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현실은 삶 이전에 나 스스로가 계획하고 연출한 시뮬레이션이다
앞에서 우리는 내 앞에 전개되고 있는 삶이라는 이 현실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통해 어떻게 현실화가 되어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지금부터는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우리가 소망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실재화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많은 영적 스승들의 지혜와 통찰을 등불 삼아 다음의 3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일 확률은 99.9999%이다"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
그 첫 번째 단계 “문제점을 자각하고 교정하려 애쓴다”이다
이는 원치 않은 감정과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는 의미와도 같다
즉, 자기 자신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자아 상태를 관찰함으로써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시야와 성격을 창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메타인지라는 개념은 이러한 사실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즉, 나 자신을 객관적인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지금까지의 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미성숙했고 부정적인 자아가 원인이 되어 만들어졌던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을 완전히 새롭게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내가 바라고 원하는 모습의 나는 물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과 환경까지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시야를 갖게 해 줄 것이다
메타인지란 자신을 상반된 두 개의 인격으로 분리해서 내 안의 진짜 나와 가짜 나로 나눠서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것을 말한다
나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관조하면서 긴 꿈 속과 같은 현실 속의 나와 그것을 제삼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과학이 연출하고 각색한 현실이라는 무대 이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새로운 세계에 대하여 눈을 뜰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의 삶이 전부인 양 그 속에서 울고 웃고 있는 스스로를 깨워서 근본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완전하고도 평화로운 원래의 나에게로 데려 나와야 한다
보이고 만져지는 이 유한하고도 기계적인 현실 이면에 자신만의 영원한 주관적인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우리는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현실세계는 바다 표면 위에 일렁이는 파도와 같다
파도는 외부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리며 울부짖는다
파도는 스스로 성내고 잔잔해진다고 생각하며 출렁이고 있지만 곧 전체인 바닷속에 스며들게 된다
파도는 그 표면 아래에 대우주의 리듬에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는 심연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는 한순간 왔다가 사라지는 그러한 파도 하나하나에 너무 심각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 앞에 다가오는 온갖 풍파에 속절없이 휩쓸리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파도는 시끄럽지만 결국 사라지게 되어 있다
파도는 그 시끄러움이 실은 이 우주를 살리는 산소를 공급하고 있음을 파도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온갖 풍파에 시달리던 파도는 결국 전체인 바다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전체와 하나 된 그 파도는 어떤 흔적도 남김없이 깊은 심연 속을 순환하게 된다
전체와 하나 된 우리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완전하고도 평화로운 영원한 존재로서의 영혼이다
외부의 환경과 상황에 휩쓸리며 고뇌하고 있는 에고가 아닌 내 안의 진짜 나로서의 이 우주의 주인공이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많은 부분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현실은 지금까지의 나의 마음과 습관, 행동들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이러한 모든 것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즉, 지금까지의 나를 바꾸지 않으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내 안에 흐르고 있는 똑같은 에너지로서는 똑같은 현실만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편하겠지만 이 말은 정말 진실인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사건에 직면했을 때 나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으려면 우리는 현실을 하나의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바라볼 수 있는 약간의 자기 암시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실제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데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사실 나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나의 의식이 창조한 것이다
내가 있고서야 이 우주가 존재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내가 없다면 삼라만상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던 석가모니의 일성은 모두 나 자신의 의식이 창조한 나의 우주에서 그 주인공은 내가 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다 자신만의 우주를 스스로 창조해서 살고 있는 자기 자신만의 우주의 창조주이며 주인공이다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야는 70억 인류 모두 다르다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느낌과 감정은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 같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지옥과도 같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세계와 내가 창조하여 살고 있는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내가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다른 사람은 모두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연에 불과하다
이는 나르시시스트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비하한들 그 주인공이 바뀔 수는 없다
영적인 스승들은 우리의 인생은 삶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계획하고 선택한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말한다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도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99.9999%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 오기 전 우리 스스로 이미 이런 게임의 내용을 계획하고 왔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이것이 무슨 전생이나 환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솔직히 이를 종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사실 윤회니 환생이니 하는 것도 실은 ’ 변화‘라는 자연의 극히 일부의 현상에 불과할 뿐이며 이것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할 수도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매 순간, 매일매일 죽었다 깨어나는 변화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오히려 우주의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던 우리들이 마치 특수부대에 자원입대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뮬레이션게임 속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임 속의 나도 사실은 진짜 나가 아니다
