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을 쌓으며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71)

* 돌담을 쌓으며 *



퇴직 두 해 전이든가, 나보다 세 살 어린 형 아우 하며 지내는 초등학교 선생님과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그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사석에선 선생님이 아니라 ‘형’이었다. 교사끼리 이런 호칭을 주고받으면 아주 각별한 사이라는 뜻.

둘 다 직업이 교사이니 주로 학교 얘기. 즉 선생님과 아이들에 관한 내용이 주류였다. 그런데 소주 한 병쯤 비어냈을까, 그가 요즘 스트레스받고 있다면서 얘기를 꺼냈다.


“형 요즘 내가 가장 스트레스받는 일이 뭔 줄 아시유?”

“뭔데?”

“학년실에 있기가 짜증 나오.”

“아니 왜?”


70-1.png (며칠 동안 노력 끝에 완성한 돌담)



그가 꺼낸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학년실에 남자 교사라곤 그 혼자고 나머지는 모두 여자, 아니 젊은 여선생님이 대부분이라 했다. 문제는 선생님들이 수업 마치고 학년실에 들어서자마자 교과서를 던지다시피 하며 꺼내는 말이, “아, 나 돌덩이들 때문에 미치겠어요!” 한단다.

애들이 공부를 못한다는 뜻이니 그 정도야 나도 가끔 쓰는 말 아닌가.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말이 걸렸다. 한 선생님이 ‘돌대가리’라는 용어를 꺼내는 순간 여기저기서 돌대가리에 관한 얘기가 쏟아졌다니까. 마치 누구네 반이 더 돌대가리 반인가를 겨루는 경연대회처럼.


짐작이 갔다. 요즘 임용시험 합격해 교사되려면 고교 전교 석차 10위 이내여야 한다든가. 다시 말하면 반에서 1등 하는 능력자들이어야 한다. 그런데 가르치는 학급에는 어떤가, 1등은 단 한 명뿐 나머지는 그보다 못한 아이들이다. 그나마 상위권 아이들은 괜찮으나 중하위권 아이들을 가르치려니 열불이 나 못 견디겠다는 말일 터.


70-2.png (빛깔이 고루 섞여야 이쁜 돌담이 됨)



요즘 돌담을 쌓는다. 전에 만든 연못을 다시 메꿔야만 하는 일이 생겨 한 달 동안 애쓴 공도 헛되게 연못을 파묻고 잔디를 다시 심었다. 거기까지는 땀 흘린 공이 아까우나 어쩔 수 없는 일. 문제는 연못과 꽃동산을 두른 돌들이 남았다.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이쁜 돌들이다.

궁리하다가 언덕 쪽으로 확 트인 곳에 돌담 쌓기로 했다. 그곳은 어른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고, 손녀 둘은 여자애라서 신경 안 써도 된다. 헌데 만 두 살짜리 손자가 사내애라서 그런지 참 별나다. 요즘 하는 일이 거꾸로 미끄럼틀 오르내리기와 점프라 한다.

며느리가 보내는 페이스톡을 보면 처음엔 소파 위에서 뛰어내리더니 이젠 식탁 위에 올라가 뛰어내린다. 그보다 더 높은 곳도 서슴지 않고 뛰어내린다. 그런 애니 우리 집에 오면 어디로 뛰어내릴지 몰라 오기 전에 돌담 쌓기로 했다.


나는 무엇이든 만들 줄은 안다. 그런데 모양을 못 낸다. 아내도 그 점을 걱정하는데 전문가에게 맡기려니 100만 원쯤 든다 하니 별 뾰족한 수가 없다.

(하루에 다 끝내려면 세 사람이 필요한데 인건비가 2/3 넘는다니)

손수 하면 있는 돌에다 잔디밭 꾸미려고 사놓은 모래 반 차(1/2 톤)가 있으니 시멘트만 사면 될 터. 그러면 비용 5만 원으로 끝이다.


