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3편 : 함민복 시인의 '성선설'
- 성선설(性善說) -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6년)
<함께 나누기>
해마다 시를 배달할 때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시인이 바로 함민복, 올해도 마찬가집니다. 이 시인의 오늘을 있게 한 시를 찾았습니다. 바로 시인의 등단 잡지 [세계의문학](1988년)에 실린 작품 「성선설」입니다.
제가 처음 이 시인의 「성선설」과 「선천성 그리움」 이 둘을 만났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짧으면서도 강렬함을 준 시가 많지 않았기에. 그날부터 시인의 시는 제 가슴에 담겼습니다. 그리고 펴내는 시집마다 다 사 모았고. 읽고 감동과 전율을 느꼈고. 시 읽는 시간의 즐거움을 만끽했고...
'아포리즘'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잠언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잠언이 '지혜롭고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짧고 현명한 격언이나 속담을 말한다면, 아포리즘은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을 뜻합니다. 오늘 시는 아포리즘의 정의에 딱 들어맞습니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인간의 손가락이 열 개인 까닭을 한 손에 다섯 손가락 구조가 물건을 잡고 조작하는데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랍니다. 허나 시인에겐 다릅니다. 우리의 손가락이 열 개인 까닭을 어머니가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던 열 달과 연결시켰으니까요.
창조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지어낸다는 뜻인데, 시인이 만들어낸 창조를 특히 ‘시적 창조’라 합니다. 오늘 시에서 열 손가락의 의미를 새로 만들어냈으니 함민복 시인만의 시적 창조라 하겠지요.
아기는 뱃속에 담은 열 달의 은혜를 잊지 않고 헤아리기 위해 열 개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세상에 나옵니다. 이 표현 속에는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의 은혜를 기억하는 선한 동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어머니 앞에 악한 인간은 없고 선한 인간만 있다고 보아 시의 제목을 '성선설'로 지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이가 있다면, 이 시를 보여주면 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나 잊고 있던 사실을 운율감을 살리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담아내 잊혔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장르라고.
단 석 줄의 시. 요즘 긴 시, 특히 긴 산문시가 주류를 이루는 시단에서 너무 짧고 쉬워서 좀 낯설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록 석 줄이지만, 십 초 이내 읽고 쉬 이해되지만, 그때부터 이 시는 머릿속을 꽉 채워 생각날 때마다 우리를 일깨웁니다. 왜 신은 우리에게 손가락 열 개를 선사했느냐고.
성선설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중국 고전을 들춰 ‘맹자가 이러니저러니', ‘사단칠정이 어떻니’ 하는 글을 읽지 않아도 이처럼 확 끌어당기는 정의가 또 있을까요? 오늘 잠시 짬 내 열 손가락 하나하나 꼽으면서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해준 그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 함민복 시인(1962년생) : 충북 충주 출신으로 1988년 [세계의문학] 통해 등단.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도전기공고로 진학, 졸업 후 취직한 월성원자력에선 건강이 좋지 못해 퇴사한 뒤 그때 모은 돈으로 서라벌예대 문창과 진학.
워낙 가난하여 결혼했다간 아내 고생만 시키겠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당시 자신의 시 강좌에 열심히 듣던 동갑인 천사 같은 여인을 만나 2011년 나이 50세에 결혼하여, 현재 강화군 길상면 초지인삼센터 제5호 ‘길상이네’란 상호의 인삼판매점을 아내와 함께 경영.
(시인 소개는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라 지금과 다를 수 있음)
*. 오늘부터 시 큰 제목을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에서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으로 바꿉니다. 사실 이 용어는 이미 다른 곳에 그렇게 써 왔기에 통일하려는 의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