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줄 날이 올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다닐 때가 그나마도 좋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은 곧 엄마의 입학과 같다. 자녀들이 크면 엄마 하기도 조금 수월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위로 삼아 살아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역할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물론 안 하려고 마음먹으면 그만이지만 어느 부모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으면 매우 분주해진다. 아이의 옷, 가방, 학용품 등 유치원과는 달리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비교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친구들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자녀에 대한 걱정인지, 나의 자격지심인지, 아님 허영심인지 알 수 없다. 첫아이 초등학교 입학 때 처음으로 명품 옷과 가방을 샀다. 형편을 넘어서는 비용을 들였지만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과 남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학용품 준비를 하느라 퇴근 후 밤을 새웠다. 연필, 크레파스, 색연필, 가위, 지우개 자 등 낱개마다 이름을 모두 써서 부치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시대가 좋아져 네임표를 인터넷에 주문해서 간편하게 부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당시에도 그런 것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몰랐다. 그래서 견출지에 약 200개가 넘게 이름을 썼다. 그리고는 떨어지지 않도록 스카치테이프를 둘렀다. 모두 잠든 밤에 혼자 베란다에 불을 켜 놓고 앉아 준비물을 챙기면서 40색 크레파스를 사 준 것을 후회하면서 혼자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어느새 이 만큼 자라 학교를 간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으로 명품(닥스) 옷을 사 입히고, 고가의 학용품을 사주었다. 물론 아이는 명품이 뭔지, 학용품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지 못한다. 단지 엄마의 조바심 일 것이다. 형편보다 과분한 준비를 하는 마음 한편에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신뢰받고, 친구들에게도 왕따 당하지 않고 잘 지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입학식 날 가방을 메고 배정된 학급의 푯말 앞에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흘렀다. 많은 엄마들이 눈물을 보이는 것 같았다. 이만큼 잘 커준 데 대한 고마움과 대견함의 표현이었으리라. 그렇게 시작된 학교생활을 잘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대화할 시간이 있으면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학교 다니는 게 싫지는 않은지 묻고 또 물었다. 바쁜 엄마의 정보 부족으로 손해 보는 건 없는지 항상 염려가 되었다.
어느 날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부모를 초청해 나라사랑 안보교육을 하는 행사가 있다며 강사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를 지목한 이유는 아빠가 군인인 학생은 많은데 엄마가 군인인 학생은 우리 딸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기회에 조용한 성격의 딸의 인기를 높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장에 양해를 구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안보교육 자료를 만들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가능한 쉽게 재밌게 해야 한다. 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엄마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어느 강의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발표하는 아이에게 주기 위한 이벤트용 선물과 간식을 반 아이 숫자보다 더 많이 준비했다.
전투복에 베레모를 쓰고 학교에 나타나자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우와 멋있다. 주은아 너희 엄마야?, 진짜 멋있다!’ 라며 시끌벅적한다. 딸아이가 으쓱하며 주변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야’라고 여러 차례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웃어준다.
교육준비를 마친 후 인사를 하자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주는 아이들 앞에서 나라사랑에 대해 설명을 한다. 손들고 발표를 하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때마다 여기저기서 ‘저도요 저도요’ 하면서 ‘이거 진짜 좋은 거다. 빨리 발표해서 너희들도 받아’라며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일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직장맘들은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 와중에 힘겹지만 직장을 이어가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자녀들에게 어떤 형태이든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도 크다.
딸아이의 학교 방문을 통해 얻은 것이 정말 많았다. 딸아이는 집에 와서 내게 ‘엄마, 000가 엄마랑 결혼하고 싶데, 엄청 예쁘데, 엄청 멋있데’ 라며 신이 나서 얘기를 한다. 천만다행이다. 적어도 항상 바빠서 원망스럽고 부끄러운 엄마는 아닌가 보다. 힘겹게 느껴질 때도 많지만 악착같이 살아내서 자녀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부모가 되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