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병역판정 신체검사기
스무 살이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 낯선 곳에서 낯선 내용의 우편을 보내왔다. 병무청에서 온 입영판정 신체검사통보 우편이었다. 뭐 당장 입대를 하라는 것이 아니었기에 덜컥 가슴이 내려앉거나 하는 두려움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차마 그 성격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상한 울렁임이 내 속을 훑고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저절로 눈이 떠져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고 검사를 받는 인원중 가장 먼저 병무청에 도착했다. 인원이 하나 둘 모이자 수검복을 지급받아 환복 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나였기에 제일 먼저 탈의실에 들어간 사람도 나였다. 나는 당연하게도 상하의와 속옷까지 모두 탈의 후 수검복을 입어야 한다 생각했고 그 생각대로 이행했다. 그런 나를 따라 뒤이어 들어온 사람들 모두 속옷까지 몽땅 탈의하며 환복을 하고 있었다. 이때 병무청 직원 한분이 들어오더니 발가벗은 수십 명의 사내들이 있는 광경을 보고 무슨 속옷까지 다 탈의하냐며 허허 웃었다. 나를 따라 온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고 의도치 않게 서로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공개하도록 일을 벌인 나는 다가오는 민망함을 감당해야 했다.
본격적인 신체검사에 앞서 심리검사를 위해 컴퓨터실 같은 곳에 모여 문항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항의 가짓수가 얼마나 많던지 내 기억이 맞다면 모두 답하는데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긴 시간 문항들을 세세히 읽으며 성의껏 답을 골랐고 마지막 인적사항을 기입하는 페이지에 다다랐다. 당시 한국에서 인가를 받지 않은 대안한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컴퓨터 프로그램상 학력을 기입할 수 없었고 병무청 직원에게 어찌해야 할지 질문하니 개인면담이 필요하다며 나를 어느 진료실로 안내했다. 그 많은 인원 중 홀로 정신, 상담이라 쓰여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번 나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의사였는지 상담가였는지 모를 한분이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기에 아마 정신과의사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나와 마주 앉은 그는 일반학교가 아닌 대안학교 진학의 이유 등을 물으며 간단한 심리상태를 판별하려는 것 같았다. 이때 대답만 잘했더라면 그 당시만 해도 존재했던 학력미달로 인한 군복무 면제가 가능했을 거다. 군복무를 하며 사무치게 떠올리며 후회했던 순간이었다. 이때 나는 그에게 대학으로부터 받은 합격이메일을 보여주며 현재 진학을 준비 중이라는 답을 했고 별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는 나에게 신체검사실로 이동해도 좋다고 말했다. 방금 그와의 대화가 군대를 합법적으로 가지 않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본격적인 신체검사에서 반전을 꾀하기에 스무 살의 나는 너무나 건강했다.
그렇게 최종 판정과 서명만을 남겨두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인원을 호명할 때 이름만 부를 수 있었음에도 대학, 학과, 이름 순으로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날 동명이인은 없었으니 굳이 개인의 이력까지 말한 그 까닭이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수도권에 위치한 병무청이어서인지 그날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인원은 서울의 유명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여러 유명 대학에 재학 중인 사람들의 이름이 불렸고 잠시 후 병무청 직원이 나를 호명할 때 잠시 멈칫하더니 OO중학교 중퇴 김산적이라 호명했다. 안내되어 앞으로 나간 내게 최종 신체검사 1급, 현역입영대상자라는 결과가 컴퓨터 전자음성으로 통보되고 있었다.
여지없이 군대에 갈 수밖에 없는 신체등급을 받았다는 마음의 무거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그날 내가 벌이고 겪은 별난 일들이 중학교 중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의 납득이 이루어지는 일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하는 참담함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 일이 얼마나 사무쳤던지 지금도 문득문득 아무런 예고 없이 그 순간이 떠올라 몸서리치곤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 거기에 모인 한 명 한 명에게 나는 중학교 중퇴자가 아니며 당신들이 다니는 대학만큼이나 인정받는 미국의 주립대에 합격하여 진학을 준비 중이라는 항변을 하고 싶다. 그 그림이 매우 이상해 보일지언정 그들의 기억 속에 중학교도 졸업 못한 어느 사내가 그날 별나게도 눈에 밟힌 일을 지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순간들이 모여졌을 때 그것들이 그 사람을 결정하고 정의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참 많은 사람들은 그저 한 순간으로 누군가에 대한 결론에 이르기 급급하다. 특히 누군가에게 내리는 결과와 평가가 부정적일 때 더욱 그런 것 같다.
살아오며 여러 반전의 상황이 내게 일깨워준 교훈은 단 하나의 순간은 결코 그 사람의 전부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날 병무청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비쳤을 나의 모습이 실제 나라는 존재와 너무나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오래된 격언은 꽤 높은 적중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건에 크게 헛방을 치게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나는 나머지 아홉을 모두 봐야 한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한 순간에 우리가 해야 할 걸맞은 반응은 주목, 의심 정도이지 않을까? 이후 다른 순간이 덧대질 때 비로소 확신과 결론에 이르러도 늦지 않다. 단 한순간으로 결론 내려지는 것이 타당한 사람은 나라를 구한 영웅이나 흉악 범죄자 정도이지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