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20)
한때 MBN [천기누설]이란 프로그램에 빠져 열심히 보았습니다. 몸에 좋다는 약초란 약초는 다 소개돼 볼 만했으니까요. 그때 좀 의아했던 점이 프로그램할 때마다 다섯 개쯤 소개했는데, 그럼 일 년에 250개, 십 년이면 2500개나 되는데 어떻게 프로그램을 꾸려갈까 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약초가 산과 들에서 수없이 쏟아지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습니다. 굳이 산과 들이 아니라도 도로 바로 옆에도 약초가 자라고, 오래된 기왓장에도 죽은 소나무와 뽕나무에도 약이 되는 버섯이 자랍니다. 특히 우리가 잡초라 하여 내팽개치거나 유해식물이라 아예 뽑으려 드는 풀이 대거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비단풀, 쇠뜨기, 제비꽃, 토끼풀, 고들빼기, 질경이, 별꽃, 달맞이꽃, 칡, 민들레, 환삼덩굴, 익모초, 바랭이, 돼지감자, 어성초, 개똥쑥..."
위에 죽 나열한 약초, 아니 잡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생명력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텃밭에 자라면 뽑아버려야 할 잡초가 되는데 문제는 생명력이 강해 절대 박멸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요즘 날마다 두 시간쯤 잡초 처리에 투자합니다. 그 가운데 애물단지의 하나인 환삼(덩굴)을 글감으로 잡았습니다. ‘산삼, 인삼, 수삼, 장뇌삼, 산양삼, 천종삼, 지종삼’ 등에는 ‘蔘’이란 한자가 붙는데, 환삼이란 식물에도 ‘蔘’이 붙었습니다.
사실 환삼이라 하기보다 ‘환삼덩굴’로 더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일반인은 잘 모를 겁니다. 눈으로 보면 어쩜 “아, 저거구나!” 하실 테지만.
시골 사는 사람들에게 애물단지 으뜸이 칡이라면 환삼덩굴은 제 생각에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 칡과 환삼덩굴 둘 다 동의보감에 나올 만큼 약효가 뛰어납니다. 둘 다 설명을 펼쳐보면 거의 만병통치약입니다.
칡의 여러 효능에서 감기약으로 많이 먹는 ‘갈근탕’만 예로 들어봅니다. ‘갈근(葛根)’은 ‘칡 葛’ ‘뿌리 根’이니 말 그대로 칡뿌리입니다. 환삼덩굴은 한방에서 ‘율초(葎草)’라 해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혈압 낮춰주고, 소화불량에 좋고, 이질ㆍ 설사ㆍ 학질ㆍ 폐결핵에 좋다 하니...
헌데 환삼덩굴 - 저는 ‘환장할 삼’이라 하는데 -이란 덩굴식물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쇠를 갈거나 깎는 도구를 ‘줄’이라 하면, 나무를 갈거나 깎는 도구를 ‘환’이라고 합니다.
따가운 잔가시가 달린 환삼덩굴의 줄기가 ‘환’을 닮았고. 잎이 ‘삼’ 잎처럼 생겼다고 하여 환삼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가졌다 합니다. 이 자랑스러운(?) 이름을 가진 환삼덩굴이 2019년부터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칡이 애물단지이긴 해도 환경부가 지정한 1급 생태계 교란식물 16종에 속하지 않는데 환삼덩굴이 들어갔으니 나라에선 더 나쁘게 본다고 봐야겠지요. 칡덩굴은 손으로 잡아도 아무렇지 않지만 환삼덩굴은 손으로 잡으면 아주 작은 가시가 나 있어 상당히 아픕니다.
그래서 일명 ‘깔깔이풀’이라고도 합니다. 깔깔하다의 뜻이 ‘까칠까칠하다’란 뜻이니까 언뜻 이해되리라 여깁니다. 그런데 이게 분류상 인삼이나 산삼처럼 ‘삼’과에 속합니다. 더욱이 산삼이나 인삼처럼 약용으로 쓰입니다.
그럼 저는 왜 이 녀석을 미워하느냐 하면 대부분 필요한 나무를 감고 올라가기에 일단 예초기로 처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손으로 잡아 뽑으면 뿌리까지 뽑히기에 그리 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것도 너무 많이 자라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시골살이에 제거해야 할 목록 첫 번째가 칡이라면 환삼덩굴을 두 번째로 넣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된 건 우연히 길 가다가 묘한 장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라니만 막기 위해서라면 가는 그물로 치면 외관상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헌데 멧돼지까지 드나든다면 달라집니다. 녀석을 막으려면 아주 굵은 철조망이라야 가능합니다. 그날 철조망을 보다가 조금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 눈데 띄었습니다.
철조망을 환삼덩굴이 감고 올라가는 건 통상 보는 장면이라 익숙합니다. 그런데 철조망을 감은 모습을 보노라니 익숙하지 않은 모습. 쇠로 된 차갑고 인공적인 이미지를 덮으려 일부러 환상덩굴로 자연스럽게 멋을 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더 보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철조망이 철조망 같지 않고 거기 둘러친 또 하나의 자연이 돼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며칠 뒤 돌담이 제법 아름다운 다른 마을에 볼일 있어 들어가 길을 가다 또 환삼덩굴을 보았습니다. 바로 돌담을 덮은. 다른 곳에는 담쟁이가 덮었건만 마을 끝집에다 오래 방치해 둔 폐가 같았는데 환삼덩굴이 두르고 있으니 담만 보면 폐가 같지 않았습니다.
더욱 집주인 대신 마을 사람 누군가 길로 쳐지는 덩굴은 자르고 돌담 부분만 살려서 그런지 담쟁이덩굴과 다름없었습니다. 아시잖아요, 담쟁이가 두른 돌담이나 돌벽. 고색창연하면서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만드는 그 위력. 그걸 환상덩굴이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아!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애물단지 환삼덩굴의 환골탈태한 모습에 문득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보기 싫어하는 모든 게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아니 다르게 보도록 노력하면 그 참모습을 드러낸다는 걸.
한두 번 보았다고 ‘환장할 삼’ 환삼덩굴이 ‘환영할 삼’ 환삼으로 금방 바뀌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거기서 고운 면도 보았으니까 찾으려 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교훈은 얻었습니다. 무조건 미워할 식물 있을까요? 무조건 미워할 동물 있을까요? 결국 무조건 미워해야 할 인간도 없어야 하는데... 제게 남은 큰 숙제입니다.
*. 환삼덩굴 대신 '한삼덩굴'로 써야 한다는 이론이 있습니다만 저는 환삼덩굴을 취했습니다. 옛날 나무를 갈거나 깎는 도구를 '환'이라 했는데,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이 환은 매우 까끌까끌하여 환삼덩굴이 이런 성질을 지녔고, 산삼 같은 오엽 형태를 지녀 이름 붙였다는 이론에 끌려 환삼덩굴을 취했습니다. 제게는 환삼덩굴이 좀 더 설득력 있어보입니다만 결론은 학자들에게 맡겨야 하겠지요.
(참고로 아래 사진은 상어가죽을 이용해 만들어 '어피환'이라 합니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