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6편 : 서안나 시인의 '등'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서안나 시인 편 ♡
- 등 -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 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 [희망의 레시피](2011년)
<함께 나누기>
'등'과 '배'의 거리는 아무리 뚱뚱해도 직선거리로 0.5m밖에 안 됩니다. 그럼에도 둘은 만날 수 없습니다. 등과 배는 상사화에서 잎과 꽃의 관계와 같습니다. 잎이 피면 꽃이 없고, 꽃이 피면 잎이 없으니 둘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습니다.
오늘 시는 우리 몸에 붙어 있으면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하는 등의 이런 점에 착안하여 만들었습니다.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예전에 수학여행 갔다오는 아들딸의 가방에 등긁개가 들어있었습니다. 달리 효자손이라고도 했는데 이 녀석 덕분에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등은 시원해졌습니다. 뿐인가요, 목욕탕에 혼자 가 때 밀 때도 옆사람에게 부탁하기 거시기할 때도 등긁개 형태에 이태리타올 끼워 요긴하게 썼지요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 만드셨다"
가끔 이런 말을 듣지요. '신이 귀를 두 개로 입을 하나로 만든 까닭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중시하라는 뜻이다' 하는 말을요. 마찬가지로 등처럼 너무나 가깝지만 아무리 팔을 뻗어도 닿지 못한 곳을 신이 만듦은 사람이 다 가질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식하라고.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지척에 두고도 닿지 못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간절함을 전하지 못하는 인간 관계도 있습니다. 이전에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 이웃에 살아도 그(또는 그녀)와 다시 만나서는 안 되듯이. 삶은 종종 그렇습니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그동안 우린 앞만 보며 달렸습니다. 뒤를 책임지는 '등'이 있건만 모르는 척 뒤돌아볼 생각 없이 무조건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덕분에(?) 시작은 알아도 끝은 모르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만약 끝을 알았다면 우리의 실수와 과오는 훨씬 줄어들었을 터.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 우주처럼 넓은 다리도 없는 /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등이 바로 곁에 있음에도 내 손은 닿지 않습니다. 가깝지만 먼 곳, 이 모순된 상황을 만드는 위치에 있는 게 등입니다. '등'은 내 몸의 일부지만 내가 결코 완전히 들여다볼 수 없는 섬과 같은 존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누구나 근원적인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배후에는 /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 보지 못하는 / 내가 살고 있다"
내 몸엔 아는 '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모르는 '나'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여태 우리는 내가 보는 것이 '다'이고, 남에게 보여주는 내 모습이 나의 '전부'라 여겼습니다. 아닙니다. 내 앞에 희극이 펼쳐져 있다면 내 뒤엔 어떤 비극이 살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등을 맞대다'와 '등을 돌리다'는 두 의미를 새겨보라는 뜻으로 이 시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등 따스운 날은 그와 내가 등을 맞댄 날일 것이고, 등 시린 날은 그가 나와 등 돌린 날일 것입니다.
등 토닥여 주는 사람이, 등 긁어주는 사람이, 기대고 싶을 정도로 든든한 등판 지닌 사람이 갈수록 드물어지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 서안나 시인(1965년생) : 제주 출신으로 1990년 [문학과 비평]을 통해 등단. 제주 지역에 관한 글(시 포함)을 많이 쓰며, 현재 한양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서쪽' 동인으로 활동. 보름 전(2026. 2. 10)에 시평론집 [타자와 감각의 변주]를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