속한 공공기관이었다. 예전에 모 대기업의 택배사를 이용했을 땐 동일한 건에 대해 다른 응대를 경험했었는데, 공공기관의 이러한 소극적인 관행이 경쟁력을 깎아먹고 있는데 국가경쟁력을 논할 때인지.


나의 일터도 공공부문인데, 이 직장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떠나고 싶은 동기가 된다.


팬데믹이 없던 시절부터 유연 근무제도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유연한 사고가 안되던 시절을 살아온 이들과 유연하게 협상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권장되는 방식보다 의무적인 방식에서 그들은 움직이기 때문이다. 유연한 것들보다 반석 같은 가치들에 의미를 두던 시절을 그들 또한 견고히 견디며 살아왔기에 어휘의 스펙트럼부터 다르다. 소통이 아니라 계몽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양쪽 모두에게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이 조직의 생태가 슬프다. 팬데믹이라는 전무후무한 이슈조차도 너무 견고한 어떤 벽들은 흔들지 못했다. 전쟁이 나고 폭탄이 떨어져도 학교 가고 출근하고 밥 먹을 일 걱정하며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마태복음 24:38-39).


화이자 백신 접종일이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통보와 함께 복직일이 하필 접종일이 되어버렸다. 복직도 안 했는데 휴직 중에 백신 휴가를 복무로 올리는 상상부터, 백신 맞고 쉬어야 된다는데 복직일에 꼭 출근해야 되나요? 이런 운명의 장난 같은 대사까지 상상해보다 접종일을 며칠 미뤘다. 백신 맞고 힘든 건지 복귀해서 힘든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헤맬 무렵이면 급여명세서를 보고 현실감 회복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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