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쉬울 것 없다, 미련 가질 것 없다
영혼이 밝혀주는 통찰과 지혜라는 등대의 빛이 함께할 때 ‘알아차림’이라는 자각의 순간이 찾아온다
현실이라는 너무나도 단단하고도 의심할 수 없는 실체가 단지 한 편의 긴 꿈이요 놀이일 뿐이라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는 길을 잃고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결코 크게 마음에 와닿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천하의 만물은 있음에서 생기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긴다" -노자-
우리들이 놀고 간 놀이터에 모든 것 남겨두고 빈손으로 떠난다
꿈속에서 울고 웃던 장면들은 깨고 나면 사라진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삶의 모든 질곡들을 꼭 끌어안고 놓지를 못한다
우리들이 하는 일마다 일이 꼬여 가며 더욱 악화의 길로만 들어서게 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마다 무조건 맞서서 불굴의 투지를 앞세워 꿋꿋하게 나아가 크게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그에 따른 대가도 뒤따를 것이다
설혹 모든 것을 극복하고 뜻을 이루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그러한 어려움이 찾아오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또다시 그런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영적인 스승들은 이처럼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일단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와 원인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외부에서의 문제라기보다는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 주된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우주의 근원 에너지와의 공명을 방해하는 잘못된 생각과 행위들은 자연스럽게 그것이 올바른 진동으로 교정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며 이러한 과정들이 우리에게는 고통과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바로 영원한 존재로서의 나 자신의 발전과 진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현실이라는 이 놀이터의 이면에 엄연히 작용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보다 열린 마음을 가졌을 때 우리는 현실에 펼쳐지고 있는 이러한 온갖 희로애락으로부텨 훨씬 덜 심각하게 대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으로부터 우리는 한없는 위로와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의 삶너머 저세상에는 어떤 차원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지 그 누구도 본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일이기에 영혼의 세계가 어떻다 천국과 지옥이 어떻다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단지 수행의 세계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각종 비서나 경전, 그리고 수많은 임사체험의 사례를 통해 어렴풋이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인류의 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이 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지금도 여전히 그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안고서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다가 자칫 이상한 사이비종교에 빠지거나 잘못된 무속인이나 선지자를 자처하는 거짓 사기꾼을 만나 가산을 탕진하거나 신세를 망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비밀의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은 채 저너머의 세계에서 엄연히 펼쳐지고 있는 신비와 조화를 부정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단지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이지 보이는 이 세계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다차원적인 저 너머의 세계가 엄연한 우주의 법칙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다행히 근대 뉴에이지 물결과 더불어 새로운 과학적 사고에 마음을 열고 있던 일부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와 각종 심령현상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이후 양자물리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기존 과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보이는 물질현상 이면에 의식과 같은 보이지 않는 어떤 근원적 힘이 진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과학자들은 이 물질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과정에서 우리들 인간의 의식이 깊이 개입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이 근원적 에너지인 의식의 본질, 즉 영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인 의식과 영혼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숙제가 단지 과학적 접근법으로만 해결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님은 여전히 시크릿영역으로 남아 있는 지금의 현실을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의 과학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우주의 폭넓은 이해를 추구해 온 동서양의 모든 지혜와 철학과 더불어 고유한 영적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각종 종교의 교리와도 서로 손잡고 노력하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의 만물은 있음에서 생기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긴다’
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음과 양으로 존재하며 이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풀어나가는 질서의 세계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진실에 가까운 우주의 이치이다
