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69)
글의 제목부터 해명하고 가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음 말을 다 알 것이다. ‘죽으려 하면 살 것이나,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당연히 이 말은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라고 그렇게 알고 있다. 헌데 정확히 따지면 아니다.
이 말이 [손자병법]과 쌍벽을 이루는 [오자병법]에 나오는 구절에서 한 단어만 바꿨다(必 → 幸)는 사실을 아시는가? 즉 [오자병법]에서는 ‘必死則生 必生則死’가 아니라 ‘必死則生 幸生則死 (필사즉생 행생즉사)’였다.
그 뜻은 ‘죽으려 하면 살 것이나, 살려고 꾀를 부리면 죽을 것이다.’ 따라서 누가 봐도 장군의 순수 창작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장군의 삶과 관련지으면 그렇게 잘 들어맞을 수 없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분의 말로 기억하고 있을 수밖에.
오늘 글의 제목 ‘죽어야 산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나 그 뜻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먼저 밝힌다.
요즘 우리 마당을 아주 화려하게 장식하는 예쁜 꽃이 하나 있다. 바로 ‘부레옥잠화’다. 들통 세 개로 만든 작은 연못 한 곳에 살포시 핀 연푸른 꽃. 옆 통에는 수련이 담겨 있지만 수련꽃 필 적보다 부레옥잠화 필 때가 왠지 기분이 더 좋다.
부레옥잠은 본디 사철 따뜻한 엘살바도르나 온두라스 같은 중미(中美) 지역에 서식하던 수생식물이었다. 지금은 중미라 해도 이상기후 때문에 0° 이하로 떨어질 때가 있다지만 부레옥잠이 자라던 당시엔 영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이 부레옥잠은 꽃이 예쁜 데다 수질 정화작용도 한다는 이점에 관상용을 겸한 꽃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헌데 얼마 뒤 사시사철 따뜻한 지역에서는 최악의 수입 외래종으로 꼽힐 정도로 그 피해가 심각해졌다.
이 녀석은 수면 위에 살며 수중으로 내려가는 빛을 차단시켜 다른 수생식물이나 물고기의 번식을 막는다. 뉴스에서 보니 아프리카 최대 호수인 빅토리아호가 부레옥잠에 덮여 그 호수 고유 수생동식물 75%를 멸종 위기 상태로 만들었다 하니...
그런데 다른 나라에선 암종인 부레옥잠이 우리나라로 들어와서는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즉 뛰어난 수질 정화 능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부레옥잠은 납, 수은 등을 비롯한 중금속을 흡수할뿐더러 다량의 질소와 인을 흡입해 산업폐수를 정화시키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우리 마당 연못에 들통 셋이 있는데, 둘은 수련이 차지하고 나머지 하나에 부레옥잠이 자란다. 세 들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확 난다. 수련이 자라는 통은 물을 자주 갈아주지 않으면 금세 이끼가 끼고 빛깔도 탁하다.
그런데 부레옥잠이 자라는 들통은 물을 갈아주지 않아도 새 물을 넣은 듯 언제나 맑고 투명하다. 거기다 꽃은 얼마나 맑은 빛인가. 일단 눈을 시원하게 하는 연푸른 빛. 봐도 봐도 싫증 나지 않는 빛깔이다.
부레옥잠의 번식력은 상상 이상이다. 오월 초에 한 송이만 사다 놓으면 두 달쯤 뒤면 통에 가득 찬다. 만약 고인 물이 아니고 물이 줄곧 흐르는 연못 형태라면 이보다 세 배쯤 더 많이 번식한다.
예전 물 빠지는 연못에 갖다 놓았더니 얼마나 빨리 번지든지 아는 이들에게 분양해 주느라고 바빴다. 그때 수련, 어리연, 개구리밥, 마름 같은 수생식물은 자리를 찾지 못해 꽃 피울 엄두를 못 내었으니 그만큼 번식력이 강하다.
부레옥잠 위에 개구리와 잠자리만 살 판 났을 뿐 다른 종자는 살아남지를 못한다. 그러니 ‘생태교란종’이란 말이 확 와닿는다. 헌데 부레옥잠이 우리나라에선 생태교란종이 아닌 관상용으로 각광받는 이유가 있다. 바로 기후 때문이다.
부레옥잠은 영하로 떨어지면 금방 얼어 죽는다. 그러니 우리나라 어떤 호수나 강에도 겨울을 살아날 수 없다. 즉 겨울이 되면 죽으니 번식도 끝이다.
결국 ‘죽어야 산다’는 겨울이 되면 죽기 때문에 강이나 호수에 해를 끼치지 않고 고운 모습만 보여준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죽지 않아 애물단지가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선 죽어서 대접받는 식물이 된 셈이다.
그래서 죽어야 사는 꽃, 아니 '죽어서 사랑받는 꽃', 부레옥잠화가 되었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