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70)
여름이 끝날 즈음이면 우리 집에선 누런 결실 둘을 거둬들인다.
심고 난 뒤 내팽개쳐 둔 호박을 언덕 위아래로 샅샅이 훑는다. 그냥 놔두면 썩으니까. 다음으로 거둬들일 품목은 누런 오이 즉 ‘노각’이다. 이는 샅샅이 훑지 않아도 눈에 잘 띄니 바로 따면 된다.
그런데 노각을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일반오이를 따지 않고 그냥 두면 누렇게 변하는데 이를 노각이라 하나 아니다. 노각오이는 토종오이(조선오이)의 한 종류로, 자라면서 녹색이 이내 없어져 누렇게 변하고 통통 해지는 오이를 가리킨다.
여름 내내 우리 밥상에는 오이냉국이 빠질 새가 없었다. 워낙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삼계탕 추어탕보다 더 찾는다. 그래서 해마다 일반오이 세 그루 먼저 심고, 노각 두 그루는 나중 심는다. 다섯이면 둘 먹기엔 충분하고 아니 남아 이웃에 나눠줄 정도다.
일반오이 따기가 끝나자 다음으로 노각의 차례다. 노각은 주로 무침으로 먹는데, 우리 집에선 역시 냉국에 더 비중을 둔다. 일반오이와 노각으로 만든 냉국은 겉모습은 똑같으며 맛도 비슷하다. 허나 나처럼 오이냉국 전문가의 입에 오르면 단번에 차이를 안다.
일단 식감이 다르다. 씹으면 빛깔과 달리 그 아삭아삭함이 도드라져 텁텁한 입 안이 이내 상큼해진다. 나는 거기에 노각의 맛을 하나 더 보탠다. 바로 '깊은 맛'. 사골을 짧은 시간 우려내도 긴 시간 우려낸 것과 빛깔은 차이 없으나 깊은 맛은 확연히 다르듯이.
요즘 노각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칼슘과 섬유질이 많아 온갖 독(?)에 찌든 우리 몸을 씻어 준다고 한다나. 게다가 피부 노화까지 막아주고, 골다공증과 변비에도 효과적이다 하니 이렇게 이쁜 채소가 어디 있을까 싶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노각처럼 누렇게(?) 뜬다. 얼굴빛이 바래고, 피부가 늘어지고, 생기도 줄어든다. 오이에 비유하면 노각빛이 된다. 다만 노각오이는 깊은 맛을 지니는데 ‘사람 노각’ 가운데 깊은 맛을 지닌 이는 보기 드물다.
‘맛있는 사람 노각’이 참 드물다. 이전에는 깊이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 노각’이 더러 있었는데 말이다. 어떤 이가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이 가신 뒤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스개를 하던데, 그 말을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으니.
40년 전쯤 부산 모 여중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우리 반 아이가 가출했다가 돌아온 뒤 다시 가출을 했다. 담임이니까 나름대로 애써 찾아다니다 포기하고 퇴학 처리하려 했을 때다. 서류를 제출하자 나보다 스무 살 더 많던 학생주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남자아이들은 가출했다는 사실이 어떤 경우엔 훈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허나 여학생에게 가출은 여자로서의 끝입니다. 걔들의 종착역이 뻔하지 않습니까? 우리 한 번만 더 찾아봅시다.”
충격이었다. 학부모가 포기하고, 담임이 포기하면, 학생주임은 그냥 행정처리만 하면 된다. 나는 그분에 이끌려(?) 그 애를 이틀 더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어두운(?) 곳에 머물던 애를 간신히 찾아냈다.
(그 애의 장래가 어떻게 풀렸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학생주임의 따뜻함으로 하여 지금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분은 단순히 학생주임(당시 아이들 용어로 ‘학주’)이 아니다. 내게는 아름다운 노각이 된 분이셨다. 어쩌면 내가 이만큼이나마 큰 잘못 없이 학교를 떠날 수 있었음도 젊은 교사에게 교사의 본질을 가르친 그분의 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 어떤가, ‘노각’의 나이에 든 사람의 수는 그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런데 ‘노각’의 위치에 이른 사람은 한참 적어 보인다. ‘노각’을 흔히 쓰는 단어로 바꾸면 ‘원로’가 되리라.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 있다.
"원로 노릇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 많은데, 진짜 원로는 없다. 정말 원로가 꼭 필요한 이 시기에 그런 사람이 드물다"
노각을 '원로' 대신 '어른' '스승' 등의 말로 바꿔 쓰도 되리라. 지금 우리 사회에 노각처럼 깊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
노각 닮은 사람은,
단지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아니라,
이쪽저쪽 편 가르기에 바쁜 사람이 아니라,
TV 등에 얼굴 알리기에 서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말만 ‘함께’ 일뿐, 행동은 ‘따로’인 사람이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 웃음 짓게 하는,
절로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겸손하면서도 깊은 학식과 사상을 지닌,
좌파 우파로 갈라진 우리 사회를 하나로 모으는,
나만을 아는 이에게 ‘함께함’의 바이러스를 옮겨주는,
우리 사회의 병든 영혼에 노각처럼 건강한 영양제 주사를 놓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노각 닮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필요하다. ‘노각’ 닮은 그 사람이 꼭.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