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00)
<들어가는 글>
오디가 익을 때는 오월 말에서 유월 말까지 한 달 간입니다. 그럼 제목과 지금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연재하고 있는 [산골일기] 제100화에 어울리는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문득 넉 달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2005년 이사 오던 해 5월 말에 「드디어 오디를 털다」란 제목으로 처음 글을 쓴 뒤, 해마다 오디 관련 비슷한 글을 썼으니 열댓 번쯤 될까요. 글 쓰는 이에게 ‘같은 내용의 글을 써선 안 된다’ 함은 법규나 마찬가지건만, 그럼에도 계속 쓰는 건 제가 사는 달내마을의 상징이 오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이곳에 살고 있음과 오디를 거두고 갈무리하는 일 계속함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담겨 있음입니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오디’는 소설에서나 들어봤음직한 이름이요, 혹 시골장터 들러도 눈앞에 보고도 뭔지 몰라했을 과일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을 다 다녀보지 못해 단언하진 못하나 단위면적 당 가장 많은 양의 오디를 생산하는 곳이 바로 우리 마을이 아닐까 합니다. 간단한 예로 우리 집 뽕나무 한 그루에서 300kg쯤 나오니 마을 전체 대략 서른 그루에서 나오는 양은 10,000kg 즉 10톤에 이르지 않을까요. 상주인구 이십 명 남짓한 마을에서 말입니다.
<본 글>
이 마을이 오디 마을이 됨엔 행정 착오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양남면과 양북면(지금은 '문무대왕면')에 누에를 키우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그러려면 뽕나무부터 심어야 한다. 당시 면에서 뽕나무 묘목을 나눠 줬는가 본데, 제대로 된 개량 뽕나무를 줬어야 했으나 토종 뽕나무(달리 '산뽕나무', '참뽕나무')를 심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개량은 뽕잎이 크고 널찍하나 토종은 개량의 1/3도 채 안 된다. 달리 말하면 개량에서 뽕잎을 따다 한 번 먹이면 될 걸 토종은 세 번이나 따 먹여야 했으니 결과가 어땠을까. 결국 힘이 너무 들어 포기한 누에 농사였다. 헌데 세월이 흐르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토종 뽕나무는 누에 먹이기엔 결점이 많지만 그 열매 ‘오디’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에 누에 먹여 명주를 얻는 수고를 하는 농가는 없다. (다만 경주시 양북면 두산리에 가면 '손명주 전시관'에서 누에와 누에고치와 명주실을 뽑아내는 과정을 볼 수 있을 뿐)
그 바람에 개량 뽕나무는 다 베어져 사라진 대신 참뽕나무만 살아남아 오디를 제공하니 반전도 이런 반전이 또 있을까. 게다가 이 오디 농사에는 특별히 손이 가지 않는다. 거름도 비료도 농약도 필요 없고 그저 떨어진 오디를 주우면 된다. 즉 여든 살 아흔 살 할머니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디 수확을 위한 준비 작업은 5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일단 바닥에 떨어지면 흙이 묻으니 망사(그물)부터 손질한다. 씻는 건 기본이고, 터진 곳을 찾아 일일이 깁는다. 다음 일은 그물을 깔기 위해 언덕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 이런 과정을 다 거친 뒤에야 비로소 그물을 깐다.
주로 시골 사람만 쓰는 속담에 '농사철이면 부지깽이도 곤두선다.’는 표현이 있다. 부지깽이는 아궁이 불 땔 때 쓰는 가느다란 막대기인데, 생명이 없는 그 녀석조차 신경 써 도와줘야 할 정도로 바쁘다는 말이다.
달내마을에서 부지깽이가 곤두설 적은 바로 오디를 딸 준비를 하는 이맘때부터다. 준비가 끝나면 오디 털기에 들어간다. 이때가 부지깽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오디는 일단 익어 떨어지기 시작하면 날마다 털고, 줍고, 가리고, 파는 과정을 빠뜨려선 안 된다. 하루라도 거르면 떨어진 오디에 온갖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다음 작업을 못하도록 만드니 이맘때는 어디 놀러 갈 생각 못한다.
달내마을 오디는 인기가 있다. 흔히 과일은 오래될수록 맛은 떨어지나 약성(藥性)은 높아진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 오디는 맛도 좋다. 맛 좋은 데다 다들 뽕나무가 100년쯤 되니 약성도 뛰어나 날것을 바로 믹서기에 갈아먹는다, 발효 효소를 담근다, 중탕집에 가 즙을 짠다, 이러니 인기가 장난 아니다.
‘오디’를 이 마을 어르신들은 ‘아들개’라 하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아들개란 말이 나오지 않으니 우리 마을에서만 쓰는 말인 듯하다. '아들개'란 이 지역 토속어가 오디보다 더 정겹게 들리는 걸 보면 나도 어느새 달내마을 사람이 다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오디!
우리 부부는 이 단어만 나오면 머리가 찌끈하다. 처음 한두 해는 즐거웠다. 우리 집 유일한 판매 농산물을 거둬들이니 얼마나 신이 났던가. 헌데 삼 년째 되던 해부터 “아이구, 오디 철이 또 왔다.” 하며 절레절레 머리부터 흔든다. 근 한 달을 오디에 매달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뽕나무에 올라가 흔든 뒤 바로 거둬들여야 한다. 아래로 떨어진 오디를 빨리 거두지 않으면 쉬 변질되고 말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워 담을 때도 워낙 부드러워서 손에 조금만 힘을 줘 잡아도 터지거나 짓무르고 만다. 그러면 상품으로 팔 수 없다.
뿐이랴, 오래 보관할 수도 없어 날마다 그때그때 다 처리해야 한다. 지체하면 할수록 제 값을 받을 수 없으니까. 이런 말을 마을 어르신들 계신 곳에선 하지 못한다. “아이구, 고깟 일이 무신 일이라고. 호리뺑뺑인데.” 하실 건 뻔한 일.
'호리뺑뺑이', 경상도에서 어떤 일을 수월하게 처리했거나 남이 한 일을 두고 무척 쉬워 보일 때 쓰는 말이다. 사실 그분들 입장에선 그럴 게다. 다른 농사에 비해 힘이 덜 들고, 게다가 수입도 짭짤하니... 허나 몸을 써 하는 일이라면 쩔쩔매는 우리 부부에겐 무척 힘에 부치는 일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이제 나무에는 올라가지 않는다. 나무 높이 10m에 언덕 높이 10m라 총 20m가 되니 사다리도 소용없다. 그냥 떨어지는 걸 주울 뿐이다. 고작 해야 대나무로 칠 뿐. 올라가 발로 가지를 굴리면 벚꽃잎 떨어지듯이 우르르 쏟아짐을 모르는 바 아니나 괜히 욕심부리다 떨어지면 최소 평생 불구, 아니면 하느님 앞에 바로 가야 한다.
그럼 별 할 일 없지 않느냐구? 아니다. 그물 위에 떨어진 오디를 거두었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게 아니다. 다시 고르는 작업을 해야 하니까. 뽕나무를 흔들거나 대나무로 치면 오디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뽕잎과 죽은 가지 등이 함께 떨어진다. 그걸 골라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아, 또다시 찾아온 오디의 계절!
그래도 올해는 즐겁게 일하려 한다. 백수가 이마저 힘들다고 하면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웃을 것인가.
"이 호리뺑뺑이 일을!"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