몇천 년 전에 깨우친 성인들의 통찰력은 현대 양자물리학에서 밝혀낸 파동과 입자와의 관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를 둘러싼 현실우주는 보이지 않는 의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파동성과 보이는 물질로 표현될 수 있는 입자성 사이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과 변화의 과정이다
이 있음과 없음, 생성과 소멸, 음과 양으로 분리된 세계가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이다
음과 양이 하나가 된 빛의 세계인 절대계에 맞서 있는 상대계, 즉 우리의 현실세계는 서로 분리된 세계이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가 있으면 보이는 물질세계가 있고,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좋은 게 있으면 싫은 게 있고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는 상대의 세계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이다
반대로 상대계 이전의 음과 양이 하나인 세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항시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는 빛의 세계, 좋음과 싫음, 너와 내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충만된 세계가 바로 절대계인 근원의 세계이다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삼라만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부득이 다음과 같은 철학적 통찰을 통해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초의 창조주의 두 마음인 부성과 모성이 태극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 마침내 창조의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이 우주 삼라만상이 잉태되었다
음극과 양극이 만나면 빛이라는 창조가 일어난다
남녀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러 사랑스러운 아이가 잉태되듯이 태극이 동하여 마침내 창조의 거대한 마찰과 함께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하늘과 땅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천, 지, 인 3 태극이 완성되었고 하늘의 영과 땅의 백이 만나 그 한가운데 인간의 혼이 탄생된 것이다
이 혼은 하늘의 속성을 가진 영과 땅의 속성을 가진 백 사이의 중계역할을 하며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고 있다
영은 절대계 하늘을 이루고 있는 우주의 근원 에너지로서 좋고 싫음이라는 감정을 넘어선 순수의식이다
이 영이라는 순수의식이 땅인 인간의 육체에 내려오게 되면서 독립된 개체라는 자아의식이 싹트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혼이라고 부른다
이 혼이라고 불리는 개체의식은 인간의 육체를 밭으로 삼아 성장하게 되는데 이때 이 육체라는 밭에서 제공되는 본능과 감정을 자양분 삼아한 개체로서 자립하게 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태되는 순간 인간의 마음과 감정이 형성되는데 이 감정을 주관하는 에너지체를 우리는 백이라 부른다
이렇게 혼과 백이 하나가 되어 자아가 형성되면서 육체를 밭으로 삼아 한 인격체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우리의 혼백은 한 영혼의 아바타로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삶을 영위해 간다
내 안의 참나인 영혼은 상대계인 물질계에 내려와 혼백이라는 자신의 아바타를 내세워 삶을 살아가면서 거기서 얻은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영적성장과 함께 우주적 진화의 대열에 함께한다
그렇게 한평생을 마친 혼백은 서로 분리되게 되는데 이때 혼은 원래 왔던 한 뿌리인 영혼의 세계로, 백은 육체의 소멸과 함께 땅으로 흩어짐으로써 음과 양이 분리된 불이 꺼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혼비백산하는 것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코드가 뽑히면 불이 꺼지듯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 불이 꺼진 정지상태가 된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코드가 하나로 연결됐을 때 빛이라는 창조가 일어나듯이 음과 양이 하나가 됐을 때 모든 창조는 일어난다
불이 꺼진 정지상태에서는 어떠한 변화와 진보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우리가 절대계인 빛의 세계에서 상대계인 이 물질계에 내려와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한 영적인 진보를 이루기 위함이다
영혼은 지금껏 한 번도 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 항상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었다
우주에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수많은 차원의 세계가 중첩되어 있다
이렇게 상대계인 물질세계에 내려와 이곳에서 수많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 더욱 성숙되고 정화된 의식은 우주의 근원과 동조를 이룰 수 있을 만큼 영적인 진보가 이루어졌을 때 마침내 해탈이라는 영원한 자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참나인 영혼이 육체와 함께할 때는 그 모든 주도권을 혼백이 육체와 함께할 때 형성된 마음에 맡긴 채 그저 지켜만 볼 뿐 일체 관여를 하지 않는다
단지 영감과 지혜를 통해서 나아갈 빛을 밝혀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삶이란 태어나기 전 우리 스스로가 계획하고 선택한 시뮬레이션 게임과도 같은 것이라 했다
그 시뮬레이션의 설계자이면서 연출자로서 참나인 나의 영혼은 자신의 아바타인 혼백이 깃든 지금의 나의 모습을 현실이라는 게임 속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리고 참나인 나 스스로가 선택하고 계획한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나게 함으로 삶을 풀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백지 한 장을 받아 들고 태어났다
소위 우리들이 계획하고 연출한 시뮬레이션의 원본이다
그 백지에는 우리들이 평생을 살아가기 위한 밑그림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숙명과 운명이라는 이름의 이 희미한 스케치는 우리들이 우주의 숱한 차원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이 업력의 형태로 정리되어 우리가 이 땅에 오기 전 우리 스스로가 계획하고 선택한 바 그대로의 밑그림이다
어떤 성별로 태어날지 그리고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날지, 또는 어떤 차원의 세계에 가게 될지 등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어지는 숙명은 비교적 선명한 밑그림으로 스케치되어 있다
반면에 비교적 흐릿한 상태로 스케치되어 있는 운명이라는 밑그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배우고 경험함으로써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다시 그려나갈 수가 있다
