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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지CEO 조정원 Feb 05. 2016

희망퇴직은 내가 제 2의 인생을 꿈꾸게하다.

니키의 행복한 글쓰기(15)

어렸을 때부터 재테크와 동기부여 책을 즐겨보았는데 그 책에 공통으로 나오는 말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자.’이다. IMF 시대를 경험했던 우리나라 직장 생활의 불안함이 책 안에도 느껴지고 있었다. 책으로만 간접적 경험을 했던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느끼게 되었다. 첫 번째 회사는 크지 않은 중소기업이었다. IT 보안이 한참 성장세를 달리던 시기였고, 꾸준히 인력들이 들어왔다. 3년 차에 대리가 되고, 5년 차에 과장은 자동으로 되었다. 맡은 프로젝트가 계약 해지 논의가 될 정도가 아닌 이상 시간이 지나면 승진은 되고 팀장이 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3년 차 때 회사 인수/합병 소식이 전해졌다. 대주주가 주식을 넘기면서 다른 회사에서 인수하려고 했다. 회사가 어수선했다. 몇 선임들은 발 빠르게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내 위에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회사의 사장님이 되실 분이 와서 같이 식사를 했는데, 며칠 후에 최대 주주가 바뀌면서 다시 다른 사장님으로 바뀌었다. 회사 내 정치 세력이 두 개로 나뉘었는데 한쪽 세력이 한번에 잘려 나갔다. 나는 어디로 움직일 생각조차 못 하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따르고 있던 상사는 첫 세력에 의해 회사를 떠날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두 번 째 세력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그 뒤로 승승장구했다.


5년 동안 컨설팅 회사에 있다가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해서 관리실무를 담당했다. 대기업 계열사였다. 이직해서 익숙하지 않은 업무에 적응하느라 몇 달이 걸렸다. 팀원들도 모두 교체가 되어서 사업 계획을 몇 달 동안 작성했다. 회사의 사정은 정확하게 몰랐다. 6개월쯤 지났을 때 본부 실장님이 오전 회의를 갔다 온 다음에 오후에 짐을 싸고 회사를 나가셨다. 황당 그 자체였다. 대기업 임원은 1년 단위로 평가를 받아 자리를 유지하거나 회사를 나가느냐를 결정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한 본부의 실장님인데 어떻게 하루 만에 저리될 수 있지? 아직 정년 나이도 많이 남았는데?” 후에 나가서 아이들 수학 과외도 하고 못다 한 운동도 하실 계획이라고 전해 들었다. 이때 나의 제2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다. 이때까지도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위의 2가지의 경험은 어찌 보면 간접적으로 다가온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대기업 입사 1년 만에 회사 구조조정이 왔다. 회사 업무에 익숙하기도 전에 갑자기 닥쳐왔다. 대상은 거의 전 대상이었다. 앞으로 사업을 제외한 부서들은 한 개층에 모두 몰아놓고 팀 업무도 주지 않았다. 모든 업무가 멈추어진 상태가 되었다. 내가 속해 있던 정보보호팀은 구조조정이 될 수 없을 것이라 계속 들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더는 일을 하는 것이 싫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와이프와 한참 커가는 아들이 있었지만, 며칠 고민하다가 바로 퇴사를 했다. 


이때 뛰쳐나올 용기는 바로 ‘책’이었다. 책 계약이 되어 있었고, 온라인 커뮤니티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때 세웠던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회사를 나간다고 먹고살 것이 없을까? 앞으로 책을 쓰고 강의를 해서라도 가족을 지킬 정도는 될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행히 2개월 치의 퇴직 위로금과 퇴직금이 있었기 때문에 몇 개월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만약, 이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면 그 회사에 계속 머물러 있었을 것이고 지금 하는 모든 것을 추진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고, 글쓰기의 행복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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