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쓴 글, 첫 만남
"아빠가 선물 들고 가는 중이야."
"뭔데? 책가방? 필통? 인형?"
"우리 딸 보면 엄청 엄청 좋아할걸?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엄마, 아빠가 나 어린이날 선물 준대!"
삼십대 후반의 엄마는 태어난 지 십이 년 된 나보다 촉이 훨씬 좋았다. 전화를 낚아챈 엄마는 주방으로 가 언성을 높여가며 아빠를 뜯어말렸다. 살벌하게 오고가는 대화에도 열두 살의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기에, 그녀의 어린 딸이 알아채기 전 비밀리에 상황을 종료해야만 했다.
엄마의 만류에도 아빠는 후퇴를 몰랐다. 불도저 같은 '딸바보'를 이길 수 있는 현모는 우리 집에 없었다. 아빠는 본인이 선물을 받는 어린애처럼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커다란 박스를 들고 위풍당당 귀가하는 모습이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또래 남자애 같았다. 아니면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
"딸, 빨리 와서 봐!"
"뭐야! 강아지잖아!"
그렇게 열두 살의 도나와 생후 약 9개월 된 요크셔테리어가 만나게 되었다. 2005년 5월이었다.
당시 가깝게 지내던 친구 이모양이 있었다. 그 친구는 말티즈를 키웠다. 인품보다 '집에 강아지가 있는가' 같은 허접한 기준으로 편중된 관계를 맺고 있던 나는 그 친구가 무슨 말을 해도 그 집에서 노는 게 가장 좋았다.
정서적으로 친밀하지는 않았으나, 그 친구는 선배 견주(말이 견주지, 당시 부모 입장에서 초등생 자녀와 강아지는 크게 진배없을 것)로서 척척박사일 거라는 기대와 경의를 품었다. 물론 우리 집에 강아지가 왔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알린 것도 그 친구였다.
다음날, 이모양은 소식을 듣자마자 본인의 강아지를 끌어안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 집엔 이름도 없는 강아지와 주인이라 부르기에 매우 허술한 어린 여자애 하나가 있었다. 대충 강아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설명해 준 친구는 강아지 두 마리를 나란히 앉혀 놓고 신성한 의식에 가까운 행위를 진행했다. ‘의형제식’이라는 명분이 붙었고, 이제 너희 둘은 가족이야! 한 마디로 공식 관계를 맺었다.
이 행사의 메인 이벤트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춘기 소녀들의 작명'이었다. 당시 반려견 네이밍은 매우 획일화되어 있었고, 실제로 대부분의 강아지가 뭉치, 쿠키, 해피, 초코 같은 이름을 썼다. 그 친구의 반려견 역시 뽀삐였다.
초등학생들의 아이데이션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흔한 이름 싫어, 먹는 거 이름도 싫어. 둘은 형제니까 같은 앞글자를 써야 해.
그렇게 생후 9개월 된 요크셔테리어는 ‘뽀뽀’가 되었다. 그날부터 우리 집에는 강아지 뽀뽀가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