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4편 : 이상국 시인의 '여하튼 안녕'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이상국 시인 편 ♡
- 여하튼 안녕 -
어떤 여자가 밀고 가는 유모차에서 개가 근심스럽게 세상을 내다본다
*계사전에 이르길 겨우 봇짐이나 질 자가 수레를 타면 사방에 도둑이 들끓는다고 한다
골목의 개가 밤마다 열심히 짖는다
너무 애쓰지 마라
그냥 살면 된다
도연명은 쌀 몇 말 때문에 하급관리들에게 머리를 굽히기 싫어 *관인을 끌러놓고 전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생각이 짧은 것이다
저자에서 지키지 못한 졸이 전원에서 지켜질 리 없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나기를 전원에서 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세상에, 아직도 남의 땅을 빼앗는 나라가 있다니
거기다가 어떤 나라는 무기를 팔고
어떤 나라는 돈을 댄다
죽는 건 아름다운 청년들뿐
어떤 사람들은 그게 언젯적 일인데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나 하는 건 이제 지겹다고 한다
나치에게 당한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 가자에서 그 짓을 하고 있다
*갠지스강 가에 가득한 모래알만큼 그만큼의 갠지스강이 또 있다 한들
이번 나의 생은 이것으로 끝이다
-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2025년)
*. 계사전 : [주역]의 ‘계사전’으로, ‘겨우 ~한다’는 거기에 나오는 구절
*. 관인(官印) : 관리의 도장이란 뜻인데 여기선 ‘관직’을 비유함
*. 갠지스강 ~ 한들 :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
<함께 나누기>
제가 요즘 세상 뉴스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여럿이지만 특히 둘은 너무 심합니다. 하나는 트럼프 같은 인물이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까,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자행하는 비문명적 행패에 대해 미국과 서방이 어떻게 일방적으로 그쪽 편을 드느냐는 점.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이 사악한 세상에서 정상적인 것은 없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에서 ‘영원한’ 대신 ‘정상적’으로 낱말 하나 바꿈) 희한한 대통령이 여기나 저기나 나옴도, 독일인에게 무자비한 학살 당한 유태인이 가자지구에서 학살 저지름을 보며 세상에 정상적인 게 뭐 있을까 하고.
시로 들어갑니다.
“어떤 여자가 밀고 가는 유모차에서 개가 근심스럽게 세상을 내다본다”
엄청난 비틀기(풍자)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꼴을 보니 하도 기가 막힌지 개조차 세상을 근심스럽게 내다봅니다. 여기서 시인은 또 한 가지 비틀기를 깔아놓았습니다. 아기가 앉아 가야 할 유모차에 아기 대신 강아지가 타고 감을.
“계사전에 이르길 겨우 봇짐이나 질 자가 수레를 타면 사방에 도둑이 들끓는다고 한다”
대략 3,100년 전에 편찬된 [주역]에 나온 구절이 지금 이 시대에도 딱 들어맞으니 주역이 <사서삼경>의 하나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자기 그릇이 남보다 훨씬 크다고 느끼다가 자신의 왜소함을 깨닫게 되면 주눅이 들거나 아니면 심하게 오버한다는데...
“골목의 개가 밤마다 열심히 짖는다 / 너무 애쓰지 마라 / 그냥 살면 된다”
개가 다시 출연하지요. 사람과 개가 동일시됩니다. 개가 할일은 누군가 찾아오면 짖어야 합니다. 헌데 화자는 그렇게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그냥 그냥 살아라’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비틀기(풍자)로 보면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봐야 별수없더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4연에 나오는 하급관리에게 머리 굽히기 싫어 관직을 내놓고 전원으로 돌아간 도연명의 행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도연명은 그가 쓴 [도화원기]에서 '무릉도원'이란 이상향을 제시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건만)
다른 면에서 보면 선비로선 멋있는 행동인데 왜 비판했을까요? 화자는 바로 이율배반적 행동이 깔렸다고 봤습니다. 즉 만약 말단관리 아닌 고급관리가 했으면 그랬겠느냐고. 옳고 그름보다 신분의 차별에 주안점을 뒀기 때문에.
5연으로 가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침공한 러시아보다,
“어떤 나라는 무기를 팔고 / 어떤 나라는 돈을 댄다”는 이기적 세상 인심을 더 비판합니다. 어떻게 한창 젊은 청년들이 숱하게 죽어나가고 있는데 그걸 이용해 장사를 하느냐는 통렬한 지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언젯적 일인데 /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나 하는 건 이제 지겹다고 한다”
그렇지요. 가끔 세월호 얘기를 꺼내면 ‘야 아직도 그 얘기니, 인제 지겹지도 않니?’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날 그 배 탔다가 하늘로 간 어린 학생들의 부모님은 물론 함께 탔다가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비극이건만.
“갠지스강 가에 가득한 모래알만큼 그만큼의 갠지스강이 또 있다 한들”
[금강경]에 나오는 이 구절은 ‘인간의 작은 지혜나 상상력으로는 우주의 진리와 공덕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런 큰 가르침과 상관없이 시는 “이번 나의 생은 이것으로 끝이다”로 끝맺습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 풍부해도 세상 현실은 그걸 받아들일 만큼 평화롭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세상은 혼탁하건만 이 방송 저 방송 없이 '가요 경쟁 프로' 아니면 요리사들이 나와 진행하는 '요리 경연'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심각한 일은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노래나 부르고 맛있는 걸 실컷 먹으며 살자는 뜻은 아닌지...
‘카르페 디엠(Carpe Diem : 오늘을 붙잡아라)’대로 과거 돌아봄 없이 오늘만 붙잡으면 되고, ‘아모르 파티(Amor Fati : 네 운명을 사랑하라)’의 원뜻과 관계없이 라틴어 'Fati'를 영어 'party'로 알아 파티나 신나게 즐기며 살아야 하는지...
#. 이상국 시인(1946년생) :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오랫동안 설악산 아래 살며 불교잡지 [유심]지 주간과 [설악신문] 대표를 역임했으며, 한국작가회의 회장(2020. 2~ 2022.1)을 맡음.
(시인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은지라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첫째는 이스라엘의 가지지구 침공은 [VOA뉴스](2024.10. 2)에서, 둘째 먹방은 [뉴시스](2024. 10. 28]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