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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프코리아 Dec 21. 2023

너 우프 아니?

우프코리아 역사1

평상시 우프코리아 관련해서 주로 두가지 질문을 받는다. 오늘은 그 두번째 질문인  "우프코리아를 창립했냐?" 에 대한 얘길 해보고자 한다. 첫번째 질문은 다음 편에서~~

우프코리아는 1997년 '이창열'이라는 20대 청년이 호주에서 우프를 경험하고 세계 네트워크의 한국 대표부를 창립하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농업을 지원하는 업무의 형태는 아니었고 해외우프 업무가 주를 이뤘다. 형태도 주식회사 법인이었다.  


90년대 말에는 대학생 및 청년들이 해외여행 및 영어 어학연수에 대한 붐이 한창 일어날 때였다. 우프가 현지인과 함께 생활하며 숙식을 제공받는 활동이라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이를  비지니스화해서 운영했다. 당시 언론 및 방송에서도 꽤나 우프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키워드는 항상 "공짜로 영어배우기" 였다. 


나 또한  20대 중반 호주에서 1년동안 지냈는데 그곳에서 우프를 했던 경험이 귀국 후에도 잊혀지질 않았다. 그래서 우프코리아를 노크했고  1999년 3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는 우프 활동 전 영어를 익힐 수 있는 어학연수 학원을 소개하고 우프농가를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수익이  꽤나 좋았고 나는 내 우프 경험을 얘기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즐겁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창열 사장은 몇몇 직원들을 모아놓고 "우프코리아를 다른사람에게 양도 해야 할것 같다"고 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친구들을 직원으로  채용하면서 함께 일을 하다 보니 그 안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논의를 계속 하는 모습을 보며  신입직원으로 사무실 구석에서 양도 얘길 듣고 있었던 나는....


제가 인수하면 안될까요? 

수중에 돈이 있는것도 아니었는데 무슨 배짱이었는지...

당시 꽤나 큰 금액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무작정 일을 저질렀고 여기저기에서 돈을 융통해서 1999년 10월에 주식회사 우프코리아 대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나 없었지만 요즘은 문득, 그 무모했던 나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20년전 우프코리아 리플렛


인수 후, 나 또한 전에 했던 업무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엔 한국우프 농가가 5곳 정도였고 농가를 추가로 유치하려고 여러곳 다녀봤는데 '유기농, 친환경' 이라는 단어 자체도 매우 생소해서 농가를 섭외하는것이 매우 어려웠다. 

또한 우프 활동에 대해 얘길 하면 내국인은 백이면 백 "한국농장에서 일하는데 왜 돈을 안 받아?" 였다. 그랬기에 외국인만 우퍼로 받을 수 있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전과 같이 해외우프 업무를 비지니스화해서 운영했다.  



당시에 외국인들은 1년에 40~50여명 정도가 우프 활동을 했.  한국우프 대표부로서 명분이 있어야겠기에 우퍼들의 스케쥴을 일일히 짜주고 원하는 농장을 직접 연락해서 연결시켜 주곤 했다. 당시에는 농장정보가 책자로 되어 있어 외국인들은 책을 받으러 사무실에 들렀고 귀국 때에도  다시 찾아와서 우프경험을 얘기해 주곤 했다. 





호스트 정보가 실려있었던 책자



우퍼들은 한결같이 한국우프 경험에 대해 너무나 만족했고, 호스트님들 또한 우퍼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 하셨다. 또한 시골에 있으면서 전세계 청년을 만난다며 우프활동을 하는 사무국에 많은 격려를 해주셨다. 


한국우핑은 해외우프를 주 업무로 하면서  명분상 했던 일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그 업무에 마음이 가고 있었다. 


그즈음부터 우프코리아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시작되었고  2009년 어느날 나는 무작정 농림축산부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우프에 대해 소개하면서 한국농촌에 많은 도움이 될수 있는데 활용이 되지 못한 소회까지....


얼마나 지났을까? 당시 농림부에 근무하셨던 박oo 사무관님이라는 분이 연락을 주셨다.


이렇게 좋은 활동이 있는지 몰랐다 


사무관님은 과천 (당시엔 과천에 농림축산부가 있었다)으로 올수 있냐고 하셨고,  그 뒤에 몇번의 회의 및 미팅을 했으며 이후 2010년 8천만원을 지원해 주셨다. 



그러시면서 "이런 공익성 있는 활동은 사단법인으로 하면 좋겠고 그렇게 되면 운영비가 나온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국우프는 수익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었는데 사단법인이 되면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는구나 싶어서 2011년에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전환을 하였다. 


그리고 한국우프 업무에 집중하기위해 해외우프 업무는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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