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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Oct 20. 2022

많이 베풀며 배려심이 없던 친구

대학을 미국으로 가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해야 할 공부만큼이나 기대했던 것이 기숙사 생활이었다. 학교에 도착한 첫날 어떤 룸메이트와 1년을 함께 생활하게 될까 하는 설렘과 걱정을 안고 배정된 기숙사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미 먼저 도착해 짐을 풀고 있던 큰 키에 삐쩍 마른 중국인 친구가 나를 맞이했다. 미국에서의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던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함께하며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흔히 부유하고 여유로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마음의 크기가 더 크고 정이 많다고들 한다. 저마다의 처한 깊은 사정 하나하나를 고려하지 않은 일반화를 크게 신뢰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친구에게는 많은 부분이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 친구는 학교 기숙사 식당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며 대부분의 끼니를 외식이나 배달음식으로 해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내 음식을 따로 챙겨 건네주었다. 처음 맨해튼에 방문했던 것도 나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뉴욕의 호텔 비용을 자신이 예약해놓은 숙소가 있다며 같이 가지 않겠냐며 먼저 제안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 복무 때문에 휴학을 신청하고 헤어지는 마지막 날에는 그 이른 새벽에 학교에서 1시간가량 떨어져 있던 공항까지 따라와 배웅을 해주기도 했다. 때문에 군 복무 후 복학해서 가장 기다려졌던 일도 이 친구와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다시 마주한 날 그는 그의 집에 나를 초대해 그때는 무슨 음식인지 모르고 맛있게 먹었던 마라샹궈를 직접 요리해 주었다. 식사를 하며 자기가 렌트비를 다 지불할 테니 함께 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는데 이미 머물 집과 함께 살기로 한 룸메이트가 있어 그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많은 것을 거리낌 없이 내어주는 그의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당연하게도 친절하고 정이 넘치는 그였지만 그의 모든 점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베푸는 호의만큼이나 같이 살며 불편한 점도 많았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늦은 밤 외출했다가 돌아와서는 내가 자고 있음에도 방에 불을 반드시 켜야 했던 그의 버릇이었다. 여러 차례 불만을 전했지만 그것이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샤워처럼 차례를 기다리는 일에서도 반드시 자신이 먼저 해야만 했다. 또 잘 때는 반드시 Jason Mraz의 Details in the fabric을 무한반복 재생을 해두고 들으며 자야 하는 사람이었다. 베푸는 일에는 아낌없던 그였지만 배려하고 양보하는 일에는 젬병이었다. 




그 당시 중국인을 룸메이트로 둔 여러 한국인 유학생들의 말은 들어보면 대부분 트러블이 있었다. 첫날부터 느끼는 서로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점점 커져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 사이가 많았다. 나와 내 룸메이트는 그런 안타까운 사이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베풀었던 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 불편했던 일을 감내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일어났던 일의 순서가 그렇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의 베풂의 시작은 그를 통해 내가 겪는 불편함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불편하고 더욱이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있어 선을 긋고 강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러 일을 겪으며 감내하고 견디는 것보다 분명하게 맺고 끊는 것이 처한 상황에서 많은 점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거다. 이런 나의 태도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만큼이나 새로운 인연이 소중한 관계로 나아가는 일의 빈도수를 현저하게 줄도록 했다.  


그다지 이룬 것도 없고 아쉬움만 가득한 지금의 나를 보고 있자면 그 원망은 항상 과거의 나를 향한다. 도대체 무엇을 한 거냐고 그때 무엇인가 열심히 했다면 지금쯤 무엇이든 하나는 성취하지 않았겠느냐고 그때의 나를 나무라곤 한다. 하지만 이 친구와의 인연은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게 한다. 지금의 내가 버티고 견뎌내게 해주는 것은 목적한 바를 이루는 일보다 과거의 추억과 소중한 인연이다. 지금처럼 특정인들을 향한 편견에 갇혀 누군가를 속단하지 않았고 기다려줄 주를 알았던 나였기에 고마운 인연들이 지금 내 주변에 존재할 수 있었다. 


이때를 떠올리며 내가 닿은 결론은 그때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맺고 끊는 태도는 일상의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감내하고 기다리며 많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소중한 인연을 만나도록 해주었다. 오랫동안 나에게 있어 후자가 훨씬 의미가 있음을 잊고 살았다. 벌어지는 상황 가운데서 현명한 기지로 두 가지 모두를 가능할 수 있게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여전히 이 모두를 쟁취하는 방법을 모른다. 편리함에 젖어 내가 무엇에 힘과 위로를 얻고 사는지 잊고 살았다. 끝까지 나쁜 놈으로 기억될 인연도 있을 것이고 아쉬움 가운데 떠나보낼 인연도 있을 거다. 그 와중에 그때의 룸메이트처럼 좋은 인연으로 기억될 어떤 한 명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이런 시행착오를 겪어도 지금 내가 닿은 이 결론이 몇 년 후에 내가 지금의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하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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