70-3.png (고수는 이렇게 쌓아도 멋지다)



돌담을 쌓기 전에 유튜브를 보면서 쌓는 방법을 익혔다. 그 가운데 내가 택한 방법은 양쪽에 돌을 쌓아 올리면서 가운데 시멘트를 붓는 방식. 시멘트가 굳으면서 바깥쪽 돌과 안쪽 돌을 껴안아 단단해지니 아마추어가 해도 무너질 염려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돌담을 쌓으려면 재료인 돌이 가장 중요하다. 돌은 블록이나 벽돌처럼 ‘각’ 지게 생기지 않아 사각형, 삼각형, 원형 등 가지가지. 아니 그렇게라도 형태가 분명하면 좋은데 부정형의 돌이 훨씬 많다. 게다가 작은 돌 큰 돌, 짧은 것 긴 돌, 길쭉한 돌 옴팡진 돌, 매끈한 돌 휘어진 돌...



요즘 ‘라떼는 말이야!’가 유행이라 한다. 그 말을 인용한다면 라떼는 교사 되기가 아주 쉬웠다. 혹 반론을 꺼낼 분들을 위해 한 마디 덧붙인다. 나이가 드니 아주 가끔 새내기 선생님들 모인 자리에서 강의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꺼내는 서두는,

“저는 '라도 교사'입니다. 여러분은 '만이 교사'이고. ‘라도 교사’가 ‘만이 교사’를 앞에 두고 뭔가 얘기하기엔 좀 쑥스럽지만...” 하며 시작한다.


70-4.jpg (다음에 이런 돌담을 쌓고 싶다)



내 나이 또래에 교직에 근무하다 오신 분들이 이 글 읽으면 기분 나쁠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하다 하다 안 되면 교사<라도> 하자’는 뜻에서 붙인 말이다. 요즘은 ‘교사<만이> 나의 살길이다’ 하여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쟁취한 직업이니 '만이'교사가 아닌가.

정말 교사 되기 아주 쉬웠다. 내가 처음 (사립) 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세 군데 학교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곳을 골랐으니 말이다. 그렇게 쉽게 들어갔는데 몇 년 있다 보니 어려워지더니 십 년이 지나면서 최고의 인기 직업이 되었다. (10년 후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늘 고맙게 여긴다)



돌 쌓아나가면서 한 가지 배웠다. 큰 돌만, 굵은 돌만, 반듯한 돌만, 모양이 예쁜 돌만 돌담 쌓기에 필요하진 않다는 점. 아래위 돌과 옆 돌과의 짜맞춤을 위해 적절히 섞어 돌을 놓아야 한다. 작은 삼각형이 필요하다면 그 돌 아니면 아무리 이쁜 돌도 안 된다.

또 한쪽이 너무 솟으면 안 되니 깎거나 낮은 돌로 바꿔야 한다. 아니면 반대로 다른 쪽을 높이도록 돌을 괸다든지. 어떤 땐 흰 돌만 있으면 좀 그러니 거기에 보랏빛 돌이나 붉은빛 도는 돌도 끼워 넣어야 한다.

아무리 예쁜 돌이라도 같은 모양, 같은 크기, 같은 빛깔, 같은 무늬로만 쌓으면 이내 싫증 난다. 적절한 조화, 그래 어울림이 정말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모양 안 나고 무너질까 불안하기까지 하다.


70-5.jpg (돌담은 집과 어우러질 때 가장 이쁨)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상대평가 사회에선 어차피 극소수일 터. 한둘 뿐이잖는가. 허나 어떤 아이는 바이올린 연주에, 어떤 아이는 달리기에, 어떤 아이는 그림 그리기에, 또 어떤 아이는... 각 방면에 재주가 따로 있다.

뿐이랴, 개미 지렁이 같은 곤충 관찰에 열심인 아이, 어른들에게 인사 잘하는 아이, 또 지금은 좀 미흡하나 나중에 크게 될지도 모를 아이. 이렇게 얼마나 많은가. 함에도 우린 오직 공부 잘하는 아이만 칭찬해준다. 돌대가리는 대우받지 못한다.

여러 돌이 섞여 서로를 엮어 견고히 물고 있을 때 돌담은 더 모양 나고 튼튼해진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여러 재능이 섞여야 튼튼한 사회가 된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만 모인 집단,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여러 돌이 섞여 더 이뻐 보입니다. 제 눈에만 그런가요?)


일주일 가까이 애쓴 덕인지 아내가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하는 말,

“여태 한 일 가운데 가장 모양 나오.”

이 정도면 대성공이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였다.

“앞으로 돌담 쌓기 알바 다녀야겠다. 일당 10만 원 받는 조수로.”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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