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산적 Sep 23. 2022

'봄날의 햇살'이 떠올리게 해 준 그 순간

나의 포기를 용기로 바라봐 준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회사 사업이 큰 어려움을 맞았을 때 불행히도 그 시기는 나의 대학 진학 시기와 겹쳤다. 현실적인 집안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뜬구름 잡듯 덜컥 미국 대학에 합격한 아들을 보며 우리 부모님은 참 복잡한 심경이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일을 수습하시고 내 바람을 이루도록 응원하시며 유학을 보내주셨다.  




한인 유학생 동기나 선후배들이 누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고 적은 생활비를 계획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길고 지저분해진 머리를 자르는 일도 그래서 참 고민이었다. 대부분의 한인 유학생은 학교와는 꽤 거리가 있는 동양인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까지 다녀오곤 했다. 미용실까지 가는 택시비와 커트 비용에 팁까지 포함하면 한번 머리를 자르는데 60불은 어렵지 않게 넘겼다. 매달 머리를 다듬는 일에 고정적으로 사용되는 그 금액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지출이 아니었다. 이동하는 일 또한 나의 몸과 마음을 힘겹게 했다. 뉴욕 JFK공항에서 우리 학교 지역까지는 차로 세 시간 넘는 거리였다. 귀국할 때나 다시 학교로 돌아올 때 많은 유학생들은 택시를 대절해가곤 했다. 이때마다 인당 150불이 넘는 거금이 필요했다. 택시를 이용하는 친구들이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할 때면 나는 맨해튼에 사는 이모집에 며칠 묶기로 했다며 서둘러 그런 상황을 피했다.


그래서 나는 집 앞에 위치한 저렴한 미용실에 갔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참담한 몰골로 돌아왔지만 내 머리를 담당해주는 미용사와 안면을 트고 조금씩 그녀도 나의 설명을 차분히 들어주며 두 번 세 번 방문했을 때는 꽤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용도 15불이 넘지 않은 금액으로 해결할 수 있어 부담이 크게 줄었다. 공항에서 오고 갈 때면 택시 대신 고속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했다. 14시간이 넘는 비행 후 힘겹게 큰 캐리어 두 개를 들고 하는 이동은 매우 고단했으나 훨씬 적은 금액으로 오갈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부담 없이 누리는 일들을 나는 그럴  없었기에 편하고 확실했던 그런 방식들을 포기해야 했다.  과정에서 박탈감을 느끼고 여러 차례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감사한 마음만 드려야  부모님이 때론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생각이  때면  마음을 가진 내가 작고 한심해 보여  사실이 정말 괴로웠다. 그렇게  마음은 포기였고 내게 주어진 확신을 가질  없던 차선책들을 하나  선택했다. 부족했기에 다른 이들이 쉽게 지나가는 일을  깊이 들어가  살길을 찾았다. 아등바등하던 내게 친한 유학생 친구 하나가  용감하다고 말해주는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  친구는 나를 모르는 일에 도전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과 하지 않는 방법으로 훨씬 실용적인 결과를 쟁취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해주었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냈고 마음이 따뜻했던  친구의 말은  어떤 가진 자의 비아냥도 담겨 있지 않았고 나를 인정해주는 그의 진심만이 있었다.


얼마 전 화제 가운데 방영되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장면중 주인공이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에게 봄날의 햇살과 같다고 말해주는 장면을 보며 잊고 있던 그때의 일이 생각났다. 서로에게 서로가 너무나 고마운 인연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그 친구가 있었기에 포기와 발버둥마저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 사람일 수 있었고 그 친구는 내가 있었기에 누군가의 도전과 노력을 인정하고 표현하며 위로하는 사람일 수 있었다.


힘들고 외로웠던 기억을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마냥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물음을 나는 외면하려 한다. 드라마를 보며 나의 포기를 용기로 바라봐 준 친구를 떠올린 사례처럼 순간순간 떠오르는 당시의 경험과 인연의 기억들은 지금 나의 하루하루를 꽤 근사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전 11화 끝까지 기준을 지켜가는 존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