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한 소통(457)

제457편 :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황지우 시인 편 ♡



- 거룩한 식사 -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은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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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기>

황지우 시인의 시를 검색하다 문득 시인의 출신지를 보았습니다. 전남 해남군. 또 해남 출신 시인? 얼마 전 고정희 시인을 소개할 때도 해남 출신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제가 좋아하는 김남주 시인도 해남 사람이군요.
저번 고정희 시인의 시에 한 분이 이런 댓글 달았습니다. 전라도 시인을 좋아하느냐고? 특별히 전라도라 하여 좋아하진 않은데 우연히 그리된 것 같습니다. 다만 거기 사람들이 남종화, 남도창, 판소리 등의 예술전통에다 동학으로 이어진 저항 의지가 예술 곳곳에 배여 시심(詩心)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하는.

오늘 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많이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미 아시는 분 많겠지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젊어서 혼자 먹는 밥은 배고파서 먹는 밥이고 늙어서 혼자 먹는 밥은 서러워서 먹는 밥이라고. 그리 보면 혼자 먹는 밥은 거룩할 수 없습니다. 배고픔도 서러움도 거룩함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그렇지만 시인은 '거룩한 밥'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요? 아마도 '먹는다'는 일 자체를 거룩하다 했을 것 같습니다.

예전 인사말 가운데 어른들이 젊은 사람 보고 만나면 하는 인사가 “밥 뭇나?”였고, 젊은이들은 “진지 잡수셨습니까?”였습니다. 먹을 게 없어 굶주려야 할 때가 많아 안부를 겸해 묻는 말이기도 하지만, 먹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담았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어느 날 들른 식당에서 화자는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는 광경을 봅니다. 그 순간 화자의 가슴에 뭔가 ‘울컥’ 치밀어 오릅니다. 특히 그는 덩치는 山만 한데 배를 채울 밥 대신 분식집 메뉴를 가리고 등 돌린 채 앉아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 순간,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가난한 시절에는 그랬지요, 양푼에 담긴 식은 밥이라도 한 숟가락 더 먹고파 형제끼리 숟갈 싸움을 자주 했으니까요. 그 아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화자는 가난에 찌든 나이 든 사내를 보는 순간 바로 자신의 모습과 동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 주는 /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배고픈 사람에게 한 끼 밥보다 더 소중하고 거룩한 일은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한 끼 밥을 주는 사람보다 더 고마운 사람은 없습니다. 배고플 때는 이념도 철학도 행복도 불행도 삶의 진리도 다 사라집니다. 오직 ‘밥’만 남을 뿐 다른 것은 뒤로 밀려납니다.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찬밥과 더운 목숨의 냉온(冷溫) 감각에서 오는 절묘한 대비. 이 대비되는 이미지를 통해 밥 먹는 행위의 신성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 그나마 덜 서러우려면 식탁에 머리 맞댈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나이 든 사내에게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더욱 눈물겨울 수밖에요.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은 자들 /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아직도 파고다공원(탑골공원) 뒤편 순댓집에 가면 혼자서 국밥을 드시는 어르신들이 꽤나 됩니다. 국밥의 국물과 함께 서러움과 외로움의 숟가락을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을 보면 그저 안쓰러움만 밀려올 뿐.
제 주변 요양보호사 하시는 분들이 그러시더군요. 어르신들은 병마도 가난도 힘들지만 외로움이 더 힘든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나이 든 이들이 혼자 식사할 때 함께 밥숟갈 들어줄 사람이 되어주면 어떨까 하는 내용의 글을 오래전에 쓴 적 있습니다.

지금이야 혼자 밥 먹는 일이 흔하고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나이 들면 혼자라는 것이 왠지 외롭고 쓸쓸하고 눈물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혼밥하는 노인네를 보면서 가난했지만 가족들이 함께 모여 밥상에서 숟가락 싸움하며 밥을 먹던 그 시절의 추억이 아련히 떠올라 썼을지도...

요즘 저는 외동읍 입실리에 있는 OO순두부 식당을 홀로 찾을 때가 종종입니다. 파크골프 치고 내려오면 가까운 곳이거든요. 대부분 제조업 젊은 일꾼들이 찾는 곳인데, 혹 저를 보고 자기 아버지의 쓸쓸함을 본 양 울컥 하면 어쩌지요. 아 그곳 순두부가 참 맛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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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지우 시인(1952년생, 본명 '황재우') : 전남 해남 출신으로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여 1980년대 한국 현대시의 전성기를 이끈 시인이라 평가받음.

시인은 1973년 유신정권에 반대해 가담한 혐의로 수감되었고, 1980년 봄에는 또 5.18 민주화운동 가담으로 구속된 후 서울대에서 제적됨. 출옥 후 학업을 이어 1994년 한신대 문창과 교수를 시작으로 1997년에 한예종 교수로, 2006~2009년 동안 한예종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시인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은지라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첫째 사진은 식사 때마다 죽은 아내 사진을 펼쳐놓고 음식 먹는 90살 된 노인인데 [SBS뉴스(2017. 10. 23)]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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