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를 구입하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72)

* 도끼를 구입하다 *



오랜만에 ‘양남장’에 갔다. 늘 시간 나면 가야지 하면서도 뜸만 들이다가 ‘다음’에로 미뤄뒀던 터. 아니 그보다 산골로 옮긴 뒤 어떻게 사는가 궁금한지 손님들이 주말마다 밀려들던 터라 짬 내기 어려웠다고 해야 하나.

아마 ‘입실장’ 같았으면 오후에 가도 되나 양남장은 아침에 반짝 섰다가 오전 10시 넘으면 파장이 된다. 그러기에 다방(6시부터)도, 농협(7시부터)도, 약국(8시부터)도 아침 일찍 문을 연다. 면사무소도 일찍 여는가 했더니 거기는 정상대로 연다고 한다.



장에는 사려는 물건이 있어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마실 삼아 갈 때도 있다. 말 그대로 장이 서니까. 가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사고 없으면 돌아오면 그만. 말은 이래도 장에 간 이상 무엇이든 사게 마련.

오늘 장에 간 목적은 저번에 아내가 사 온 ‘방게(작은 게의 하나)’를 아주 맛있게 먹었던지라 그게 나왔으면 좀 더 많이 구입하려 했다. 별다른 양념 없이 조린 방게는 그냥 씹어 먹어도 껍질이 얇아 빠드득 소리를 내며 입속에서 부서진다. 그 부숴 먹은 재미가 좋아 일부러 힘껏 깨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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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로부터 치아 하나만은 아주 잘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전날에 개상어회를 먹을 정도로 이가 좋았다. 좋은 유전자 덕인지 이가 좋아 아직 충치 앓은 적이 기억 안 날 정도다. 이가 건강하면 단단한 게 씹고 싶다.

그런데 그날은 우리가 오기 전에 다 팔렸는지 아니면 방게가 아예 나오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하다 농기구 파는 가게에 이르러 눈이 머물렀다. 바로 도끼 한 자루 때문이다.


마침 아내도 호미가 필요하다고 고르는 틈에 다른 걸 보는 척하며 곁눈질로 그 도끼를 살펴보았다. 도끼는 새로 만든 것이라기보다 누군가 한동안 쓰다가 갖다 놓은 듯 녹이 슬고 좀 낡고 투박해 보였다.

설마 새것 파는 곳에 오래된 중고를 갖다 놓았으랴 하는 생각에 자주 눈길이 갔다. 내 눈길이 거기 자주 머무는 걸 눈치챘는지 주인이 다가왔다. 그 도끼는 삼 개월 전에 자기가 직접 만든 거라 했다. 미심쩍어하는 모습 들키지 않으려 한 덕인지 주인이 말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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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모든 농기구를 다 직접 자기가 만들어 팔았는데 이젠 수지가 맞지 않아 공장에서 떼내어 도매로 사 와 판다고 했다. 대신에 그 도끼만은 자기가 예전 만들다 둔 걸 어쩔까 하다가 오랜만에 풍로를 직접 돌려 해머로 수십 번 더 쳐 벼르고 별러 다듬은 거라나.

설마 하면서도 저기 날이 바짝 선 도끼들과 어떻게 다르냐고 했더니,

“쇳물을 주형에 넣어 바로 빼낸 도끼나 기계로 대량 찍어내는 도끼는 겉으로는 표 안 나지만 쇠가 물러 좋지 않습니다. 큰 나무는 잘 넘어가지 않는 데다 또 날이 쉬 무뎌지고, 숫돌로 갈아도 날이 잘 서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도끼는요?” 하는 말에,

“이건 쓰다가 놔두면 녹이 스는 건 마찬가지지만 다시 도끼질하면 금방 없어지며, 쇠가 단단하고 결이 좋아 나무를 손쉽게 가를 수 있습니다. 숫돌로 갈면 날이 금방 서는 데다 또 자루도 일부러 산에 가 나무 중 가장 단단하다는 물푸레나무를 달았습니다.” 하는 거였다.

요즘 하도 번듯하게 말하며 남을 속이려는 사람 많다기에 이 장사치도 그러려니 하면서도 어쩐지 신뢰감이 생겨 돈을 지불했다. 그러자,

“요새는 이렇게 만들면 손이 너무 가는 데다 물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만들지 않으려고 해 이런 제품을 다시는 보기 어려울 겁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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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예전 만들다 그만둔 도끼를 버리지 않고 다시 다듬은 건 옛날 손에 익은 기술을 잊어버릴까 봐 솜씨 부려본 거라 했다. 만약 내가 그 도끼에 눈길을 오래 주지 않았더라면 권하지 않았을 거란다.

(사실 나는 중고를 왜 거기 내놓았나 하여 눈을 줬는데, 그는 진가를 아는 사람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그냥 건네주는 게 아니라 숫돌을 꺼내 날이 시퍼렇게 서도록 갈아줬다. 뿐만 아니라 자루도 망치로 쳐서 더욱 단단히 들어가도록 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데는 없는지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더니 아주 공손한 자세로 건네주는 거였다.



거기다 신문지로 몇 겹이나 싸주며 잘 써 달라는 말을 덧붙일 때의 표정은 마치 자기네 귀중한 물건을 남에게 선물하는 듯 넘기는 모습이라, 만약 그 장사치가 내게 연극을 한 것이라면 배우의 소질이 대단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횡재를 한 셈이다. 비록 다른 것보다 오천 원은 더 줬지만 말이다.

아주 예전에는 장터나 대장간에서 ‘쟁이’들의 고집스럽고 듬직한 신화 같은 얘기들을 곧잘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신화를 새천년이 시작된 지 오 년이 더 지난 시골장에서 직접 경험했으니 이런 횡재가 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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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마침 비가 많이 와 집안이 꼽꼽하여 불을 지폈다. 우리 집 보일러는 나무 겸용 보일러라 석유 대신 나무로도 데울 수 있어 장에서 사 온 도끼로 장작을 팼다. 아직 도끼질 솜씨가 모자라지만 그래도 단 번에 쪼개지는 나무를 보며 다시금 그 도끼 장사에게, 아니 '장이'에게 마음으로나마 감사를 드렸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그리고 도끼 사진 가운데 맨 마지막 사진만 글 속에 나오는 17년 된 도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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