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부터 보여준 사람
유학 경험이 아주 특별하다고 인식되는 시기는 한참 지났다. 유학생이었단 사실 자체는 나에게 그다지 특별함을 더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에 흥미를 갖는 이들을 만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지만 그 이상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들뜨니 않으려 스스로 우쭐해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있어 그때의 경험은 결코 별거 아닌 일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 시절을 지나온 일은 분명히 나라는 사람에게 특별함을 더해 주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해 주었으며 결코 '유학생'이라는 타이틀에 다 담기질 못할 여러 이야기들을 갖도록 해주었다.
3학년 첫 전공수업 날 교수님이 강의계획에 대해 설명하시며 바로 다음 주 2인 1조 조별 발표과제를 진행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새 학기를 시작하자마자 발표과제라니 상당히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오후 같은 조로 정해진 친구가 이메일로 연락을 해왔다.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한 후 다음날 도서관에서 건장한 체격의 그 금발 사내를 처음 만났다.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주 친절하면서도 배려심이 가득한 친구임을 알 수 있었다. 발표 주제가 미국이 관여하고 있는 국제관계에 대한 최근 이슈였는데 그 친구는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시각으로 이슈를 비교 분석해 보는 게 어떻냐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함께 고민해주었다. 대학에서 하게 된 첫 전공수업 발표과제였기에 정말 많이 긴장했었다. 다행히 일주일 가량 그 친구와 매일 만나 과제를 준비하며 긴장을 덜 수 있었고 우리는 발표를 잘 마무리했다.
다음 그 수업 때 나는 조금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 빈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않아 있었다. 수업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데 진한 화장을 하고 하늘하늘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다가오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너무나 해괴하고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시 보니 과제를 함께 했던 그 친구였다. 당황스러운 모습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느끼는 당혹감을 그 친구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그 친구와 커피 한잔을 하기로 했다. "This is who I am(이게 나야)" 그 친구가 자신을 가리키며 카페에 앉아 나에게 건넨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의 성별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더했다. 단번에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힘든 사실을 설명하는 그 친구 앞에서 나는 또다시 당혹스러웠지만 최대한 의연한 척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왜 지난 일주일간 나에게 전혀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 친구는 첫 수업 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할 때 평생을 한국에서 자랐다는 내 소개가 기억에 남았었는데 같은 조로 정해진 나의 이름에 Kim을 보고 함께할 조원이 나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표현하는 일에 가장 자유로운 미국에서 조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경계하는데 그런 난처한 상황에 평생을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동양인과 자신을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발표과제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그것을 저해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일반 남성에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그것이 자기 자신을 감추고 포기하는 일이었기에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과제를 준비하며 나와 만난 시간에 기분이 항상 좋을 수는 없었다고 그 가운데 자신이 예민하게 굴었던 일이 있었다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멍해졌다. 자신을 포기했던 그 시간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게 아닌 사과를 건네는 그 상황에서 그 친구와 나의 마음의 깊이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 여전히 어느 한쪽의 주장을 지지하기에는 혼란스럽고 답을 찾지 못한 물음들이 많기에 성 정체성의 관한 논쟁은 이글에서 삼가려 한다.
신동엽 시인은 시대의 부당함에 저항하고 순수함만이 남길 바라며 껍데기는 가라는 마음을 그의 시에 담았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껍데기와 알맹이의 구분이 상당히 모호해졌다. 지금 세상의 껍데기는 과거 시인이 말하는 껍데기보다 훨씬 많은 가치와 대표성을 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그 껍데기를 넘어서야 알맹이가 주는 본연의 가치와 놀라움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변치 않고 이어지고 있다.
나는 겉치레에 사로잡혀 대화 가운데 그 속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고 껍데기만으로 나와 다른 사람이라 판단되면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불필요한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나만의 방법이라 합리화를 했지만 늘 바꾸고 싶던 나의 부끄러운 점이었다. 신동엽 시인이 시대의 부당함에 저항하며 변화를 열망했듯 나 역시 편협하고 얕은 마음으로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의 변화를 열망했다. 그 친구가 믿는 자신의 성 정체성이 껍데기라 말하여야 할지 알맹이라 말하여야 할지 그 구분이 참 모호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처음 만난 나에게 자신의 알맹이부터 보여준 사람이란 사실이다. 그 친구가 내게 준 놀라운 경험은 나를 관계에 있어 보여지는 모습을 넘어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사람이 되도록 해주었다.
50년도 더 이전에 한국말로 쓰인 시의 의미를 미국 뉴욕에서 진한 화장을 하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사내로부터 되새기는 경험은 그 자체로 참 재미있었고 또 나를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변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처음 미국으로 떠났을 때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온다면 유학생이란 사실만으로 남들의 부러움 담긴 시선과 인정을 받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기대감이 있었다. 지금은 그때 가진 생각과 바람이 참 부끄럽다. 허영에 들뜬 그 마음은 결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그 시절을 지나오며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해준 많은 경험들을 나의 이야기로 가지고 있는 지금의 나의 대해서는 이제 한번 우쭐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