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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A Jan 04. 2023

내 인생 첫 선물, 뽀뽀 2

열여섯 살 먹은 강아지



 뽀뽀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낯선 집이 무서웠던 뽀뽀가 의지할 사람은 본인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아빠밖에 없었다. 전 주인(사무실 지인)에게서 방치 및 학대를 당하고 있어 구해온 강아지라고 했다.

다른 거래처로 이동하던 중 잠시 들른 아빠는 곧 나갈 채비를 했다. 뽀뽀는 아빠를 따라다녔고, 나와 오빠는 뽀뽀를 따라다녔다.



 할머니는 집 안에 짐승이 들어왔다며 무척이나 싫어하셨다. 화장실 문턱에 오줌을 싸고, 이불에 똥을 싸고, 온 집에서 강아지 비린내가 난다고 했다. 나는 '강아지가 물을 마셔! 목이 마른가 보다!' 하며 그 애의 모든 행동에 행복해했다.


 지대한 애정공세로 강아지의 관심을 쟁취한 나는 툭하면 그 친구를 끌어안고 밖에 나갔다. 딱히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다. 계단에 앉아 실컷 쓰다듬고, 가끔은 계단을 잘 오르는지 구경하고, 덜덜 떨면 옷 속에 넣어 체온을 공유했다.

 어린 보호자는 혼자 산책을 나가지도 못 했고, 놀아주는 방법도 몰랐다. 마냥 안고 다니다가 정신머리 없이 강아지를 품에서 놓쳐 떨어트리기도 했다. 그러면 그게 미안해서 밤새 울었다. 엄마는 나에게 '예뻐할 줄밖에 모르는 주인'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게, 현실적인 양육은 엄마가 도맡아야 했다. 엄마는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말렸던 거구나. 강아지를 싫어해서가 아니고.







 우리 집 강아지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나와 함께 했다. 문을 쾅! 닫고 이불 속에서 엉엉 울다가도 강아지가 방문을 긁으면 포르르 가서 열어줬다. 밤이 무서운 날에는 자는 강아지를 깨워 내 방에 무언가 보이는지 묻기도 했다. 그런 날이 아니더라도 비몽사몽 꼬수운 냄새와 작은 숨소리, 따뜻한 체온에 기대어 잠들었다. 15년을 그랬다.


 다 커서는 더러 속상한 날마다 거실 바닥에 앉아 혼술을 했다. 그럴 때 강아지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뭔가 대단히 뭉클한 이유는 아니고, 지는 자야 하는데 같이 자는 사람이 안 들어와서(피곤한 눈으로 흘겨보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그런 게 아니었을까. 뭐, 아무렴 어떠니. 의도가 뭐였든, 나는 위로를 받았단다.






 본인이 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 하늘이 준 소임보다 더 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온 나의 강아지는 꼬박 16년을 살아내고, 이제는 자기가 없어도 우리가 잘 이겨낸다 생각했는지 홀연히 강아지별로 돌아갔다.

당시 사람을 다방면으로 성가시게 만들었던 회식 미치광이 회사에 다닐 때였는데, 여느 때와 같이 아무 의미 없는 술자리에 참석해 맥주나 홀짝이고 있다가 오빠의 연락을 받았다. 남매라는 존재는 연락을 한다는 것부터 큰일이 났다는 뜻이다.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뛰쳐나와 집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울었다. 그때의 소원은 뽀뽀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아니었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만 살아있어 달라고 빌었다.



 뽀뽀는 출근하며 본 아침 모습과 달랐다. 그래도 아침에는 어제, 엊그제 본 모습에 가까웠는데 그때는 외할머니의 마지막과 더 비슷했다. 차가워지는 빳빳한 몸, 나를 바라보는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뽀뽀야, 혹시 나를 봤니? 나를 봐서 안도하는 거니? 제발 나를 본 거라고 해 줘.

엄마는 뽀뽀 힘들게 하지 말라며 나를 혼냈지만, '너도 여태 나 귀찮게 했잖아!' 하며 얼굴을 부비고 끌어안았다.


 그날 우리 가족은 모두 울다가, 졸다가, 강아지의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울다가, 졸다가 반복하며 찰나 같은 억겁을 버텨냈다. 우리 집 아기, 우리 집 노인, 가장 약하면서 가장 강한 강아지를 위해.

그날 새벽 네 시, 뽀뽀는 수건이 잔뜩 깔린 작은 상자에 담겼다. 아빠는 콧물 눈물을 훔치며 고별인사를 했고, 우리 셋은 정말 크게 울었다.







벌써 햇수로 3년이 지났다. 15년 중 행복했던 에피소드를 설명하려면 내 인생을 전부 읊어야 한다.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 늙은 강아지.



미안하지만, 누나는 적게면 30년 정도 더 살아야 해.

그 세월 안에 다른 강아지를 만나게 되려나.

너보다 잘해 줄 자신은 있어도, 너만큼 사랑할 자신은 없어.


고집 하나 없이 착한 우리 강아지는 강아지별의 고위 관직이 되었을까.

하기야, 그러면 그곳에는 임금 강아지밖에 없겠구나.

친구들이랑 잘 놀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도란도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지내고 있어. 다시 만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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