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세탁기도 청소 해야 한다고요?

옷은 생각보다 나약하다.

by 청귤

세상에 자동으로 깨끗해지는건 없더라. 내가 숨쉬었던 모든 공간에 엄마의 손길이 닿아있었다.


이삿 날, 엄마가 유일하게 해준 청소가 세탁조 청소이다. 세탁기도 때가 끼는구나.

세탁기만큼은 꼭 한 달에 한 번씩 청소하라며 신신당부를 하곤 금방 차를 타고 사라졌다.

기숙사에 살며 세탁기는 꾸준히 써왔지만 딱히 내가 청소를 하진 않고, 버튼들은 전부 X표시가 된 채 표준과 울코스만 남았으므로.

휑한 방에 놓여진 세탁조 클리너는 유독 눈에 띄었다. 분명 물을 채우고 캡슐 한 개를 빠뜨려 통세척을 누르면 된다는데.. 세탁기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물만 채우는 버튼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걸 몰라서.

캡슐 한 개를 바닥에 둔 후 통세척 버튼을 눌렀다.

이제는 안다.

통세척 코스를 누르고 물이 가득 차면, 잠시 세탁기를 멈춘 뒤 클리너 캡슐을 한 두개 퐁당.

1~2시간 불렸다가 마저 돌린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는 후에 표준으로 한 번 더 돌려주고 있다.

사실 세탁기가 깨끗해지나? 잘모르겠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계약 끝나고 이사가려고 흐린 눈으로 살고 있다.


바로 이전 화에 이불에 먼지가 묻어나오는 느낌이라 적었는데 맞다.

이 글을 쓰는 바로 어제 이불에서 먼지덩이를 발견했다. 이것들이 내 폐로 들어온다니. 절망적이다!

몸에 근래 뾰루지가 자주 나던데 이유를 여기서 찾고 싶어질 심정이었다.

요즘 비가 잦아 날이 수분을 머금다 못해 축 늘어지고 있는데, 날이 조금 풀리면 세탁방에 이불을 싸들고 가야겠다. 아직 많이 서툰 자취 1년차이다.


또, 세탁기 내부 측면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먼지 망이란 것이 존재했다. 이 망에 먼지가 가득 쌓이면 빨래에 먼지가 묻어 나온다.

한 번 검은 반팔을 몰아 세탁한 적이 있는데, 세탁기 문을 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온갖 옷에 먼지 뭉텅이가 묻은 것은 물론 옷 섬유 사이사이에 먼지가 박힌, 자취 후로 처음 겪는 사고였다.

원인이 빨래 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 주기적으로 관리한다.

그 옷들은 다시 빨래를 돌려도 쉽게 돌아오지 않아서, 손상이 적어 살릴 수 있는 옷들은 살리고 몇 개는 쓰레기통행이라 아깝기도 하고 아주 조금, 그니까 정말 아주 조금 눈물이 낫다. 그나마 반팔이라 다행이었던 일이다. 겨울 옷은 반팔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비싼데, 겨울이 아닌 여름에 겪어서 다행이라며 위안했다.


나의 피부에 닿고 숨을 들이쉴 때 가장 가까운. 옷과 이불들. 모두 세탁기에 들어간다.

그만큼 깨끗하고 싶은데, 나의 세탁기도 아니고 함부로 인터넷에서 뒤적인 청소법을 따라했다가 고장낼까 겁이 난다.

누구나 세탁기를 잘못돌려 아차- 한 사건들을 지나오는 걸까?


이걸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는 자취를 시작 이후 가장 인상깊은 깨달음이었기 때문이다.

얼른 나의 세탁기를 구매하고, 집에서 더 많은 것들을 가꿀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keyword
이전 08화08. 이불 빨래는 자꾸만 뒤로뒤로 미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