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언제나 나였던 모순
며칠 전 아파트 단지에 장이 섰다.
먹을 것을 이것저것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졌다.
그 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꽃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꽃은 ‘덴파레 난’, 흔히 ‘덴파레란’이라고 불린다.
난초과에 속하는 이 난은 긴 꽃대에 화려한 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입을 망설이면서 재차 물어보았다.
“난이라서 키우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러자 판매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 아이는 키우기 쉬워요.”
그 말에 덜컥 사게 되었다.
그러다 주변을 살펴보니 옆에 또 다른 꽃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흰색과 빨강의 조화가 꼭 ‘사랑’이라는 말을 건네는 듯한 화분이었다.
그 꽃의 이름은 ‘흰둥굴레꽃’, 흔히 ‘하트덩굴’, ‘하트꽃’이라고 불린다.
하얀 꽃받침 안에서 붉은 별 모양의 꽃이 포인트가 되어 독특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을 잘 키우지 못해 망설였지만,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던 순간이었다.
부랴부랴 화분들과 먹거리를 들고 돌아오는 길,
입구에서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화분들이 길가에 가득 놓여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식탐에 눈이 멀어 주변을 살피지 못했던 나.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만드는 세상인데도 내가 보이지 않고,
주인공이어야 할 내가 배경이 되는 것 같은 순간들.
하지만 식탁에 앉아 베란다를 바라보는 지금만큼은,
부자가 된 주인공 같기도 하고, 내가 이 시간의 중심에 서 있는 듯 한 기분이 든 시간.
너무 잘 키우려 하면 과잉보호로 뿌리가 썩을 수도 있으니,
무심한 듯 그러나 늘 관심이 느껴지도록 키워보려 한다.
마치 또 다른 나를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죽이지 않고 잘 키워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