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무' 이야기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80)

* 나무 이야기 *



<첫째 이야기 - ‘내나무’>



얼마 전 손녀 둘이 방학이라 놀러 왔을 때 큰애가 “할아버지 내 나무 어디 있어요?”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하여 되물었더니, 제가 몇 년 전에 손녀에게 ‘내 나무’를 심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합니다.

그 말에 ‘아차!’ 했습니다. 못 지킬 약속을 한 셈이니까요. 아니 지키려면 지킬 수 있는 약속이지만 사정상 그리 되었습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규태 씨가 쓴 수필로 ‘내 나무’ 관련 글이 나옵니다만 혹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덧붙이겠습니다.


예전엔 아이가 태어나면 기념 삼아 나무를 심었답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를,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소나무는 아들과 평생을 함께 하다가 나중에 죽을 때 관을 만들 나무로 썼고, 오동나무는 딸이 시집갈 때 장롱 등 혼수 재료로 썼답니다.

이런 사연을 지닌 나무이기에 우리 선조들은 나무와 아이의 운명을 동일시하여 ‘내 나무’라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자라다 병을 앓으면 ‘내 나무’를 찾아가 낫기를 빌었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내 나무'를 찾아가 큰절을 올리기도 했답니다.


80-1.png ('Canon Korea' 님의 페이스북에서)



'내 나무'의 가치와 풍습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 손녀가 태어났을 때 그리하려 했습니다. 우리 집은 마당이 넓어 심을 자리가 충분하거든요. 그런데 아내의 한 마디에 그만뒀습니다.

“아니 우리가 이 집에 영원히 산다면 몰라도 만약 팔고 떠나면 어떡해요?”

그렇습니다. 만약 집주인이 바뀌면 우리가 손주들을 위해 심어놓은 나무를 쓸모없다고 잘라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옛사람들처럼 나무에 영(靈)이 들어있다고 친다면 나무 잘림과 동시에 아이들 운명도 나빠진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심지 못했습니다.


‘내 나무’를 들먹인 김에 산림청에서 몇 년 전부터 ‘내 나무 갖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식목일 내 나무 한 그루씩 심자'란 슬로건 아래.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행사를 벌입니다. 25개 자치구를 통해 도로변 가로수를 내 나무로 입양하여 관리하는 ‘나무돌보미’를 모집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저는 한 가지 지자체의 장 또는 담당 공무원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시나 군에서 새로 공원 조성할 때 시 예산으로 조경수를 심으려 하지 말고 ‘내 나무 운동’으로 확보하는 방안을요.


80-2.png ([환경일보] 2021. 3. 18에서)



이를 테면 ㅇㅇ공원을 만들 때 거기 수많은 나무가 필요한데 시민들에게 기회를 줍니다. 즉 적당한 액수의 돈을 내면 '목우씨 네 내 나무’ 형태로. 그 공원이 존재하는 한 그 이름은 붙어 있을 테고, 아이들 역시 거기 가면 자기 가족 이름의 ‘내 나무’가 있으니 더욱 그 공원을 사랑할 테고.

(전국 상황을 몰라서 그러는데 이미 시행하고 있는 지자체도 있을 겁니다. 요즘 제가 생각하는 일은 남들도 알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둘째 이야기 - ‘관솔로 만든 탁자’>


얼마 전 목공을 하는 후배의 집에 놀러 갔더니 거실 한 복판에 아주 멋진 모양의 탁자가 놓여 있어 물었습니다.

“야, 이건 오래된 나무뿌리로 만든 것 같은데...”

“네 소나무 관솔 뿌리로 만든 탁자입니다.”

“소나무 뿌리가 이렇게 여러 갈래 얽히고설키기도 하는구나. 매끈한 것만 보았는데...”

“소나무가 탈 없이 자라면 저런 모양이 안 되는데, 가지가 부러지거나 나무가 잘리거나 하면 살려고 뿌리를 여러 곳으로 뻗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나무든 곧게 자라면 뿌리도 똑바로 뻗어나가는데, 자라는 중에 상처를 입으면 살려는 몸부림으로 뿌리를 여러 곳으로 뻗친다는 말. 그런 뒤 목공 하는 후배가 덧붙였습니다.

"곧게 뻗은 뿌리보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뿌리가 훨씬 더 생명력이 강해 비바람에 잘 버팁니다."


80-8.png (구글 이미지에서)


그러고 보니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맹그로브 나무’에 관한 얘기가 생각납니다. 맹그로브 나무는 아시다시피 열대 우림을 형성하는 중요한 자원입니다. 맹그로브 숲이 물고기 번식과 바다 수질 정화에 기여하는 바가 아주 크고, 최근에는 해일 피해를 막아준다는 연구도 나와 있으니까요.

열대우림에 사는 원주민들은 처음 맹그로브 나무가 올라올 때 일부러 가지를 자른다고 합니다. 가지를 쳐주면 뿌리가 여러 갈래로 뻗어 숲을 빨리 이룸은 물론 건강한 생태계를 이룬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으니까요.


결국 나무는 죽지 않을 정도로 상처 입거나 잘리지 않으면 오히려 건강한 나무로 자란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뿌리가 한 줄로 곧게 아래로 박힌 나무보다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간 나무가 비바람에 버티는 힘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80-7.jpg (맹그로브 숲)



상처 입어 여러 갈래로 뻗어 값진 탁자로 바뀐 나무뿌리를 보면서 문득 우리를 생각합니다. 거친 환경에서 자란 사람과 부모의 덕으로 유복하게 자란 사람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거칠게 자란 사람보다 외모 면에선 귀공자 귀공녀 태가 나 더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위기에서 누가 더 빨리 극복할지는 불을 보듯 환합니다. 굳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해라는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여러 번 주저앉아 본 사람은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한 반면, 한 번도 바닥까지 가보지 않는 사람은 넘어지면 잘 일어나지 못합니다. 바닥까지 가 본 사람은 알지요, 바닥엔 어둠만 있을 뿐이라 그곳을 벗어나 빛을 보려 몸부림칠 수밖에 없음을.


그 날은 소나무 관솔 탁자가 큰 의미로 다가온 하루가 되었습니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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