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다
가끔씩 중요도 높게 계획했던 일을 잊었다가 번뜩 떠올린 사람처럼 아맞다! 하고 취미에 빠져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행복했던 기억들을 시장 좌판에 촤라락 펼치듯 깔아 놓고 구경하며 되새기는 일이다.
맞아, 그건 그래서 좋아. 그럴 땐 그런 장면들이 사랑스러워. 또 떠올리니 마음이 몽글몽글하네. 전해주고 싶다.
유난히 감사의 말과 다정한 말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일부러 '남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머리 굴리는 타입이 못 된다. 남들보다 좋은 게 아주 조금 더 많을 뿐이다.
표현을 아끼다니. 이런 건 티끌 모은다고 해서 마음이 풍요로운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표현은 지출이 클수록 부자가 된다.
애정을 회상하다 빠져들기 시작하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지금 당장 그 사람을 찾아가 꼭 고마웠다고 말해야지!' 하는 비장한 마음까지 든다. 사랑스러운 발상의 근원을 찾으면 기어코 찾아가 작은 인사를 건넨다. 상대방에게는 이미 여러 철이 지나 언제 샀는지조차 희미한 출처 미상의 티셔츠 같은 기억을 끄집어내고 상기시켜 준다. 너 그때 그랬잖아. 나는 그걸 아직도 떠올려. 언제 생각해도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야. 당신의 행동이 나에게 이렇게나 큰 행복감을 준다고.
나의 감사는 꽤나 구체적이다. '용서해 줘서 고마워',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처럼 간결하지 못하다. 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인데, 이럴 땐 그게 제값을 한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며 놀란다. 나한테는 생생한데, 쟤한테는 생경하다. 상세하지 않은 설명을 해 준다. 분명 함께 나눠 가진 기억인데, 즐거운 에피소드를 겪은 사람처럼 연기를 더해 전달한다. 대략적인 요약본만 듣고 그랬냐며 웃는다. 선물 받은 기억을 다시 선물해 주는 기분이 든다.
살면서 행복했던 일과 기쁜 일들의 대부분을 품고 살지 않나. 내 범주는 남들보다 넓다. 게다가 행복을 회상하는 습관이 자존감 형성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회식을 마치고 귀가한 날 엄마가 고생했다며 안아줬던 일, 내가 원하는 직장에서 나의 능력을 알아보고 입사 제안을 했던 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곪아있던 일이 사실은 작은 상처였다는 걸 알게 된 날, 연인의 사랑이 눈에 보였던 순간과 순간들 등등.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사는 사람인지 일깨워 주고 북돋아 주는 멘털 케어 매니저를 둔 기분이다.
"나 브런치 작가 도전해 보려고."
"어이구, 기특해. 잘 생각했다. 정말 잘할 것 같아."
"많이는 아니더라도. 시간 날 때마다 써 볼 거야."
"그래, 그래. 벌써 기대된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넌 분명 잘할 거야."
내 도전을 하고 말고 결정하는 건 나 하나지만, 절대 혼자 개척하지는 못하는 성격이다. 응원해 주는 사람, 격려해 주는 사람, 충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 등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과 자부심을 줄 사람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취미를 등한시할 시간이 없다.
나중에 정말 작가로 선정이 된다면, 그날의 당신에게 꼭 감사 인사를 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