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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Dec 11. 2022

나 홀로 고속도로를 밟으며

하고 싶었던 것들


이번 주 일요일, 시골에 홀로 계신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급한 일이 생겨 다음 주에 다녀오자는 가족의 제안에 알겠다고 답을 했다. 그러나 다음 주에는 시간이 되지 않아 나는 잠시 고민 끝에 부랴부랴 간단한 짐을 챙겼다.



난 원체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무 살 때는 이성보다 많은 것들이 앞선 탓에 밤늦게 랜트를 한 적도 있고, 늦은 새벽녘 무엇도 모르는 친구들과 함께 한강을 종종 다녀오기도 했다. 남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하고 싶었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비로소 성인이 되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충만감의 리스트에 ‘운전’도 순위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운전을 매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뒷문에는 늘 초보운전이라는 스티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서른이 되며 내가 운전대를 잡았던 이유는 오로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반려견에게 더 넓은, 멀리 있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둘씩 카시트와 담요 등 반려견이 자동차를 타면서 필요한 것들을 마련했다. 늘 나의 서랍에는 물티슈, 손수건, 물컵 등이 담겨 있는 반려견 전용 외출 가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데 스스로 현실에 많은 겁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운전을 하는 일은 나에게 어느 순간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일요일 아침, 나는 분주하게 가방을 챙겨 반려견과 함께 약 2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시골로 향했다. 늘 조수석에만 타 왔던 내가 홀로 고속도로 위를 밟기로 한 것이다. 홀로는 좀처럼 차를 몰지 않았던 내가 시골로 향하는 길, 혼자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 있어 주는 반려견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천천히 정리할 수 있었다. 도착지가 가까워 오니 비로소 도로가 아닌 풍경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아닌 여유를 갖기 위해 수없이 마음속으로 되뇌기를 몇 번. 고속도로를 잘못 빠져나가 다시 유턴을 해서 돌아오기를 반복해 예상 시간보다 조금 늦게 시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험생 시절, 가장 늦은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강변역에 올라 시골로 향하던 어린 소녀의 마음과 더불어 모든 것을 품어주던 시골은 늘 그대로였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리는 세월 동안 새로운 사람, 그리고 볼 수 없는 사람이 생겨버렸지만 풍경과 어르신의 마음은 그대로였다.


반려견과 함께 대문을 밀고 들어가니 멀리서 홀로 계신 할아버지께서는 해가 가득 드는 창가에 나와 작은 난로를 쬐고 계셨다.

내가 현관문 앞에 다 다라서 나임을 인식한 할아버지께서는 밝은 웃음으로

“어여 와.” 하며 맞이해 주셨다.


창 너머 들어오는 햇살을 가득 받으며 따뜻하게 불이 들어오는 간이 전기장판에 앉아 도란도란 초코파이를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니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나의 일요일이 완성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홀로 고속도로 밟기는 성공적이었다.


다시금, 서울로 향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은 어느덧 ‘해야만 하는 것들’에 짓눌려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찾아볼 수 없지만 내가 보낸 오늘의 시간은

‘그랬지. 맞아 이거였어.’

가라앉은 것들을 조금씩 수면 위로 오르게 했음은 분명하다.

‘여전히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고, 잊고 지낸 것들이 많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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