내 안의 진짜 나는 이 게임의 수준을 결정하고 선택하여 나라는 주인공을 캐릭터 삼아 그 게임을 지켜보고 있는 게임의 프로그래머이자 유저인 나의 영혼이다
우리 모두는 대부분 참나인 나의 영혼이 내세운 지금 이 모습의 내가 실재 나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내 안의 참나와 가짜 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나라는 모습과 성격 그리고 환경과 조건을 가진 지금 이 현실 속의 나는 사실 실재의 내가 아니다
실재하는 진짜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난 적도 죽은 적도 없이 매 순간 난생처음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영원한 현존인 영혼이다
하늘의 존재인 영혼으로서의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라는 에고를 자신의 아바타로 내세워 삶이라는 긴 게임을 하고 있는 게이머이자 연출자이다
참나인 순수의식으로서의 나의 영혼은 지금 아무 문제도 없다
우주의식의 한 부분으로서 나는 언제나 이곳에 있었고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그냥 우주의 근원과 함께 진동하고 있을 뿐이다
단지 내 안의 진짜 나인 영혼은 지금 현실이라는 내가 계획하고 선택한 이 게임을 통해서 다양하게 경험하고 배움으로써 더 밝은 빛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는 영원히 진화하고 있고 우리 영혼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변화가 없다면 우주도 살아 있다고 볼 수 없다
영혼으로서 참나도 끝없이 성장해야 하며 발전해야 할 것이며 더 밝은 빛으로 차원 상승해야 한다
이 게임의 난이도는 이 세상에 우리들이 오기 전에 우주의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이미 우리들 자신이 계획하고 선택한 것일 것이다
이미 쉬은 게임을 마스터한 게이머들은 결코 또다시 이와 비슷한 쉽고 순탄한 게임을 계속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난이도를 높여 새로운 경험과 모험을 즐기고 싶어 할 것이며 그를 통해 성장 발전해 나갈 것이다
더 이상 배울 것도 경험할 것도 없는 권태로운 게임을 계속하고 싶은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신의 강요나 의무가 아닌 우리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계획하고 선택한 삶이라는 이 힘든 게임을 나의 영혼은 스스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실로 몰입도가 너무도 높은 너무나도 사실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몰입도 높은 이 생존게임에 몰두한 나머지 영원한 존재로서의 나를 잊어버리고 게임 속의 아바타인 지금 현재의 내가 진짜 나인 양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온갖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며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메타인지는 이 실재와 허상사이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진짜가 무엇인지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인지하고 자각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정말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는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감정적으로 매몰되고 만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판단이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나를 괴롭히는 상대가 한없이 괘씸하고 미워서 아귀다툼하듯 치고받고 싸우며 자기보다 훨씬 힘 있는 권력과 부를 갖고 있는 듯한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고 상처받으며 괴로워한다
지금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앞뒤 상하사방이 모두 막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으며 캄캄한 절망 속에서 스스로를 가둬버리고 만다
너무나도 절박한 게임 속의 상황은 진짜 내가 누구인지 까맣게 잊게 만들고 게임 속의 나의 아바타인 자아가 진짜 내가 되어 온갖 괴로움과 고통을 뒤집어쓰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처럼 내 안의 진짜 나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게임 속의 주인공으로써의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있다
그리고는 그 속에서 달려드는 조연들에게 휘둘려 그들에게 그 자리를 내준 채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 보여도 그들은 모두 참나인 나의 영혼이 내세운 조연일 뿐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아무리 하찮은 모습일지라도 주인공으로써의 위치는 변함이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노예와 같은 하찮은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한순간 정신을 차리고 마음의 눈을 뜨게 되는 순간 나는 이 현실우주의 주인이며 참나인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꿈속에서 생사를 가리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절박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나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은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 이미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우리 스스로 계획하고 선택한 너무나도 사실 같은 한 편의 긴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지금 현재의 삶을 훨씬 더 능동적이면서 주체적으로 살 수가 있을 것이다
게임을 운용하는 게이머이면서 프로그래머의 시선으로, 꿈속의 나를 어렴풋이 바라보는 진짜 나의 시선으로 한 발짝 물러나 이 현실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펼치고 있는 이 게임판을 객관적인 눈으로 관조하고 바라볼 수 있을 때 게임 속의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으며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판단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경험과 교훈을 얻게 될 것이고 나아가 새로운 게임판, 즉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가 있을 것이다
원인이 항상 그대로 있는데 어떤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나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관조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 자신의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바둑의 수가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훤히 보이는 것처럼 나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느끼거나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삶이라는 게임판을 게임 속의 내가 아닌 게임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게임의 운용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게임 속 나의 시선으로는 게임 속의 상황이 왜 펼쳐지고 있는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게임이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게임 속의 내용이 실재라고 착각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게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지혜와 시야가 가려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게임을 지켜보고 있는 게임의 설계자의 눈으로 한 발짝 물러나 게임판을 바라볼 수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침착하고 냉정하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들 스스로가 무슨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발견해서 고쳐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옛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거듭났을 때 우리들이 소망하고 원했던 새로운 현실과 운명이 지혜와 통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방금 전의 나는 이미 이곳에 없다
이곳엔 이미 전혀 새로운 지금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