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신선놀음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12)

* 아내의 신선놀음 *



나는 하루 종일 돈 버는 일을 일절 하지 않으니 '완백', 즉 완벽한 백수다. 오랜 벗은 그런 자신을 '풀백'이라고 했다. 처음엔 의아했으나 ‘full + 백’의 합성어라 해서 퍼뜩 이해되었다. 완백이든 풀백이든 제대로 된 '진짜 백수'다.
아내는 '어백'이다. ‘어중간한 백수’의 줄임말. 적은 돈이나마 버니까 완백은 못 되고 그렇다고 오랜 시간 일하는 것도 아니니 어백이라 한다. 오전에 잠시 일하고 오후에 수영장 다니니 아침에 나가면 얼굴 마주칠 일 없다. 요즘처럼 부지깽이도 곤두설 만큼 바쁜 시기에도 그러니 솔직히 불만이다.

밭 갈기야 나 혼자 해도 되지만 모종 심고, 씨 뿌리고, 풀 뽑는 일은 남자 하기에 적당치 않다. 신체구조 상 쪼그려 앉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서 말다툼을 자주 한다. 쪼그리면 무릎이 아플 뿐만 아니라 좀 굽혔다 일어서면 어지러우니까 그런 일엔 좀 도와줬으면 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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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내가 요 며칠 집에 일찍 돌아오자마자 아랫집 가음댁 할머니랑 함께 산으로 올라간다. 산나물 뜯으러. 텃밭일은 그리도 귀찮아하건만 나물 뜯는 일은 재미있는지 어떤 땐 수영 강습도 빼먹고 간다. 할머니가 함께 가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올라간다.
이맘때 따거나 뜯을 푸새거리로는 머위, 두릅, 부지깽이, 비비추, 다래순, 오가피순, 고사리, 그리고 제피순이 있다. 이런 나물들은 서두르지 않으면 울산 사람들이 다 뜯어간다. 겨우 한 마을 사람 먹을 정도인데 사흘들이 떼 지어 들어오니 불감당이다.

머위는 집 언덕 아래위에 지천으로 난다. 게다가 길가에 나는 머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동차 매연이 한 움큼도 배어들지 않았으니까. 머위는 아시다시피 첫물일 지금이 딱 좋다. 어떤 거든 그렇지만 첫물 나물은 (꼭 정구지 아니더라도) 사위에게도 주지 않는다 하니까.
두릅도 우리 집 뒷산에 참 많았다. 헌데 외지 사람들이 한 번 들렀다 하면 끝이다. 그 양이 마을 스무여 가구 먹기에 적당할 뿐인데 채 크기도 전에 다 따가버리니까. 아내가 따온 두릅은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별미고, 특히 막걸리 안주로는 고기 없어도 그저 그만이다.


112-3.jpg (두릅)



비비추는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실 텐데 울릉도 '명이나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물로 무쳐먹어도 되지만, 비비추 역시 ‘지’를 담아 삼겹살 먹을 때 곁들이면 ‘직이는’ 맛이다.
다래순과 오가피순은 그 양이 많은 데다 울산 사람들이 잘 몰라선지 언제든지 뜯을 만큼 흔하다. 그런데 둘은 바로 무쳐먹기보다는 살짝 데쳐 말린 다음 주로 묵나물로 만든다. 묵나물로 만들면 겨울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까.

부지깽이나물은 울릉도가 원산이라 하는데 이제 뭍의 산에도 널리 퍼져 우리 마을 뒷산에도 흔하다. ‘울릉도 취나물’이란 말이 있듯이 취나물과 닮은 바 많으니 나물 무쳐 먹는 방법도 취나물을 참고하면 되리라.
아내가 말하길 따는 재미로는 두릅이, 꺾는 재미로는 고사리가 최고라 한다. 그런 고사리가 전에는 흔했는데 지금은 귀하다. 다행히 작년에 고사리 모종 사다 텃밭에 심어 올해부터 조금씩 꺾어 먹을 수 있으니 굳이 산에 가지 않아도 된다.


112-4.jpg (고사리)



이맘때 내가 가장 주목하는 나물이 제피순이다. 산에 들어가 숲을 누비다 제피나무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그 향이 옷에까지 스며든다. 뜯어와 살짝 데쳐 바로 무쳐먹어도 되지만 ‘지’를 담아 입맛 없을 때 먹으면 별미다. 단 제피순은 워낙 향이 강해 싫어하는 분도 계실 터.
나는 제피로 만든 반찬은 다 좋아한다. 제피순 무침도 좋고, 제피로 담은 지도 좋다. 향이 너무 자극적이라 하나 그 자극적인 향이 좋다고 할까. 어저께 점심을 비빔밥 해서 혼자 먹으려 나물거리를 찾았는데 무채, 부지깽이, 미나리 보여 넣어 비비다가 제피순 무침도 조금 넣었다.

비빔밥을 입에 넣고서야 잘못됨을 깨달았다. 다른 나물 맛은 하나도 안 나고 오직 제피순 맛만 나 여러 나물을 섞은 게 아니라 제피순만 넣은 비빔밥 됐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그릇 뚝딱 했으니 그리 싫지는 않았다는 말이겠지.
제피는 그 효능이 참 다양하다. 일단 해독과 항균 효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해로운 기생충과 대장균을 제거해 준다. 그리고 제피열매의 껍질을 베개에 넣고 자면 불면증을 방지하며 잠을 잘 자게 하는 효능도 있다.

또한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유기농 농약’ 만들 때 계피와 더불어 제피도 꼭 들어간다. 이리 좋은 제피에게 당연히 부작용도 있으리라. 특히 따뜻한 성질의 식물이기에 평소 열 많은 사람은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112-5.png (제피순)



요즘 우리 집 식탁을 보면 완전 풀밭이다. 머윗잎쌈, 제피순 무침, 부지깽이나물 무침, 미나리 무침(언양 처가에서 얻어옴). 전에 이런 식사를 ‘황제의 밥상’이라 하여 글 쓴 적 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아직 아침 먹으려면 시간 좀 더 남았지만 아마 오늘도 황제의 밥상이 차려질 터. 밥상 모습 그리자 입속에 휘몰아칠 산나물 맛과 향에 벌써부터 입맛부터 다신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으나,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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