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99)
시골에서, 특히 산골에 가장 고약한 식물은 무엇일까요? 아마 시골에 한 번이라도 산 경험이 있는 이라면 즉시 떠올릴 겁니다. 바로 칡넝쿨. 이 녀석은 정말 고약합니다. 절대로 저 홀로 있지를 않고 다른 나무에 달라붙습니다. 아니 달라붙는 걸로 끝나지 않고 칭칭 감아 목을 조릅니다.
뽕나무, 감나무 같은 유실수는 물론 밭에까지 침범하여 농작물까지 감아 목을 조르는데, 그 목조르기 기술은 예전 프로레슬링에서 보던 ‘코브라 트위스트’를 연상케 합니다. 당연히 한 번 칡에 감긴 나무는 생장에 지장을 받아 그 해 열매 맺기를 포기해야 하며, 감긴 자리엔 굵게 패인 상처를 안게 됩니다.
문제는 이 녀석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뿌리를 찾아 없애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뿌리가 워낙 깊숙이 박혀 완전히 빼내기 힘듭니다. 뿐만 아니라, 한 자(30cm) 정도만 옆으로 나아가도 그 자리에 다시 뿌리를 내리니 원뿌리를 없앴다고 하여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우리 집 위치가 산 중턱이라 봄이면 작년에 칡덩굴이 솟은 어린 뿌리를 찾아 뽑아냅니다. 아무래도 다시 힘 받아 뻗으려면 시간이 걸리니 현재로선 그 방법이 유일합니다. 달내마을로 온 지 십 년이 넘었으니 녀석과 10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늘 진 쪽은 저였고. 이렇게 전쟁을 치르다 보니 적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퇴직하기 한 해 전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집 뒤 처음 찔레 가지가 몇 개 솟아나기에 가시에 찔릴까 그냥 뒀더니 이내 무리를 이뤄 밭을 형성하는 게 아닌가요. 그리고 바로 아래 어린칡(잎이 작고 연한 칡덩굴)의 순이 이제 막 나오고, 십여 미터나 되는 곳에 어른칡(잎이 넓고 단단한 칡덩굴)이 손을 뻗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칡을 제거하려다 군데군데 솟은 찔레에 찔릴까 봐 그만두었습니다.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오스트리아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떠올라서라기보다, 사람도 아프면 제 놈들도 아프지 않겠나 하며. 어디선가 식물도 아픔을 느낀다는 글을 읽었기에.
얼마 뒤 어린칡은 여전히 찔레 주위로만 돌 뿐 선뜻 가지에 넝쿨을 올려놓지 않는 모습이 마치 겁을 내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 사이 어른칡은 제법 가까이 다가왔고. 다시 며칠 더 지나자 어린칡은 그대로인데 어른칡이 찔레 위에 넝쿨을 걸쳤으나 한동안 쉽게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걸 보며 역시 ‘식물도 아픔을 느낀다는 그 학설이 맞구나.’ 했습니다. 사흘 뒤 어른칡이 두어 줄 넝쿨로 찔레를 덮자 묘한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요. 어른칡이 덮은 그 바로 위에 어린칡이 그걸 발판 삼아 나아가는.
처음에는 내가 예민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분명 찔레 위에 어린 덩굴이 바로 덮는 경우는 없었고, 넓은 덩굴이 덮은 그 위에 겹쳐짐을 확인했습니다. 별것 아닌,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 할 수 있습니다. 큰 녀석이 작은 녀석을 위해 희생이 되어주는 사실이. 그러나 고작 식물이 아닌가요, 식물이… 동물의 세계에서는 자기 종족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동물보다 훨씬 하등 생물인 칡이 그런 고급(?) 행동을 하다니…
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청소 담당구역이 교문 부근이라 아이들이 나오면 각자 맡은 구역으로 가 제대로 청소하는지 살펴보면 되었습니다. 편의상 각자 빗질할 자리를 지정해주었습니다. 갑돌이는 교문에서 첫째 은행나무까지, 을순이는 첫째 은행나무에서 셋째 은행나무까지 하는 식으로.
하루는 아이 하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 독감으로 결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자리는 청소할 아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마침 그 옆 아이가 빨리 끝냈기에 좀 도와 달라고 하니 대뜸 하는 말이, “왜 제가 해야 하는데요? 저는 제 구역 다했어요.”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네 친구가 오지 않았으니 네가 좀 희생하면 안 되겠니?” 했더니, “전 희생하기 싫어요.” 하고 딱 잘라버렸습니다. 한 대 쥐어박으려 하다가 그래도 마지막으로 제안했습니다. “그럼 선생님과 함께 해보자. ” 하며 빗자루를 쥐고 나섰으나 녀석은 쌩 하니 가버렸습니다.
화장장, 쓰레기 하치장, 치매노인 치료시설 등 소위 혐오시설이란 이름이 붙은 시설물이 꼭 필요함에도 그런 일이 내 사는 곳 근처에 세워진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 건립 결사반대”란 띠부터 머리에 두릅니다.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내가 사는 곳에서는 안 된다.’는 소위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입니다. 근본은 내가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뿐인가요, 어떤 땐 희생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열정 페이(熱情 Pay)’, 참 낱말 자체는 누가 만들었는지 잘 만들었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일한 만큼 돈을 받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줬다는 구실로 청년들에게 보수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주로 대기업 인턴이나 방송, 예·체능계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하니.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기업이나 기관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경험되니 적은 월급을 받아도 불만 가지지 마라, 그러니 너는 희생하라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희생(犧牲)은 ‘제사 때 쓰이는 살아있는 제물(짐승)을 바침’이란 뜻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 이익 등을 버림’으로 뜻이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다 압니다. 인간들은 그 뜻을 너무 잘 알아서 문제일까요, 힘을 가진 이들은 힘 약한 이를 희생 제물로 삼으려 들고, 또 다들 정작 희생이 필요할 때는 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마을에 눈이 와 길이 막힌다면 새벽에 일어나 혼자 눈 치울 정도의 희생은 하겠지만, 우리 마을 뒷산에 화장장이 들어온다면 머리띠를 매고 나설 테니까요. 그러니 앞으로 칡넝쿨을 볼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고작 경멸하여 마지않는 그 하찮은 칡넝쿨에게 말입니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습니다만,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