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야, 너는 정말 ‘해피’하니?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26)

* 해피야, 너는 정말 ‘해피’하니? *



시골에는 개를 키우는 집이 많습니다. 반려견이란 뜻이 담긴 ‘더불어 함께 사는 개’란 말 대신 ‘키우다’를 쓴 까닭은 다음에 나옵니다. 도시와는 다르게 시골에서 키우는 개 대부분은 ‘집개’입니다. 제가 반려견 대신 집개라 쓴 까닭은 정말 집을 지키기 위해 키우는 개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주인 가족과 함께 방안을 드나들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마당에 살면서 누군가 올 때 짖어달라고 키우는 개입니다. 그게 무엇이 다르냐고요? 일단 집개는 거의 예방접종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성화 수술도 해주지 않고, 성대 절제술도 해주지 않습니다.

예방접종하지 않으니 병에 걸리든 말든 내버려 둔다는 점과, 반려견처럼 껌도 주지 않고 고기도 주지 않고 한겨울과 한여름에 추위와 더위에 노출됩니다. 허나 동물적 본능을 억제하도록 만드는 중성화 수술과 마음껏 짖지 못하게 성대 절제술을 하지 않으니 좋은 점도 있다고 봐야겠지요.


126-1.jpg



제가 사는 이웃마을 어떤 집에도 개를 키웁니다. 그 개의 이름이 ‘해피’입니다. 예전 ‘메리, 쫑, 도끄, 워리’에 비하면 훨씬 세련된 이름입니다. 그 집은, 참 집이라고 할 수 없군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컨테이너 하나 갖다 놓은 농막이라 해야겠지요.

‘농막’이니까 거기에 주인이 상주하지 않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일주일에도 두어 번씩 오더니 한 주에 한 번, 보름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운동 삼아 마을 한 바퀴 돌 때마다 보니까 밭에 특별히 키우는 작물은 보이지 않고 단지 트럭이 드나드는 걸로 보아 건축자재 등을 넣어두는 창고로 사용하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해피는 컨테이너에 넣어둔 물품을 지키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거기에 하루 종일 묶여 지냅니다. 개 이름이 해피임을 어떻게 알았느냐구요? 어느 날 그곳을 지나치는데 마침 들른 주인이 그 개를 보고 “해피, 이놈의 새끼야! 왜 사람 지나가는데 안 짖어!” 하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126-3.jpg



해피는 아주 어린 새끼 때부터 컨테이너 앞에 묶였습니다. 주인이 오지 않더라도 사료와 물은 이웃 사는 친척이 주는가 봅니다. 물과 사료가 있으니 해피는 굶어 죽거나 목말라 죽을 염려는 없습니다. 게다가 자연 속에 묻혀 살며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와 철마다 예쁘게 치장하는 수목들 보는 즐거움도 있겠지요.

뿐인가요, 사람이 잘 지나가지 않으니 혼자 자고 싶으면 자고 뒹굴고 싶으면 뒹굴고 아무 근심 없이 지내면 됩니다. 비록 목에야 쇠줄로 묶여 있어 똥오줌이 바로 곁에 쌓여가지만, 또 플라스틱 개집이라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춥지만, 그래도 물과 끼니 제공되는 게 어딥니까?


집개는 처음에 요란하게 짖습니다. 짖는 목적이 주인에게 손님이 왔으니 나와 달라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주인이 없다면? 잠시 출타 중이 아니라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번쯤 방문한다면 굳이 짖을 필요가 없겠지요.

해피도 처음엔 잘 짖었습니다. 우리 부부를 보고 꼬리를 뻣뻣이 세우고 짖었습니다만 어느 정도 안면을 익혔는지 우리가 지나치면 꼬리를 흔들며 짖었습니다. 그러다가 해피는 어느 해부터 짖기를 잊었습니다. 우리가 지나가도 멀그니 볼 뿐 잘 짖지 않았습니다. 혹 주인이 있을 땐 짖지만.


126-4.jpg



해피가 사는 컨테이너 조금 못 미쳐 펜션이 있는데 그곳 사장과 안면을 익혀 지나칠 때 만나면 얘기도 가끔 나눌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제가 해피가 요즘 잘 짖지 않는다고 하자 펜션 사장이 말했습니다.

“저 녀석이 낮에는 안 짖어요. 그런데 밤에는 얼마나 짖는지...”

“낮에 안 짖는 해피가 밤에 짖다니요?”

“바보 같은 개라 그렇지요. 사람 다닐 때 짖지 않고 사람 안 다니는 밤에만 짖어 펜션에 든 손님들이 가끔 항의도 하는데 남이 키우는 개를 두고 뭐라 할 수도 없고...”


해피는 사람 보고 짖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을 보고 짖을까요? 예전 텔레비전에서 본 내용입니다. 바로 야생동물을 보고 짖는답니다. 밤이 되면 야행성 동물들이 내려오니까 짖는답니다. 아무래도 산골이니까 고라니, 너구리, 노루 같은 동물들이 무시로 드나들지요.

참 아이러니입니다. 낯선 사람이 와 물건 잃어버릴까 염려하여 개를 키우건만 낮에는 자고 밤에 물건 훔쳐갈 리 없는 동물들 오면 짖습니다. 그런데 그런 야생동물들 쫓아내려고 짖는 것도 아니랍니다. 그럼 왜? 바로 무서워서 짖는답니다. 무서우니까 더욱 자주 짖고.

‘똥개도 자기 집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쭙잖은 개라도 자기 집에선 용감해진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그럼에도 집개는 집에서 무서움을 느낀답니다. 짐승이건만 사람이 더 편하고 짐승이 더 불편한 그런 역설이 존재합니다.


126-5.jpg



오늘 아침에도 눈꺼풀이 내려앉아 조는 해피를 보았습니다. 밤마다 야생동물을 보며 짖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잤으니 아침이면 졸릴 수밖에요. 혹시나 하여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졸린 눈을 뜨며 반갑다고 잠시 짖다가 다시 스르르 눈을 감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리 졸다 먹다 하며 하는 일 없이 (사람을 향해 짖지 않으니까) 지내다가 밤이면 다시 짖어대겠지요. 어쩌면 집개치곤 참 편하게 산다 여길 분 계시지 않을까요? 일하지 않고 살아도 사료와 물에다 아름다운 산속에 살고 있으니까... 그럴까요?


해피야, 너는 정말 ‘해피’하니?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목우씨의 詩詩한 소통(488)