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이 마을을 바꾼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4)

* 평범한 사람이 마을을 바꾼다 *



어제 오후, 집 전화벨이 울렸다. 가음댁 할머니였다.

“뽕나무 안 자를랑교?”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더니 우리 집 뽕나무가 해마다 커 그대로 놔두면 윗가지에 달리는 오디를 딸 수 없으니 미리 가지치기를 하라는 뜻. 마침 아들이 와 있으니 장대에 톱을 달아 자르는 일을 도와주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 고마운 말이었지만 그때 마침 볼일 보러 갈 일이 있어 사양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 수화기를 놓으려는데 갑자기 가음댁 어르신이 떠올랐다. 아마 아들이 도와준다는 말 때문이었으리라. 아들이 어르신을 그대로 빼다 박았으니 말이다.

마을 사람들에 관한 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분들이 바로 가음댁 어르신과 가음댁 할머니시다. 내게 이 마을에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분들이시기도 하다.


(우리 집 뽕나무)



한 마디로 참 착하다. 아낌없이 퍼주며, 손해 보는 일도 한다. 가끔 한 번씩 들르는 쉰이 지난 아들 또한 마음씀이 참 반듯하다. 착한 부모님을 닮아서인가. 그 가운데서도 가음댁 어른은 늘 든든한 언덕이 되어준 고마운 어르신이다.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땐 가까운 친지가 돌아가신 양 무척이나 슬펐다. 그 뒤로 가음댁 할머니는 어르신 몫까지 하려는 양 우리에게 더 많이 베풀어주신다.


자료를 정리하다 가음댁 어른에 관한 글을 발견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에 쓴 글이다. 그러니 8년 전쯤 여름에 쓴 글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아침 식사하는데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초기 소리야 요즘 마을에서 늘상 듣는 소리라 신기할 게 없었으나 들려오는 위치가 조금 뜻밖이었다. 바로 우리 집 뽕나무 아래쯤에서 들려왔기에. 논밭이 죽 이어진 마을 쪽이 아니고 뽕나무 아래라면?

궁금증이 일었으나 그것 때문에 밥 먹기를 중단하고 나가기엔 조금 뭣 하여 식사를 다 끝냈다. 그런데 예초기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것도 점점 우리 집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커피도 중요했지만 궁금증은 커피를 넘어선지라 나가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가음 어른께서 비옷을 입고 길가 풀을 베고 있는 게 아닌가. 여름에 한 번씩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길가 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할 때가 있어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분들은 보이지 않고 혼자였다.

“어쩐 일로 혼자서 이렇게 하셔요?” 했더니,

“아 오늘에사 시간이 나갔고….”

얼버무리는 말에 다시 한번 더 여쭈었더니 언젠가 시간 나면 한 번 해야지 했는데 그동안 집 안 일이 밀려서 못하다가 오늘 마침 짬이 나 내친김에 예초기를 들었다는 거였다.




“그래도 비가 내리는데….”

“억수로 퍼붓는 비도 아니고 고작 이슬빈데…. 이 정도면 땀 안 흘려도 되고, 일하기 딱 좋은 기라요.”

핑계였다. 햇빛이 내리쬐지 않으니까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 얼핏 들으면 비가 오기에 땀을 덜 흘린다는 말이 이치에 맞을 것 같으나 비옷을 입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기에 땀 흘리기는 마찬가지니 분명 핑계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핑계였다.


그래도 다른 분들과 함께 하시지 않고 혼자 하는 게 궁금하여 또다시,

“어르신들과 함께 하시지 않고 왜 혼자서 하셔요?” 하고 물었다,

사실 길가 풀은 여름에 최소한 세 번은 쳐줘야 제대로 사람 다니는 길이 되는데도 다들 바빠 그동안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가 오늘 길을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섰다는 거였다.

어르신이 하는 걸 한창 젊은(십여 년 전이라) 그냥 지켜볼 수 없어 뭔가 도와줄 게 없나 하여 보니 예초기로 잘라낸 풀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얼른 집으로 가 갈쿠리를 들고 왔다. 어르신은 풀을 치고 나는 긁어 언덕 아래로 내던지고.


이렇게 제법 분업으로 일하는데 혼자 사시는 명계댁 아주머니가 떡을 들고 오셨다. 우리 두 사람이 일하는 걸 보니 너무 보기 좋아 갖고 왔다나. 어르신과 아주머니가 가신 뒤 대빗자루로 쓸어 마무리하는데, 마침 이장님이 탄 차가 지나가다 세우더니 눈을 크게 뜨며,

“정선상이 혼자 이걸 다 했능교?” 하기에 얼른,

“아닙니다. 가음댁 어른께서 예초기로 다 해놓고 가신 뒤 저는 쓸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래 놓으니 마을이 한 인물 나네. 회의를 열어 한 번만 하지 말고 자주 치자고 해야겠구먼.” 하셨다.


(오디 터는 법을 가르쳐주시려 몸소 뽕나무에 오른 어르신)


우린 흔히 ‘한 사람의 뛰어난 천재가, 한 사람의 유능한 정치인이, 한 사람의 의지 굳은 혁명가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건 분명히 옳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위인의 이야기를 듣고 책에서 읽었다.

그런데 난 오늘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평범한 노인의 행동이 마을을 바꾸는 걸 보았다. 올해 일흔둘(당시 나이)이신 시골 어른의 작은(?) 선행이 주변 사람을 이끌어 내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일을 깨우쳐 좀 더 나은 마을로 만드는 걸.


가만 보면 어르신은 나보다 학교 교육을 덜 받았고, 나보다 생활도 여유롭지 않고, 나보다 젊지도 않지만 분명 나보다 훨씬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 가음댁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도움을 청하면 당신 일을 뒤로 미루고 달려오신다. 그래서 내가 연재하는 ‘달내마을 이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그동안 솔직히 큰 사람, 큰 일, 큰 결과 아니면 관심이 없었다. 적어도 누구나 그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람에 관한 일 아니면 관심이 없었고, ‘몇 년 만에 가장’이나 ‘역사적’이란 말이 붙지 않은 뉴스는 그냥 흘려버렸고, 사람들마다 탄성을 지르는 업적을 거론할 때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마을에 이사 온 뒤 아주 자잘한, 그냥 지나쳐버려도 좋을 일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다 두 분 덕이다. 두 분은 내가 읽은 어떤 책의 주인공들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 책에서 만난 위인들은 그 나름의 가르침을 주지만, 곁에서 직접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 가르침에 비할 수 없다.


두 분은 바로 나의 참 스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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