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 온다

방탄 입문기

by 릴리에

방탄에 조금 늦은 입문을 했다.

한때 우상이었던 서태지의 <소격동, 2014>이 세상에 나왔었고 나도 그 노래와 동시대에 존재했었음을 불과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는데, 세상에 눈 돌릴 틈 없이 아이가 너무 어렸었기 때문이다. 2년 전 먼저 아미가 되었던 남편이 간혹 뭘 보고 있어도 관심도 없다가 세상이 다 아는 그들을 나도 이제 알게 되었다. 늘 먹던 커피 봉지를 보고 이제 나도 7명을 구분할 수 있다.


처음엔 너무 어려웠다. 외국인들도 한국 실명으로 부른다는 그들을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도 세 시간쯤 독학 및 열공한 끝에 가능했다. 음악 분야는 잘 모르지만 서태지를 많이 떠올렸다.

그도 idol 이었다.


출근길 퇴근길엔 ‘다이너마이트’ 스텝으로 도심을 걷는다. 밝고 경쾌하고 자신감으로 가득 찬 스웩 충만한 그 세계가 좋다.


방황하던 마음들이 아미가 되어 돌아왔다는 지점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도 그들이 좋다. 내 경우엔 일터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터로 복귀 후 처음 맞는 월요일이다.

확실한 건 월요일에 하는 복직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뿐더러 신체적으로도 그럴 것인데, 운이 좋았다고 본다.

이 한 주에 처리해야 할 것들만 순수하게 생각해보아도 (늘상 있는 갑작스런 방해 혹은 삽질 이벤트 제외) 중요한 시즌이 될 것 같아 어떤 형태로든 방탄 기능을 장착해야 할 텐데, 멋진 소년들이 총탄을 막아준다는 건 정말 러블리한 일이다.


뭘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대셔
I do what I do,
그니까 넌 너나 잘하셔
You can't stop me lovin' myself
얼쑤 좋다
You can't stop me lovin' myself
지화자 좋다

방탄소년단, <idol>, 2018
@가사 출처: 네이버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미래의 월급으로 갖고 싶었던 것들 몇 가지를 샀다. 해외 결제를 하기 전에, 최근 들려오는 팬데믹과 관련된 아시안 혐오 이슈 때문에 오랫동안 배송대행을 위해 사용해오던 주소를 영어 닉네임으로 변경했다. 아미들을 제외하고는 한글 영문표기법으로 쓰인 한국식 이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외국인이 많지 않고 나는 bts 멤버도 아닐뿐더러 혹시 모를 혐오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방탄 유니버스의 아버지로 알려진 작곡가에 대해서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는데 그는 아이들을 위한 곡을 작업하기도 했다(방시혁 & 최승호의 말놀이 동요, 2011). 챈트와 동요 그 이상의 새롭고 세련된 곡으로 아이들을 위한 이 작업에 대해 본인 스스로도 큰 의미를 갖고 있음을 출간기념회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아이한테 동요를 찾아주다 우연히 들어 보았는데 작품 자체로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뿐만 아니라 작업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예술가의 영감에 대해 많이들 얘기하지만 예술이 아닌 일터에서의 많은 직장인들의 작업도 예술가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오늘날 방탄의 존재는 분명 나의 일터에서의 작업과 노동에 색깔을 입히고 있다. 마치 발자크를 읽은 시골 재단사의 작업이 아무도 모르게 낭만적인 옷깃과 섶으로 나타났던 것처럼(다이 시지에,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2005, 현대문학).


월요일이 온다. 출근길의 날씨도 위로를 주는 청명한 계절을 가로질러 온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Rolf Lovland 곡, 한경혜 작사) 노래 같은 날씨가 9월에도 이어지는 것은 덤으로 사는 인생 같다. 지난 계절의 폭염을 견뎌낸 보은 같은 날들. 방탄을 들으며 경쾌한 분노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월요일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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