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8편 : 오탁번 시인의 '잠지'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오탁번 시인 편 ♡
- 잠지 -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
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옆집에 불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 웃는다.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운 밥 얻어먹겠네”
- [벙어리장갑](2002년)
<함께 나누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를 잘 쓰는 시인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러 갈래로 나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를 쓰는 시인은?’ 하면 일치합니다. 알려진 시 몇 편만 대면 누군지 다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폭설」 「굴비」 「해피버스데이」 하면 떠오르는 분, 바로 오탁번 시인.
그분의 평소 주장입니다. “시를 시답게 쓸 필요는 없다. 시는 시답지 않게 써야 시다워진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생전에 '시인이 될' 또는 '시를 가르칠 사람'을 교육하는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님께서. 참 대단하지요.
개구쟁이 시절 머스마들끼리 모이면 곧잘 ‘쉬 시합’을 하곤 했습니다. 누가 가장 오래, 그리고 멀리 가는가 하는.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지만. 이 오줌 누기 시합에선 규칙이 따로 있습니다. 모르고 미리 눴든 억지로 참고 있었든 그 순간 눈 오줌빨로 판가름했다는 점.
한 꼬마도 빠짐없이 책보를 다 내던지고 고추를 꺼냅니다. 한 줄로 죽 써 시작과 동시에 쉬를 합니다. 풀밭이든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딴 곳이든. 가끔 목표를 정하기도 하지요. 탱자 울타리 앞이라면 저기 탱자 맞추기로, 마침 돌담 타고 올라가는 민달팽이가 있으면 그 녀석은 죽을 맛이겠지만.
학교가 파하면 머스마들은 집으로 가면서 갖은 놀이를 다 합니다. 그게 요즘 말로 하면 당시의 '루틴'이었듯. 심지어 ‘방구내기’도 했지요. 지금은 아무 때나 방귀 뀌는 게 쉽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먹는 게 소화 잘 돼선지 뀐다면 뀌었지요. 우지직 빵 빵 빵~ 뽀옹~ 뽀옹~ 뿌웅~ 뿌웅~ 삐웅~ 피익~ 픽~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발 디디며 들어갑니다.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함께 나란히 서 쉬를 했습니다. 당연히 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갈 수밖에요. 세상에! 아빠와 오줌빨 내기를 하다니. 그래서 동심.
"옆집에 불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과장법 사용이 절묘합니다. 아무리 오줌빨이 세도 불나면 불을 못 끄고, 먼지 묻은 차를 씻어주지 못합니다. 이런 표현을 어디서 얻었을까요? 혹 어느 초등학생 동시를 읽고 힌트를 얻었을까?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듭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그쳤으면 재미있고 순수하지만 이 시는 그저 그런 평범한 동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시를 시답게 만든 마지막 연이 없었다면.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 웃는다 /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운 밥 얻어먹겠네”
이 시행이 이 시를 시답게 만들긴 하나 한편 동시가 이래도 되냐 하는 비판도 가능하게 만듭니다. 왜냐면 어른들이야 씩 웃겠지만 아이들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또 가르치는 선생님 입장이라면 어떻게 풀이해 줄까요?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하들들 마시라,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읽고, 어른은 어른대로 읽으면 그뿐. 잠지가 크면 따스운 밥 얻어먹는단 고차원적 화두를 물고 늘어질 사람은 아마도 없을 터.
시인은 나이 들었어도 동심의 세계에 노닙니다. 아직도 다 안 자란 오탁번 어린이가 분명합니다. 가끔은 시인처럼 말랑말랑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딱딱합니다. 세상이 딱딱하다고 사람도 딱딱해선 안 됩니다.
#. 오탁번 시인(1943년 ~ 2023년) : 충북 제천 출신으로 1966년 [동아일보]를 통해 동화로, 1967년 [중앙일보]를 통해 시로, 1969년 [대한일보]를 통해 소설로 등단. 1998년 시 전문 계간지 [시안(詩眼)]을 창간했고, 2008∼2010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으며, 2020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고,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봉직하다가 퇴직.
부인인 김은자 (전 한림대) 교수도 시인으로 활동했으니 보기 드문 부부 시인임.
(시인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었는지라 실제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첫째 이미지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고, 둘째는 [한국일보](2021.5.8)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