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8편 : 맹문재 시인의 '가장자리에서'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맹문재 시인 편 ♡
- 가장자리에서 -
가장자리에서 나는 새벽 돛을 올린다
가장자리에서 이불을 개고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한다
가장자리에서 아침식사를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
가장자리에서 달려오는 차들을 피해 횡단보도를 건너고 출근버스에 오른다
가장자리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주방의 가스밸브가 잠겼는지 걱정한다
가장자리에서 대출이자를 걱정하고 시계 약을 넣는다
가장자리에서 구두를 수선하고 인터넷 골목을 뒤지며 출구를 찾는다
가장자리에서 튼 손에 크림을 바르고 흰머리를 뽑는다
가장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막차를 걱정하고 이삿짐센터를 부른다
가장자리에서 전태일 평전을 떠올리고 계약직 신분증을 찢는다
가장자리에서 라면을 끓이고 실직자의 자살 소문을 듣는다
가장자리에서 라면을 먹는 초등학생 딸을 고마워하고
학교 준비물을 챙기는 딸을 고마워하고 중간고사를 치르는 딸을 고마워한다
가장자리는 나의 침실이다
가장자리는 감기 든 나를 일으켜주는 얼큰한 콩나물국이다
가장자리는 나의 계좌이다
가장자리는 나를 착한 욕심쟁이로 만드는 앨범이다
가장자리는 나의 신발장이다
가장자리는 나의 길을 넓혀주는 줄자이고 곡괭이이다
가장자리는 나의 돛단배이다
가장자리에서 나는 새벽 돛을 올린다
- [책이 무거운 이유](2005년)
<함께 나누기>
‘가장자리’는 물건의 끝에 가까운 부분을 뜻하는 말로, 주로 공간이나 형태의 바깥쪽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장자리 하면 왠지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인이 있는 자리 같기도 하고,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이 처한 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모든 시인은 천성이 '인사이더' 아닌 ‘아웃사이더’이고,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이라 중심부로부터 이탈한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은 어떤 장르의 예술가보다 반골이요, 꼴통이요, 불평불만자라 함부로 대하기 힘든 존재란 느낌도 받습니다.
오늘 시에도 그런 면이 드러납니다. 바로 가장자리에서 사는 나란 존재가 어떤가를 보여주니까요. 물론 남의 얘기하듯 하나 실제론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았습니다. 나는 중심에 있지 않고 가장자리에 있다고. 비록 가장자리에 있지만 더없이 떳떳하다고. 이런 삶을 스스로 택했노라고.
“가장자리에서 나는 새벽 돛을 올린다”
새벽에 일터로 나서려면 일단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큰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새벽에 나와 어질러진 도로를 깨끗이 쓰는 청소부, 다들 잠잘 때 이불 걷어차고 바다로 향하는 어부, 새벽시장에 청과물점 여는 장사치…
시인의 새벽은 어떨까요. 물론 새벽에 일터로 가거나 새벽에 글을 쓰거나 한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어둠의 창을 걷어 젖히고 새벽을 여는 사람의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2연에 가면 가장자리에 처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죽 이어집니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출근버스에 오르고… 모두 다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바로 가장자리에 사는 인물, 즉 주변인의 평범한 삶의 모습입니다.
다만 두 시행에 눈길을 멈춥니다.
“가장자리에서 전태일 평전을 떠올리고 계약직 신분증을 찢는다”
“가장자리에서 라면을 끓이고 실직자의 자살 소문을 듣는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라고 부르짖으며 스스로를 불태웠던 전태일, 거기에 실직자는 자살을 하고. 둘은 자살했다는 공통점 말고도 열악한 노동 환경(계약직 등)이 개선되지 않았음을 부각하려 함이 아닌지…
2연이 '가장자리에 가면 어떤 일을 하는가를 나열'했다면 3연은 '내게 가장자리는 어떤 자리인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가장자리는 가장 편한 나의 침실과 마찬가지고, 감기 든 나를 일으켜주는 콩나물국 같은 활력소며, 내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예금계좌와 같다고.
“가장자리는 나를 착한 욕심쟁이로 만드는 앨범이다”
‘착한 욕심쟁이’는 인간다운 삶, 따뜻한 연대, 아름다운 가치를 더 많이 나누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으로 새깁니다. 가장자리에 놓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과정을 앨범에 담아두듯이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닌가 합니다.
“가장자리는 나의 신발장이다”
신발장은 외출하거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신발을 갈아 신는 곳이면서 일터에서 돌아와 노동에 지친 발에게 휴식을 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새벽에 삶의 터전으로 떠나려 할 때 새로운 마음을 가지려는 자세로 읽습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구두끈을 새로 묶는다’
“가장자리는 나의 길을 넓혀주는 줄자이고 곡괭이이다”
‘줄자’는 자신의 삶과 주변을 냉철하게 측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계획ㆍ설계하는 기준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곡괭이’는 척박한 땅을 개척하듯이 치열하게 살아갈 때 필요한 도구입니다. 여기엔 진짜 도구로서의 뜻보다는 정신적 도구가 되겠지요.
여담입니다만 요즘 가장(家長)의 자리가 가장자리에 놓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가장의 권위가 하늘 높이 치솟던 때를 그리워함은 아니나 너무 낮아진 게 아닌가 하는.
#. 맹문재 시인(1963년생) : 충북 단양 출신으로 1991년 [문학정신]을 통해 등단. 지금은 안양대학교 교수이지만 어릴 때 어려운 환경(사북 탄광촌)에서 어렵게 살면서 느낀 점을 형상화한 시가 많음.
(시인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은지라 어긋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