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처럼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어린 나이부터 영특했고 아는 것도 많은 친구였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우리는 함께 산수 학습지를 풀곤 했는데 항상 애먹는 나와는 다르게 뚝딱 문제를 풀어내는 그 친구를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영특했지만 부족함 또한 큰 사람이었다. 부족함이 자신의 장점을 모두 가릴 정도로 크고 치명적이었다. 자기중심적이었고 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타인과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고 어쩌다 전개된 대화의 결말은 항상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즈음 그 친구가 이사를 가게 되어 아주 가끔 만나는 것 이외에는 우리 관계의 지속성은 없었고 그 친구의 부족함을 크게 유념치 않아도 됐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내가 다니던 중학교로 전학을 오며 우리의 악연은 시작되었다.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친구로부터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가 학교에서 지속되었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학교의 모두가 그 친구의 특별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가족 간 사이가 가깝다는 이유로,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학교 선생님들은 내게 그 친구를 지켜보고 옆에서 보살펴주라고 말하셨다. 이전까지 내가 크게 유념치 않았던 그 친구의 부족함은 그때부터 학교 안에서만큼은 나 홀로 감당해내야 하는 나의 문제가 되었다.
중고등학교가 연계되어있는 곳이었기에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상황은 지속되었다. 여전히 선생님들과 그 친구의 부모님, 심지어 나의 부모님까지도 그 친구를 위해 내가 많은 것을 감내하기를 바라셨다. 어렸고 미성숙했던 당시의 내가 얼마나 나의 마음을 돌보며 그 친구를 보살필수 있었겠는가..
결국 졸업 말미가 되어서 곪고 곪은 이 문제는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때에 상황이 아주 세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여느 때처럼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이 그 친구의 입에서 나왔다. 늘 그 친구가 했던 나를 서운하게 하는 여러 부정적인 말들 중 하나 정도였음에도 오랜 시간 참아왔던 설움이 터져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크게 다툼을 하고 아직 수업시간이 남아있던 학교에서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에도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내가 어떤 마음의 부담을 짊어지고 지금껏 그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했는지, 그 당시에 내가 얼마나 분하고 서러워했는지를 보신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셨고 그 때문에 겨우 마음이 추슬러졌다.
다음날 학교에 나가 교감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선생님들이 해야 할 역할을 내게 짊어지도록 하는 요구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당시 느꼈던 서운함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앞으로 그 일을 더 이상하지 않겠다고 나의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그래..."였다. 교무실 공기 속에서 그 대답 안에 교감선생님이 느끼는 아쉬움이 내 피부에 그대로 닿았다. 얼마 후 그 친구의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께 그 친구가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왔고 그런 그 친구를 이해해달라는 마음을 전했다. 교감선생님의 아쉬움 섞인 대답과 다툼 후 진단 사실을 알려온 그 친구의 부모님을 보며 나는 어른이라는 존재에 처음으로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꼈다.
그 친구를 도왔던 어린 나는 순수한 마음 이전에 어른들에게 착한 학생이라 불리고 싶었던 것 같다. 선생님들과 그 친구의 부모님은 그 어린 맘을 자신들이 받을 피로를 덜기 위해 이용했다. 그 와중 시간과 마음을 써가며 들였던 나의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것은 나를 할퀴는 말이었다. 그렇게 터져버린 나의 서러움과 그를 향해 표했던 미움에는 그 친구가 받아야 할 온전한 몫을 넘어 그 어른들에게 향해야 할 서운함까지 더해졌다.
그 친구도 참 나빴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그 친구를 도운 게 아니었기에 나도 참 나빴다. 하지만 가장 나빴던 건 그 상황에서 책임을 떠넘기고 이용했으며 어린 내가 계속 상처받고 힘들더라도 상관치 않았던 어른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사과를 빚졌다.
씁쓸하지만 누구처럼 되고 싶다보다 누구처럼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더 큰 동기부여가 될 때가 있다.
이십 대 끝자락에 닿은 내가 항상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를 고민할 때면 나에게 사과를 빚진 어른들이 답을 제시해주었다. 내가 얼마나 성숙한 사람 인가 와는 별개로 누군가에게는 나란 사람이 어른으로 보여지는 나이가 되었다. 무결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일찍이 깨달았지만 내가 사무치게 실망했던 어른들과는 다른 길을 걸으려 애쓰는 일이 나를 어른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에 고춧가루를 뿌리지 않는 것이라 믿는다.
여러 상황과 일에 지치고 좌절하는 요즘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이 사건으로 다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마주한 그때에 그 어른들과 지금의 내가 구별된 사람이란 사실이 나에게 위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