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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Aug 29. 2022

끝까지 기준을 지켜가는 존재들

지원한 대학에서 합격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다. 그 순간이 주는 안도감과 주위에서 내게 건넨 축하는 삶에서 느낀 여러 큰 행복감들 중 손에 꼽히는 하나였다. 그 잠시의 행복을 누리고 나서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국에서의 삶을 준비해야 했다. 비자 신청 인터뷰부터 미국 입국자에게 요구하는 예방접종, 기숙사 신청 등 낯선 곳에서의 시작을 준비하느라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태평양을 지나가고 있는 비행기에 앉아있었다. 그제야 이전까지 내게 들끓었던 설렘은 잦아들고 불안과 걱정이 내게 찾아왔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세상 물정 모르고 편히 지내오다 전혀 새로운 곳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실감되자 아찔해졌다. 여러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다 어느 순간 할머니와 우리 집 강아지 토토가 떠올랐다. 내가 미국으로 떠날 당시 할머니는 고령이셨고 토토도 10살이 가까워지는 나이였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 각자의 삶의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은 애써 외면하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대학 4년에 군 복무 2년을 생각하면 중간중간 집으로 잠시 돌아온다 해도 나는 앞으로의 많은 시간 동안 이 연약한 두 존재로부터 부재중일 것이란 사실이 크게 와닿았다. 그러면서 혹여나 그들이 떠나가게 된다면 그 힘든 마지막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나의 입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예상되는 문제로부터 당장 벗어나고 외면하려는 나의 버릇은 소중한 두 존재를 떠올린 그 상황에서도 발현되고야 말았다.




시작점에 서있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았던 그 긴 시간이 지났고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온지도 벌써 두 해가 지났다.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여전히 정정한 할머니와 토토를 보며 그때 당시 내가 가졌던 생각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평화롭고 무탈했던 시간은 안타깝게도 길지 않았다. 올해  할머니께서 위암 진단을 받으셨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했고 수술까지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이후 진행되는 항암치료 과정은 우리 가족에게도 할머니 본인에게도 인내의 시간이었다. 고령의 나이까지 항상 정정하셨고 보통의 할머니 연배의 분들보다도 좋은 풍채를 가지셨던 할머니는 눈에 띄도록 야위셨고 힘들어하셨다. 여덟 번으로 예정된 항암치료 과정  이제   번만을 남겨두고 있다.  과정에서 항암치료와 더불어 복용하시는 식욕촉진제 때문인지 항상 허기진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매우 혼란스러워하셨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갔는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지 모르겠다며 스스로를 한심해하셨다. 


정신없는 와중에 평생을   번의 잔병치례조차 없이 튼튼했던 우리 토토도 올해  발작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겨우 깨어났다. 여러 병원을 찾아갔는데 신장과 심장에 예상되는 진단 결과가 있지만 강아지의 15살은 너무 고령이며 치료과정이 아이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라 치료와 집에서 관리를 잘하며 요양하는   선택은 보호자 판단의 몫이라는 답변은 동일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들이기에 그들이 힘들고 아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고통스러웠다. 내가 옆에 있으면 할머니는 항상 나에게 겸손해야 한다, 감사하고 기도해야 한다 등의 자신의 삶의 기준과 가치를 말씀하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은 깊은 한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오히려 할머니께서 내게 하셨던 말을 내가 할머니께 돌려드리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토토는 발작이 잦아졌다. 거실에서 쓰러져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는 토토에게 방에 있던 나는 전력질주를 해 옆에 가서 진정시켜주는 일이 많아졌는데 방에서 거실까지 그 짧은 거리가 그 순간에는 너무나 길다. 이 아이에게는 너무나 놀라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연약해지는 와중에 발작 증세가 없을 때면 여전히 우리 토토는 간식 앞에서 나에게 애교를 부린다. 내게 했던 여러 다른 말은 줄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불 꺼라 물 아껴라라며 자신이 평생 지켜온 기준을 나에게 말씀하신다. 토토의 식탐과 할머니의 절약정신은 본능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삶의 기준으로 보였다. 그 기준이 얼마나 가치 있느냐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삶의 시작점에서부터 지켜가고 있는 무엇인가가 힘들고 아픈 와중에도 지켜지는 모습을 보며 내게는 그러한 기준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묻게 되었다.


평생 사랑과 위로를 받기만 했기에 할머니와 토토가 힘들고 아파하는 지금은 내가 많이 주고 이해하며 이 과정을 지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 둘은 나 스스로에게 물음의 기회를 주었다. 이 둘처럼 잠시 지녔다 포기하는 기준 말고 놓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갈 기준이 내게 생겼으면 좋겠다. 더불어 할머니와 토토가 부디 건강을 회복하고 내가 기준을 가지고 지켜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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