태어나는 순간 아기는 이미 태어나기 전에 가지고 왔던 인생의 밑그림이 의식의 밑바닥에 새겨져 있지만 아직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기가 주변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그 인식의 범위 만큼만이 현실화될 것이고 그의 의식이 확장된 만큼 점점 더 다양한 현실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배우고 경험한 만큼 심화된 의식은 양자장에 송출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판단하고 결심한 바가 그 받아온 밑그림을 수정하면서 자신만의 우주를 입자화시키며 현실화하는 것이다
숙명과 운명은 엄연히 다르다
한번 받아온 숙명은 바꾸기가 어렵지만 운명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개선하거나 바꿀 수 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받아 들고 온 이 하얀 백지 위에는 이처럼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담은 내용들이 희미하게 스케치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때로는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이, 때로는 한없이 괴롭고 힘든 사연들이 밑그림 속에 그려져 있지만 살아가면서 어떻게 그 밑그림을 수정하면서 그림을 완성해 가는가는 주어진 삶에 임하는 우리들의 마음과 의지에 달려 있다
주어진 밑그림과는 달리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수정하여 명작으로 완성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들 마음이다
감정과 본능으로 물질화된 마음에게 모든 주도권을 넘긴 채 한평생을 함께하는 참나인 우리의 영혼은 그가 내세운 마음이라는 운전자가 그 운전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영혼의 밝기가 결정된다
혼백이 막 형성될 무렵의 우리의 모습은 거의 영혼의 원래의 밝기와 흡사할 만큼 맑고 순수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눈빛 속에서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기는 분별심이 없다
싫고 좋음이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이렇게 티 없이 맑은 영혼도 물질적 속성이 깃든 육체를 만나면서 개별의식화된 혼을 통해 경험하며 배우게 된다
우리가 영혼이라 하는 것도 엄밀히 따지자면 영원한 하늘의 속성을 지닌 영과 개별의식으로서의 혼이 함께한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식의 한 부분으로서의 영은 비록 물질계에 내려와 육체와 함께할지라도 결코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우리가 원죄라고 부르는 흐려질 수밖에 없는 숙명적 한계를 안고 내려온 영혼의 아바타인 혼은 하늘의 본성인 양심과 함께 우리와 함께하게 된다
반면에 혼이 육체와 함께할 때 형성된 물질 에너지체인 백은 본능과 감정이라는 마음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의 혼은 하늘의 영혼이 육체를 만나 본능과 감정이라는 마음이 싹트면서 형성된 우리의 개별의식이다
이 혼이라는 개체의식이 육체를 만나면서 파생된 에너지가 백이라는 에너지체이다
이 혼과 백이 만나면서 에고인 본능과 감정이 함께하는 우리의 마음이 형성된 것이다
영혼과 의식과 마음은 영과 혼과 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영이 육체를 만나 혼이라는 상태로 개체화될 때 양심이라는 나침판을 받아 나온다
이것은 돌아갈 때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우주의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영혼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혼은 본능과 감정이라는 육체적 속성을 가진 백이라는 에너지체와 함께 하는 순간 형성된 마음과 함께 한평생을 동고동락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우리의 혼은 너와 나의 분별심이 없는 영과는 달리 너와 내가 다르다는 인식은 있지만 내가 예쁘고 너는 밉다는 차별심은 아직 아니다
이 차별심은 혼과 대비된 육체적 에너지인 백이 불러오는 본능과 감정 때문에 생겨난다
인생이란 이 혼과 백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의 과정이다
양심을 따르려는 혼과 본능에 충실하려는 백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 삶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고통과 번뇌로 나타나게 된다
이때 이 혼과 백의 갈등 즉, 양심과 본능 사이의 중재자가 바로 우리의 마음이며 바로 이 마음이 일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주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마음이라는 주인이 양심과 본능 사이를 어떻게 운전해 가느냐에 따라 본성인 영혼의 밝기가 결정될 것이며 자신이 살아온 삶의 수준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영과 혼과 백, 즉 순수의식과 개별의식과 마음의 차이는 바닷물 속에 넣어놓은 어항과 그 속의 물고기와 비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닷물 전체인 하늘의 영혼 속에 혼이라는 어항이 들어 있는데 이 어항 속에는 혼이 물질 즉, 육체적 속성인 백을 만나면서 형성된 마음이라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이 바닷물 속에 담겨 있는 혼이라는 어항은 그 그릇 속에 담겨 있는 바닷물만큼만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고 있다
자기 자신에 담겨 있는 바닷물이 전체 바닷물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자기 자신에 채워진 바닷물만이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개별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마음과 감정이라는 물고기들은 서로 내가 강하느니 네가 나쁘다느니, 내가 잘났느니 네가 부족하다느니 하면서 서로 갈등하며 싸우다가 일생을 마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하늘의 영혼이 땅이라는 물질계에 내려와 형성된 혼백이라는 자신의 아바타를 주인공삼아 삶이라는 벅진감 넘치는 놀이를 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이 게임의 연출자는 주시하는 자, 참나인 나의 영혼이다
바닷물 전체인 순수의식 영혼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어항 속의 물이나 바깥에 있는 물이나 똑같이 구별 없음을 알고 있다
부분이 전체이며 전체가 부분이다
창조주와 나는 대우주와 소우주일 뿐 똑같은 영이다
어항 속의 바닷물만이 진짜 나라고 착각하는 것이 바로 개체화된 우리의 혼백, 즉 에고이다
우리는 원래 아무런 문제도 없이 전체의 품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영원한 있음이다
내가 곧 바다이며 바다가 곧 내 고향이다
이제 어항 속에서 벗어나 바다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