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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Dec 07. 2022

당신의 행복은 몇 kg인가요?

에피쿠로스의 행복론

우연히 비문학 강의를 통해 진행했던 <에피쿠로스 학파의 행복론> 대해 깊게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파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인정함과 동시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또한 진정한 행복은 고통의 제거로부터 야기되는 것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부재 상태에 비로소 행복의 종착지라고도   있는 아타락시아 경지에 오를  있다고 말한다. 고통에는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한다.  가지는 질병이나 통증으로 초래되는 육체적 고통이고, 나머지 하나는 상실감 혹은 슬픔에서 초래되는 정신적 고통이라고 한다.



공자는 이립而立을 확고하게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움직이지 않는 나이로 정의했다. 而말이을 , 立설 립이라는 한자어로 정의된  단어는 서른의 언저리를 넘어서고 있는 나의 현재를 ‘살아간다는 에서 ‘살아낸다는 으로 전환시키는 듯했다. 함묵하며 그저 하루에 쏟아지는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는 게 인생인 것 같았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발견해 부단히 자책한 적도 있고,  목표에 미처 도달하지 못했을 ,  좌절감을 맛본 적도 있다. 수치로 정형화되는  속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아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괴로워한 적도 있으며, 새벽이라는 긴 터널을 마주할 때면 이것은 끝없는 자기혐오와 비난으로 이어지곤 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마음을 톺아보니, 내가 <행복론>에 의거한 소극적 쾌락을 마주하지 못하는 이유는 살아내도 혹은 견뎌내도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을 가장한 현실의 불안이었다. 나는 끝없이 읽었던 자기 계발서를 통해 근본적인 불안은 내면에 자리하며,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초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생각과 공상이 많은 사람인지라 불안을 자주 생성해 내는 편인데, 불안의 근원이 나로서 야기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을 멈추어 버리곤  때가 있다. 그러나 발본색원은 좀처럼 어렵고, 무거운 공상은 물기를 머금은 솜처럼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에피쿠로스가 태어난 그리스 에게해 지역의 사모아 섬은 헤라, 그리고 피타고라스의 고향이라고 한다. 동부 지중해인 이곳의 풍경은 가히 지상낙원으로 꿈꾸는 공간을 실현시켜 놓은 곳만 같다. 그는 진정한 행복은 불행이 없는 상태, 즉 쾌락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 쾌락을 추구해 불안, 고통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아타락시아라고 보았다. 그 과정에는 사려 깊은 마음과 욕심을 내려놓는 마음, 우정을 견고하게 하는 마음, 참고 인내하는 마음 등 다양한 수양의 단계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내가 정의한 행복은 무엇일까? 남부럽지 않은 , 시선이 쏠리는 자동차  수치로 계량되어 있었다. 그래서 끝없이 추구하도달하고자 노력해야만 했는데,  만 톤이나 되는 수치를 채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kg 성취감을 단단하게 고정해 행복이라는 저울 위에 쌓아도 보편적인 저울이  그램의 정형화된 물건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고통의 제거  부재 상태일  추구할  있는 것이 행복이라면 하루 5, 7, 그리고 10 정도의 행복은 자연스럽게 추구할  있을  같았다. 하루에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공상과 생각의 해방이  5 정도 주어진다면 하루에 5kg 정도의 추를 저울 위에 올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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