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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맘 Jan 25. 2021

콤플렉스를 재능으로 만들줄 알아야

(눈치보기가 지혜와 재능이 되었다)

고등학교 전교 회장 출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간호사, 여군 장교 수석 임관, 기무사 차출, 현재 중령이라는 계급장을 달고 있는 내가 사실은 숱한 콤플렉스로 자존감이 매우 낮은 사람이었다면 믿겠는가? 위에 열거된 나의 커리어를 보면 특출 나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할 얘기가 조금은 있는 정도의 삶이라고 할까.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이 정도면 양호하지 뭘 그래’ 라며 위로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나는 남들보다 모자란 수준의 외모를 가졌고 목소리 또한 허스키한 탁음에 딱히 내세울 만한 재능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현실적인 사람임을 내세웠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 그 콤플렉스들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콤플렉스와 평범함을 잘 알기 때문에 그걸 숨기고 싶은 마음에 어떤 상황에서든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야 했고 남들과 다른 존재로 인식되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면 한참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학교 행사 인솔, 외부 행사 참석 등으로 바쁜 학생회장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고등학교 시절 병영체험이 전부인 내가 군인을 지원한 것도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그러면 지극히 평범한 아니 조금 모자란 듯한 나를 그럴싸하게 포장해 상품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으리라. 


또한 나는 항상 무표정 아니 약간 화가 난 표정을 하고 계시는 엄마가 무서운 존재였고 기분에 따라 매질의 횟수나 강도가 틀려진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아차린 나는 일찍이 눈치보기는 기가 막힐 정도로 잘하는 아이였다. 지금 말하면 해주실까? 어떻게 하면 안 맞을까? 오늘 엄마 기분은 어떤가? 등등 작고 처진 눈을 힐끔거리며 수시로 엄마 얼굴 속 날씨를 읽으려 노력했다. 어릴 때 동네에서 내게 야시(경상도 사투리, 여우)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생각해도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어느 상황에서든 상대방의 눈치를 살핀다. 하지만 시작이 어떻든 지금의 나는 눈치 없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는 사실이다. 언제 어느 시점에 내가 나서야 하고 언제 물러나야 할지를 어느 정도 정확히 알아맞춘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불려진 병명이 야시(여우)였다.


성장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성격 덕분으로 간호사 시절이나 군 복무 간 모두 윗사람으로부터 센스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엄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것이 오히려 덕이 된 것이리라. 혼나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잘하고 싶다는 자의적인 욕망으로 변할 걸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직책을 부여받거나 단순한 일거리를 받더라도 착수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생각하면서 준비를 한다. 즉 남들보다 적어도 2배 이상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말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나의 평균 퇴근시간은 22시 전후, 출근시간은 새벽 5시 50분이었다. 상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남을 의식한 것이라면 20년을 한결같이 하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난 내 직장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내가 가장 잘 알기에 남들보다 몇 배로 열심히 해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간절한 애닮음의 표현이었다. 처음에는 잘난 것이 더 잘하려고 과한 행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지만 꾸준한 나의 모습에 마지막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이런 성격 탓에 후천적으로 길러진 능력이 한 가지 있다. 내가 처음 군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군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부대뿐 아니라 상급부대에서 주관하는 의식행사나 각종 세미나, 회의는 물론 회식도 의무 참석 대상이었다. 더불어 따라오는 것이 ‘한마디 해 봐’ 즉 뜻하지 않은 발언의 기회였다. 이후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 어디에 가든 말할 거리를 준비하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할 얘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심지어 몇 백 명이 함께 듣는 강연에 참석할 때도 ‘거기 여군 한 마디 해봐요’는 기본 수순이었기 때문에 ‘나한테 의견을 물으면 뭐하고 할까’를 머릿속으로 수없이 준비하고 되뇌었다. 그런데 내가 준비했던 말들이 분위기와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생겼고, 그럴 때면 재빨리 머릿속으로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회식자리에서는 나의 발언이 끝나야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전에는 오로지 발언에 대한 생각, 그래서 어떨 때는 내가 자진해서 멘트를 할 때도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먼저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 버릴 때도 있어 당황스러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충 준비하면 실전에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또한 적어서 보고 할 수는 없으니 생각이 나더라도 꼭 해야 할 몇 마디를 뻬먹는 경우가 생겼다. 그렇게 끝이 나면 밤새 후회가 되어 잠을 설쳤다. 왜냐하면 발언이라는 것이 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기 때문이다. 그것이 술을 먹는 자리이든, 회의를 하는 자리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맞는 생각과 의견 제시는 나의 이미지 메이킹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치밀한 준비로 ‘진짜 말 잘한다’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군 생활의 경험에서 인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득한 것인지 상급자에 대한 충성심(?)을 조금 녹여넣는 센스까지 생겼다


결론적으로 부족한 나를 인정받게 하기 위해 눈치를 보면서 다소 정확한 상황인식을 하게 되었고, 더불어 상황에 맞는 생각 정리와 그것을 말로 표현하면서 내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눈치보기가 센스로 둔갑하는 상황이 온다. 너무 과하지 않고 진실함이 담긴 센스 있는 한마디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표성을 지닌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 같다.


엄마이기에 앞서 내 인생을 살아가는 직장인으로서 나름대로의 성공을 꿈꾸는 우리에게 필수 아이템이 센스인 것 같다. 분위기를 알고 상황에 맞는 말 한마디를 하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작은 차이가 불러올 결과의 차이는 엄청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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